“물리학 최저 선택자를 찍다!”

 

  “갈수록 심해지는 물리 기피현상”

 

  언제부터인가 사람들 사이에서 물리학은 어려운 과목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았고,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대학수학능력시험 과학탐구 과목에서 물리학은 항상 가장 적은 선택을 받았다. 아래 표[각주:1]는 2014학년도부터 2023학년도까지 근 10년간의 과탐[각주:2] 응시자 수 비율을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통합형 수능의 이슈로 사회탐구와 과학탐구의 교차 선택이 가능해지면서 전체적인 과탐 선택자 수가 증가하였다. 이로 인해 물리학을 선택하는 학생 수도 증가하였으나 여전히 물리학은 다른 과학탐구 과목에 비해 응시자 수가 적은 것이 현실이다. 응시자 수가 15%도 되지 않으며, 가장 응시자 수가 많은 과목과는 20%나 차이가 난다.

 

  물리교육과 학부생인 필자는 이러한 소식을 들을 때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곤 한다. 물리학은 자연을 탐구하고 이해하는 학문으로, 물리학에서는 물체 사이의 상호작용 및 물체의 운동과 물질의 성질 및 변화, 에너지의 변화 등을 연구한다. 물리학은 우리 주변의 현상을 설명해낼 수 있을 뿐 아니라, 자연과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제일 먼저 체계화된 학문이다. 다시 말해, 물리학은 다른 자연과학과는 다르게 보편지식을 추구한다. 물리학자 최무영 교수는 과학적 사고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하셨다.

 

  “과학적 사고의 마지막 요소는, 단편적 지식들을 ‘하나의 합리적인 체계’로 설명하려고 시도한다는 겁니다. 특정지식은 개별 과학적 사실들을 말하는데 이들을 묶어서 보편지식 체계를 만들어내려고 시도합니다. 보편지식을 간단하게 이론이라고 하지요. 사과가 땅으로 떨어지는 현상이나 계절이 돌아오고, 밀물과 썰물이 생기는 것은 하나하나과 과학적 사실이고 특정지식입니다. 그런 것들을 얼핏 보면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지만 하나의 보편적 체계로 묶을 수가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뉴턴의 ‘중력의 법칙’입니다.”

 

  물리학은 특정 지식이 아닌 보편지식 체계를 추구하는 점에서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물리학을 배우면서 우리는 과학적 사고력을 얻을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기존지식에 대해서 의식적으로 반성할 수 있고, 지식을 정량적으로 기술할 수 있으며, 단번에 바로 참이라고 믿지 않는 반증 가능성도 배울 수 있다.[각주:3] 그렇기에 학생들이 사고력을 넓히고 우리 주변 세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리학이 필요하다. 특히 이공계 학생들에게는 학문의 토대가 되는 물리학 공부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물리학은 왜 수험생들 사이에서 기피대상이 되었을까?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학문 자체의 성격에서 기피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물리학은 다른 과학탐구 과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난이도가 높으며 추상적인 개념들이 많다. 또한, 수학적인 능력도 요구되다 보니 학생들이 금방 어렵다고 단정 짓게 된다.[각주:4] 다른 요인으로는 입시 및 상대평가가 있다. 수능이 상대평가로 이루어지다 보니, 선택자 수가 적고 잘하는 학생들만 모일 것이라 생각되는 물리학은 학생들이 피하게 되는 것이다.[각주:5]  점수를 잘 받아서 더 좋은 입시 결과를 낼 수 있는 과목을 선택하다 보니, 이공계에 진학했지만 물리학을 배우지 않았던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학생들이 물리학이 어렵다고 기피하다 보니, 기초과학 지식수준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대학 수업에서도 물리학 선행지식의 유무에 따라 학생 간에 격차가 생기고 있다.[각주:6]

 

  필자도 이러한 물리학 과목과 관련된 문제점에 대해 고민하다가 여러 문제들 중 학생들이 학문의 특징으로부터 벽을 느끼게 되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았다. 학생들은 수식으로 표현된 이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공식을 무조건적으로 외우지만 연습한 유형 외의 다른 문제들에는 이론을 쉽게 적용하지 못하곤 한다. 이렇게 과학적 사고력이 없이 문제풀이에만 집중하다 보면 배운 이론을 적용해 문제를 잘 푸는 학생이더라도 결국 그 이론을 일상생활이나 자연현상에까지는 적용하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필자는 학생들이 물리학 이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리학은 이론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느끼면 흥미를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학생들에게 문제풀이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이해할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다. 이런 고민을 가지고 있던 찰나에 VPython을 접하게 되었고, 이것이 추상적인 개념 및 이론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느껴 이 글에서 소개해보고자 한다.

 

1. VPython이란?![각주:7]

  VPython은 Visual Python의 줄임말로, python 언어로 작성된 코드를 3D 결과물로 보여주는 툴이다. 이는 David Scherer로부터 만들어졌다. 1988년 David Scherer가 카네기멜론 대학에 들어온 후, 그는 연구실에서 이전에 개발된 2D 그래픽 프로그래밍 환경을 더 발전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2000년의 봄과 여름에 David Andersen, Ruth Chabay, Ari Heitner, Ian Peters, Bruce Sherwood의 도움을 받으며, 그는 이전의 프로그래밍 언어보다 더 사용이 쉬운 언어(파이썬)를 이용하고 물체를 3D로 렌더링[각주:8] 할 수 있는 VPython을 개발해냈다. 그리고 2016년 이후로는 VPython 언어 자체보다는 이를 실행하는 Glowscript[각주:9]와 Jupyter 환경 개발에 집중하기로 개발자들이 선언한 상태이다. VPython은 처음에 카네기멜론 대학의 입문 물리학 과정에서 사용되었으며, 이후 미국의 다른 대학교와 고등학교에서도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Python 언어와는 다르게 VPython은 한국 내 사용자가 적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물리 시뮬레이션이나 교과융합과 관련하여 VPython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늘어나고 있고, VPython은 확산이 된다면 교육현장에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도구이다.

  VPython으로 사용자는 박스, 실린더, 구 등의 물체를 만들 수 있고, 이것들의 위치, 길이, 색깔 등을 직접 조정할 수 있다.

  위의 사진에서 박스 안에 있는 코드를 입력하면 그 아래에 보이는 것과 같은 실린더를 만들 수 있는데 pos는 실린더의 위치, axis는 축의 위치, radius는 반지름을 나타낸다. 3차원이기 때문에 코딩을 하면서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벡터에 대한 개념도 익힐 수 있다. 이외에도 아래의 사진과 같이 이미지 파일을 불러와 상자의 겉면에 입힐 수도 있고 VPython에 내장되어 있는 질감을 이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간단한 작업들만으로도 학생들이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러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다. 예시 작품들은 글의 중간중간에서 확인할 수 있다.

 

2. VPython에 대한 인터뷰

  서울고등학교의 송석리 정보 선생님께서는 2018년도부터 Vpython 사용을 시작하셨다. 이를 수업을 통해 여러 번 활용해보셨으며 학생들이 만든 수준 높은 작품들도 Youtube(유튜브)에 업로드하고 계신다. 또한, 선생님께서 올해부터 VPython을 널리 알리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셔서 VPython과 관련한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선생님께 연락을 드렸다. 감사하게도 선생님께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몇 가지 질문을 드릴 수 있었다.

 

1) VPython의 교육적 활용 가능성

  먼저 선생님께 VPython이 교육적으로 어떠한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을지 여쭤보았다. 선생님께서는 학생들이 파이썬 기초 문법을 배운 다음에 간단한 문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있어야 문제 해결 능력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고 하셨다. 단순히 문법만 배워서는 바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이 문제의 대안으로서 VPython을 생각해내셨다고 한다.

 

  Vpython에서는 우리가 이전에 ‘코딩’하면 바로 떠올리던 “hello world”와 같은 텍스트 결과 대신 박스와 같은 물체가 등장한다. 처음에는 이것이 3D라는 것을 모르지만 마우스를 이용해 돌려보면 3D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게 되고 이때 학생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언급하셨다. 코딩이라는 것은 결국에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수단이므로, 학생들은 텍스트 프로그래밍보다는 VPython을 더 흥미로워한다. 게다가 애니메이션 효과 등도 있기 때문에 많은 학생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VPython은 glowscript라는 웹으로 접속할 수 있어 핸드폰으로도 열 수 있을 만큼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필자도 VPython이 시각화가 된다는 점에서 장점을 가진다고 느꼈다. 물리 과목에는 수식이 많이 나오는데 수식 자체에 어려움을 느끼고,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문제를 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식 암기만 하는 학생들이 더러 있다. 이때 필자는 교육현장에서 이렇게 수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추가적으로 수식의 의미를 습득할 기회가 제공되지 않는다고 느꼈다. 수업 진도 후에 따라오는 수행평가와 지필평가에서는 수식을 활용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이번에 등가속도 운동 공식을 이용해 직접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을 때 감속하는 운동을 구현하면서 속도와 거리에 대한 공식을 계속 조정하며 코딩을 해보게 되었다. 이렇게 학생들이 직접 공식을 활용해 시뮬레이션을 만들어본다면 왜 이 식이 해당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지를 더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수식은 이론적인 것이라서 보고 느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학생들도 시뮬레이션과 연결 지으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과학 교과에서는 이상적인 또는 이론적인 상황을 나타내기 위해 마찰력, 공기저항력 등의 변인을 통제하곤 하는데, 시뮬레이션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통제된 변인에 대해서도 추가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감속하는 상황을 수식을 이용해 시뮬레이션으로 만들었을 때, 그날의 날씨 상황에 따라서 실제로는 자동차가 미끄러지는 정도가 다를 수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생들은 직접 자동차의 운동을 코딩하면서,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부분을 되짚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학생은 자동차가 멈추는 상황을 코딩하기 위해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는 순간, 자동차의 속도를 0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곧 그 학생은 어떤 자동차도 브레이크를 밟자마자 정지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다. 그러면 그는 이 사실을 깨닫고, 자동차가 브레이크를 밟으면 서서히 멈추도록 코딩을 하게 될 것이다.

 

  아래는 필자가 VPython을 이용해 만든 물리학I 내용 중 등가속도 운동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시뮬레이션의 실행 결과[각주:10]이다.

왼쪽 사진은 시뮬레이션 시작 전의 모습으로 두 대의 자동차와 정지선을 볼 수 있다. 키보드에서 화살표 위쪽 방향키를 눌러 자동차가 운동을 시작하면 사용자는 자동차가 정지선을 넘지 않고 멈출 수 있게 스페이스 바를 눌러 브레이크를 작동시킨다. 오른쪽 사진에서처럼 자동차가 멈췄을 때 정지선을 넘지 않았다면 초록색, 넘었다면 빨간색으로 자동차의 색이 변한다. 화면의 우측 상단에는 자동차가 운동한 후 흐른 시간과 이동한 거리가 표시된다. 마지막에 각 자동차의 이동거리를 0.2초 간격으로 나타내주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실험 결과를 해석하는 것도 가능하다. 코딩을 통해서는 학생들이 두 자동차의 초기 속도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거나, 두 자동차의 질량을 다르게 설정하며 초기 속도 및 질량에 따른 제동거리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자동차가 등속운동을 할 때, 또는 등가속도 운동할 때의 식을 스스로 작성하면서 시뮬레이션 결과가 예상한 바와 다르다면 어느 부분이 잘못된 것인지 찾고 고민할 수 있다. 이렇게 학생이 스스로 수식을 작성해보면서 그 수식이 작용하는 모습까지 반복적으로 관찰한다면 학생은 어렵던 물리 이론을 조작해볼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추상적이었던 내용도 좀 더 직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점에서 VPython은 물리 교과에서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2) VPython의 활용 범위

  필자는 VPython이라는 도구를 알게 되고, 이를 교육저널 동아리 부원들에게 소개한 적이 있다. 이때, 필자는 이 도구가 수학, 과학뿐만이 아니라 다른 교과들까지도 확장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부원들과 논의하다 보니, 이 도구를 수학과 과학에는 적용할 수 있지만 국어와 영어 같은 수리적이지 않은 과목에도 적용할 수 있겠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또한, 필자와 비슷한 나이의 학생들이 학교를 다닐 때에는 정보 교과가 필수 과목이 아니었기에 코딩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부원들도 있었다. 필자가 보여줬던 시뮬레이션에는 물리적 지식도 들어가 있었기에 부원들은 VPython이 코딩을 잘하거나 수학 또는 물리를 잘하는 친구들에게만 유익한 것이 아닐지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필자는 VPython이 ‘특정 교과’에서 ‘특정 대상’으로만 사용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리다.

 

  먼저 VPython이 적용될 수 있는 교과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필자의 경우에는 VPython으로 영어 hangman 게임[각주:11]도 만들어보았기에 꼭 과학이나 수학 교과가 아니어도 모든 교과에서 이 프로그램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송석리 선생님께서는 아무래도 시뮬레이션으로서 활용하기에는 수학과 과학 두 과목에서만 접목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미술 교과에서도 할 수 있지만, 미술에는 더 자유로운 도구들이 많으니 굳이 VPython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고 하셨다. 생각해보니 필자가 만든 영어 hangman 게임도 프로그램을 이용해 hangman 게임을 자동화시킨 것일 뿐 그 교과 내용과 직접적인 연관은 없었다. 필자는 이번 기회로 각 교과에 잘 맞는 도구가 있을 텐데 그 도구가 꼭 모든 분야에 다 활용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VPython이 쓸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정보, 수학, 과학 교과에서 VPython은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다. 학생들은 시각적인 결과물을 확인하면서 게임이나 원하는 디자인을 표현하면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 또한, 수학과 과학 지식을 접목하면서 물체의 움직임과 과학적 현상도 표현할 수 있다.

  위 사진은 필자가 만든 hangman 게임을 캡처한 것이다. 슬라이더를 이용해 가시의 크기와 펜의 색깔을 바꿀 수 있고 사용자들은 사람이 다 그려지기 전에 영어 단어를 맞추면 된다. 단어가 무작위로 나오기 때문에 학생들이 반복해서 체험할 수 있다. 이렇게 학생들은 자신이 직접 구성한 게임을 친구들과 해보면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VPython을 사용할 대상에 대해 생각해보자. VPython은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뿐만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사용할 수 있다. 송석리 선생님께서는 현재는 모든 중고등학교에 정보 선생님들을 한 명씩 배치하도록 되어 있고,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중학교에서 정보 교과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3~4년 전과 비교했을 때, 학생들이 정보 수업을 접하지 못해서 코딩에 어려움을 겪는 일은 적어진 것이다. 문제는 학교 선생님께서 VPython을 가르치시는지의 여부인데, 송석리 선생님께서는 올해부터 VPython을 널리 알릴 계획을 가지고 계셨고 확산이 잘 이루어진다면 VPython 사용이 어려울 것이라는 걱정은 없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VPython은 파이썬을 배우는 방법 중에 가장 문이과[각주:12]에 관련 없이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이다. 선생님께서는 코딩에 관심이 없고 코딩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학생들의 동기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려운데, 지금까지 수업을 했을 때 테니스부나 야구부와 같은 운동부 학생들도 흥미롭게 참여하는 것을 보면 VPython이 교육적으로 효과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예를 들어, VPython을 이용해 집을 짓는 건 테니스부 학생들도 할 수 있고, 야구부 학생들도 다이아몬드 모양을 만들며 야구장을 구성해볼 수 있다. 이러한 VPython의 시각적인 코딩은 텍스트 코딩보다 훨씬 재밌게 할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이 코딩에 즐겁게 입문할 수 있게 된다.

 

  사실 필자는 위에서 보여준 고2 학생들을 위한 물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코딩하면서, 물리학1 교과에 나오는 수식을 이용하다 보니 소수의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었었다. 그래서 부원들이 우려했던 대로 VPython은 정말 수학, 과학을 잘하고 코딩을 잘하는 친구들에게만 적합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며 수학, 과학에 지식이 없더라도 스스로 산출물을 만들어보는 것에 의의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래는 유튜브[각주:13]에 올라와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VPython 산출물 영상의 캡처 화면이다.

  왼쪽은 이중슬릿 간섭을, 오른쪽은 당구를 시뮬레이션 한 것이다. 지금 가져온 것들은 과학고 학생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과학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학생들이 당구대와 당구공의 형태를 디자인해서 만들어낸 것처럼 수학, 과학적 지식이 깊지 않은 다른 학생들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산출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가며

  지금까지 VPython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이것의 활용 가능성에 대해 논해 보았다. 또한, 작품 예시들을 통해 VPython이 어떻게 작동하고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 알아볼 수 있었다. VPython은 확실히 흥미로운 도구이고, 단순 텍스트 코딩만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내용도 더욱 쉽게 표현할 수 있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학생들이 단순한 블록코딩을 넘어 직접 프로그래밍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때 유용한 도구라는 생각이 든다. 코딩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 모두 흥미를 가지고 도전해볼 수 있을 것이다.

 

  논외로 이야기하자면, 원래 필자는 이번 글에 중학교 급에서 사용할 수 있는 과학 프로그램의 예시도 직접 만들어 보여주고자 하였다. 필자는 롤러코스터에서의 역학적 에너지 보존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중학교에서는 위치에너지가 ‘(질량) x (중력가속도) x (높이)’이고, 운동에너지가 ‘0.5 x (질량) x (속도의 제곱)’이라는 것과 함께, 위치에너지와 운동에너지를 합한 역학적 에너지가 일정하다는 것을 배운다. 그래서 필자는 열차가 롤러코스터 레일 위를 지나가는 동안의 열차의 높이 및 속도를 표현해 역학적 에너지가 보존됨을 보이고자 하였다. 하지만 높이 자체는 y좌표를 측정해서 구하면 되지만, 롤러코스터가 물리 법칙에 맞게 움직이게 하려면 중학교 수준을 넘어서는 내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역학적 에너지가 일정하다는 사실로부터 거꾸로 속도를 맞출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역학적 에너지 보존을 이끌어내는 것이 아니라 역으로 그 보존법칙을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목적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지는 못했지만) 중등 과목에 적용할 수 있는 다른 내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중등에서는 부력이 질량에 비례하고 부피에 반비례한다는 것을 배운다. 그러므로 VPython으로 물과 나무 조각을 표현하고, 질량과 부피에 관한 식을 세워 시뮬레이션을 만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비례와 반비례 관계에 대해서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중학교 과정에서는 부력의 공식 자체를 배우지 않지만,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레 이 공식을 체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무 조각의 질량과 부피를 조정하다가 부력에 영향이 있는 다른 요인을 스스로 발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고 VPython에 관심이 생긴 분들은 간단한 결과물이라도 직접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직접 경험했을 때 더욱 실감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도 VPython을 조금 더 익혀서 물리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겠다. 추상적인 과학을 이해하고 싶은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나무

  1.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대학수학능력시험 채점결과 보도자료 참고 [본문으로]
  2. 과학탐구의 줄임말 [본문으로]
  3.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2/0001938070?sid=105 [본문으로]
  4. 강지선(2015). 물리학습에서 학생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한 메타분석.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본문으로]
  5.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2030300035 [본문으로]
  6.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230511/119254947/1 [본문으로]
  7. https://en.m.wikipedia.org/wiki/VPython [본문으로]
  8.  2차원의 화상에 광원, 위치, 색상 등의 외부 정보를 고려하여 사실감을 불어넣어 3차원 화상을 만드는 과정이다.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1231713&cid=40942&categoryle=32828) [본문으로]
  9.  Glowscript 웹사이트(https://glowscript.org/) 통해 VPython 언어를 작성하고 실행해볼 수 있다. [본문으로]
  10. https://glowscript.org/#/user/minsun/folder/MyPrograms/program/termproject 위의 링크에 접속하면 직접 시뮬레이션을 실행해볼 수 있고, VPython 코드도 볼 수 있다. [본문으로]
  11. https://glowscript.org/#/user/minsun/folder/MyPrograms/program/hangman 에서 hangman 게임을 체험할 수 있다. [본문으로]
  12. 2018년부터 문이과 통합을 시행하였으나, 아직 고교에서는 선택과목에 따라 학생들이 문과 또는 이과의 성향을 보이게 되므로 ‘문이과’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본문으로]
  13. https://www.youtube.com/watch?v=HDwkwipLS2g&t=329s (이중 슬릿 모의실험) https://www.youtube.com/watch?v=_T8K0CBAZBo (4구 당구) 각 작품의 유튜브 영상 링크이다. 링크에 들어가면 학생들이 적용한 과학 이론과 학생들이 겪은 시행 착오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본문으로]

실질적인 환경교육의 필요성

 

  과제를 위해 카페에서 책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을 읽은 적이 있다. 종이 빨대의 텁텁한 맛과 함께 커피를 들이마시며 책을 펼쳐 들었다.

  책의 내용은 꽤나 충격적이고 신선했다. 기후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에 관해 각종 수치와 감정적인 행동 촉구 문구들을 이용하여 설명했을 것이란 내 예상과 달리, 사실 기후 위기는 언론에서 떠드는 것과는 사뭇 다른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문제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줄 알아야 하며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불평등이라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 이 책의 요지이다. 더불어 플라스틱 빨대 줄이기 운동은 환경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새로운 사실까지 책을 통해 알게 된 나는 녹아내리고 있는 종이 빨대를 쳐다보며 책을 덮었다.

  왜 이런 걸 학교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거지?

  학교에서 내가 받은 환경 교육을 생각해 보았다.

  교과서 보충설명란에 작은 글씨로 적혀 있는 환경에 관한 내용들, 재활용을 하고 자원을 아껴 써야 한다는 피상적인 문구들, 아무도 듣지 않는 특별 활동 시간에 교실 TV에 틀어진 기후 위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억지로 10분 만에 겨우 반 장 써서 낸 감상문,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보다는 그림을 사랑하는 마음이 평가의 척도가 되는 환경 보호 그림 그리기 대회.

  요즈음은 굳이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후 위기가 심각한 문제라는 점은 누구나 안다. 매일같이 기후 관련 뉴스가 쏟아져 나오고, 어느 제품이나 ‘친환경’이 트렌드가 되고, 무엇보다도 기후에 이상이 생기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느낄 수 있다. 매년 최고 기록을 경신하는 여름 폭염과 겨울 한파, 없다시피 한 봄과 가을, 갑작스러운 폭우로 인한 산사태 등, 정말로 기후 위기가 도래했다는 것을 몸소 체감할 수 있는 상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즉, 누구나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도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기후 위기로 동물들이 고통받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동정심을 느끼지만, 다큐멘터리가 끝나고 난 후에는 더우면 에어컨을 틀고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문제를 인지하고 있지만 그것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아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의 표면적인 학교 교육은 기후 위기가 심각하다는 사실만을 알려줄 뿐,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하며 무엇이 문제 해결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관한 논의를 끌어내지 못한다.

  문제 지적만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 이제 학교에서는 문제를 다루는 방법과 해결을 위한 길잡이, 그리고 이를 위한 새로운 사고를 제시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렇다면 보다 실효적인 환경교육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탄소중립 중점학교’에서 앞으로의 환경 교육의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1. 탄소중립 중점학교란?

 

  지난 3월 14일, 정부는 3월 14일 ‘2023 탄소중립 중점학교’ 40개교를 선정 및 발표하였다. 기후 및 환경 위기에 대처하는 미래세대의 역량은 학교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인식 아래, 2021년부터 6개의 관계부처가 학교 탄소중립 실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매년 지원 학교를 확대해 왔다. 현재 2023년도 지정 중점학교 40곳은 유치원 5, 초등학교 14, 중학교 10, 고등학교 10, 특수학교 1개로 이루어져 있다.

  학교환경교육정보센터에 따르면,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탄소중립 실현을 위해 미래세대에게 기후위기·환경생태 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교육부와 환경부, 농림축산식품부, 해양수산부, 산림청, 기상청과 함께 전문분야 협업을 통해 환경교육의 선제적이고 모범적인 학교 모델을 구축하여 학교 구성원뿐만 아니라 일반 학교와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를 확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위의 설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4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탄소중립 중점학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탄소중립 실현

 

  먼저, 탄소중립이란 인간 활동에 따른 탄소량과 전 지구적 탄소량이 평형을 이뤄 대기 중 탄소 농도가 더 높아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 현상이 심해짐에 따라 제시된 개념으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배출이 0’이 되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제사회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교토의정서(1997년)와 파리협정(2015년)을 채택하여 노력하고 있다. 특히 파리협정은 지구 온도 상승을 2℃ 이하로 유지하고 최대한 1.5℃로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 이상 온도 상승 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재해가 발생하지만, 1.5℃로 제한할 경우 그 위험이 대폭 감소한다. 1.5℃ 이내로 온도 상승을 억제하려면 최소 2050년까지 탄소 중립 사회로의 전환이 필수적이다.

 

2) 기후위기·환경생태 교육의 장

 

  두 번째 키워드는 기후위기 및 환경생태 교육의 장으로서 탄소중립 중점학교가 기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 교육의 장으로서 기능하기 위해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우선 학생의 참여를 중요시한다. 학생 개개인과 환경동아리 등으로부터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교육과정과 연계하여 탄소중립 프로그램을 개편한다.

  올해 탄소중립 중점학교로 선정된 부천여자중학교(이하 부천여중)의 사례를 살펴보자. 부천여중은 전 교과를 대상으로 다양한 학생 참여형 환경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가령 미술 시간 생태벽화 그리기, 과학 시간 나의 나무 심기 프로젝트, 체육 시간 줍깅(*줍깅 : 조깅을 하면서 쓰레기를 줍는 운동) 활동 등 교과 활동뿐만 아니라 점심시간과 방과 후에도 나무 심기 활동, 우유팩 수거 등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실천적 환경 활동을 한다. 부천여중의 목표는 탄소중립의 ‘일상화’로, 탄소 중립이 가지는 의의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이에 학생과 교사를 포함한 모든 학교 구성원이 탄소 중립을 몸소 실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단순히 학생을 대상으로 한 환경 교육을 넘어, 선생님들 역시 커피 가루를 모아 화분에 거름 및 퇴비로 활용하는 등 학교 구성원이 모두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그야말로 탄소중립 실천의 ‘장’으로서 기능한다.

  산자연중학교(이하 산자연중)는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 삶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학생들이 자연과 상생해 나가도록 함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데, 그중 생태도감 프로젝트는 교실 속에 방울토마토, 커피나무 등 다양한 식물을 직접 기르며 생태도감을 작성하는 프로그램이다. 교실 안에 작은 숲을 만들어 우리와 상생하는 자연을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또한 기후 위기가 얼마나 다가오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탄소중립시계를 학교에 설치하여 학생들이 기후위기가 다가오는 것을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이외에도 자전거발전기로 전기를 직접 만들고, 하천을 살리는 em흙공을 만드는 등 일반적인 학교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다양한 자연친화적인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3) 전문분야 협업

 

  탄소중립중점학교의 또 다른 핵심 중 하나는 미래세대의 기후 및 환경위기 대응역량을 기르기 위해 6개 관계부처가 전문분야 협업을 통해 학교의 탄소중립 실현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교육부, 농식품부, 환경부, 해수부, 산림청, 기상청이 협력하여 탄소중립중점학교를 지원하는데, 구체적인 지원 내용은 다음과 같다.

4) 학교 및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

 

  마지막으로,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개별 학교를 넘어 전국의 일반학교와 지역사회에도 탄소중립 실천 문화를 확산하는 것에 목표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지역사회와 학교 간의 긴밀한 협력이 필요한데, 각 지역의 자연생태적 기반에 대한 체험 및 탐구를 통해 탄소중립 수업 자료 및 학교-지역 환경교육 협력모델을 개발하고자 한다. 또한, 학교별로 운영 중인 프로그램을 사례 발표 및 공유하는 협의회 및 워크숍을 주기적으로 실시하고, 우수 모델을 일반 학교에까지 확산 및 보급하고자 한다.

  함현고등학교(이하 함현고)는 지역사회 연계 프로그램을 적절하게 시행 중인 사례이다. 함현고는 탐구 시간에 환경 정책을 제안하는 수업을 실시한다. 학생들은 각자 생활 속 문제를 인식하고,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정책을 제안하는데, 이것이 단순 수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아이디어들은 실제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 환경교육을 위한 국제 컨퍼런스에서 해당 수업에서 나온 정책 아이디어를 발표하고, 실제로 학생들의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시흥시와 협력하기도 한다. 또한, 정책 제안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위해 지역사회 주민들과 토론의 장을 만들기도 한다.

  또 다른 사례인 신탄진중학교(이하 신탄진중)는 지역사회의 인프라를 활용하여 다양한 환경교육 활동을 운영하고 있다. 신탄진중학교는 환경친화적이고 탄소중립적인 교육을 추구하는데, 이를 위해 각 교과목과 연계하여 학교 주변의 환경 관련 시설을 견학하고 추수 활동을 진행한다. 또한 교육부, 농림수산식품부, 환경부, 해양수산부, 기상청 등의 공공기관의 인프라도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다. 신탄진중은 교육적 성과를 지역사회와 공유하기도 하는데, 교내에서 열린 탄소중립 중점·중심 신규학교 공개 주간 등을 비롯해 교사와 학부모 대상 전문가 특강 등 탄소중립 문화 확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2. 우려사항 및 개선 방향

 

  앞서 살펴본 키워드를 중심으로 현재 탄소중립 중점학교의 시행 방식에 관해서 우려되는 부분과, 이를 개선할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기후위기, 환경생태 교육의 장

 

  먼저 탄소중립 중점학교가 환경 교육의 장으로서 제대로 기능하고 있는지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여러 탄소중립 중점학교를 살펴보면, 탄소 중립의 ‘일상화’와 ‘체험’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가령 교실 속 숲을 통해 자연에 친화적인 일상을 만들고, 직접 전기를 생산하거나 약차티백을 만들고, 나무를 심는 등의 환경 체험을 위주로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렇듯 학생의 참여를 위주로 하는 교육은 환경 교육에서 매우 중요하다.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몸소 느끼고 실천하는 것이 환경 교육의 가장 큰 목표이기 때문이다.

참여를 통해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에 대한 경각심을 키우고, 문제를 온몸으로 느껴보도록 하려는 중점학교의 체험 위주 교육은 분명 지향해야 할 내용 중 하나이다. 그러나 과연 이렇게 미시적인 일상 속 경험만을 중점으로 하는 교육이 진정한 환경생태 교육의 장이라고 볼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든다. 학교는 학생들의 탄소 중립 생활의 일상화를 넘어서,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지구의 환경 문제에 대해서 볼 수 있는 체계적인 환경 교육을 제시해야 한다. 환경 문제는 책임소재가 불분명하고, 예측하기 어려우며 정치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매우 복잡한 사회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문제도 아니기 때문에, 국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환경 문제의 양태에 대해서 보다 전문적이고 자세한 정보를 제공하여 문제를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시각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길러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환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이와 관련된 쟁점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인력이 필요하다. 이는 이후 전문분야 협업에 관한 부분에서 보다 자세히 다룰 것이다.

 

2) 전문분야 협업

 

  현재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보다 효과적인 환경 교육을 위해 정부 6개 관계부처의 지원을 받고 있다. 가령 환경부에서는 환경교구 및 우수환경도서를 대여해주고, 해수부에서는 해양환경 이용교실, 산림청에서는 숲교육을 지원하는 형태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기관과의 협력 및 지원 내용이 적절한지에 관한 검토가 필요하다.

  체험 교실이나 도서 지원 등은 개별 학교나 지역사회에서도 충분히 이루어질 수 있는 내용이다. 이보다는, 개개인의 학교에서 지원하기 어려운 자원을 지원해주는 것이 정부 측의 역할이다. 보다 거시적이고 체계적인 환경 교육이 이루어져야 할 필요성을 앞서 언급했다. 이러한 교육은 개별 학교의 교사들에게 온전히 맡기기에는 매우 부담이 되는 일이며, 관련 주제에 관해 전문 교육을 받은 교사도 드물기 때문에 개별 학교에서 일상 속 체험 이상으로 체계적인 환경 교육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쉽지 않다. 정부는 바로 이러한 지점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환경 전문가를 각 학교에 지원하거나, 환경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룰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또한, 기존 교사들에게도 보다 정확하고 실용적인 환경 교육을 할 수 있도록 매뉴얼이나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3) 학교 및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

 

  현재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학교를 넘어선 지역사회에 탄소중립 실천 문화 확산을 목표로 다양한 지역 사회 연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학생들의 정책을 실현할 수 있도록 시흥시와 협력했던 함현고의 사례에서처럼,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위해서는 지방자지단체와의 실질적인 협력이 중요하다. 여기에 주체를 하나 더 추가하여, 각 지역의 대학들과 협업을 통한 중점학교, 지자체, 대학 세 가지의 협력 모델을 제안하는 바이다. 지역 대학을 협력의 주체로 포함한 이유는 대학이 가진 인적 자원 때문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대학이 제공할 수 있는 인적 자원에 대해 생각해보자. 우선 환경 관련 분야의 교수진이 존재한다. 그들은 기존의 교사들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을 제공할 수 있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특강의 형태나, 교사들의 환경 교육 가이드라인 설정에 자문을 주는 형태로 활용 가능하다. 교수진이 아니더라도 대학교의 재학생 집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 역시 존재한다. 가령 대학교의 환경 관련 동아리들은 중고등학교의 동아리에 비해 훨씬 활발하고 전문적으로 환경 운동을 주도해나갈 역량을 가지고 있다. 중점 학교의 학생들은 대학교와의 교류를 통해 대학생들에게 자문을 받고, 대학 동아리와의 협력을 통해 환경 정책이나 캠페인에 관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기회를 보다 많이 부여받을 수 있다.

  또한 경제적 자원은 지자체를 통해 얻을 수 있다. 지자체는 대학이라는 주체로 인해 보다 활성화된 중점학교와 사회와의 연결을 위해 공간 및 기회 마련, 그리고 재정 지원의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지자체는 중앙 정부보다 지역 특색에 맞는 구체적인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역사회의 탄소 문화 확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렇게 세 가지 주체의 협력 모델은 중점학교와 지역사회와의 연계를 보다 탄탄히 하고, 탄소중립 중점학교의 기존 목표였던 탄소 중립 실천 문화의 확산을 보다 효과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탄소중립 중점학교에 대해 살펴보고, 기존 운영방식에 있어서 우려되는 점과 개선 방향성에 대해 살펴보았다. 탄소중립 중점학교는 아직 40여 곳 학교에서만 시행 중인 프로그램이고, 시작 단계에 놓여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체계적이지 않고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위기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현재, 탄소중립이라는 가치를 실천하는 학교 운영이 유의미한 시도인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탄소중립 중점학교를 기점으로 앞으로 한국의 환경교육은 어떻게 나아가야 할까?

 

한국 환경교육 지향점

 

  환경교육의 최종목표는 결국 친환경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미래의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내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환경에 관한 지식 전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탄소중립 중점학교가 유의미한 이유는 기존의 ‘수업시간’이라는 틀 안에서, 환경에 관련된 지식만을 표면적으로 전달하는 기존의 환경 교육이 아니라, 학생들이 탄소 중립이라는 가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학교의 형태와 교육과정 자체를 탄소 중립에 맞추어 바꾸려는 시도이기 때문이다. 환경 문제는 그 자체로 복합적이고 불분명한 대상이기 때문에 교육 역시 한 가지 방식만으로 편협하게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환경이라는 대상을 복합적인 관점에서 다층위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에 기존의 학교 교육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탄소중립 중점학교처럼 보다 다양하고 실천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시도가 계속되어야 한다. 환경을 어떤 방식으로 바라보아야 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계속해서 알려주고 직접 실천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어야 한다. ‘알긴 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무력감만을 기르는 기존의 환경 교육이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교과서의 새로운 도전

 

  2025년, 우리나라가 세계 최초로 인공지능(AI)을 교과서에 전면 도입하려 한다. 교육부는 23일 ‘디지털 기반 교육혁신 방안’을 발표하여 2025년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공통·일반선택과목에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를 우선 도입할 것을 예고했다. 이어 2026년에는 초등학교 5·6학년, 중학교 2학년, 2027년에는 중학교 3학년까지 대상을 넓힐 예정이다. 다만, 초등학교 1·2학년의 경우에는 AI 디지털교과서를 사용하지 않는데, 이는 교육 현장·전문가들이 디지털 기기를 접하기에는 이르다고 주장한 것을 교육부가 수용한 결과이다. 도입 초기 3년 간은 종이 교과서도 병행할 예정이며, 2028년에 디지털교과서로 전면 전환 여부를 결정한다.

 

  AI 디지털교과서는 기존 교과서의 학습 콘텐츠에 AI 기반의 코스웨어(Courseware·교과과정 프로그램)를 적용한 신개념 교과서다. 여기서 ‘코스웨어’란, 교과과정을 뜻하는 코스(Course)와 소프트웨어(Software)의 합성어로, 기존 종이 교과서를 보완할 디지털 교재를 뜻한다. 현재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 학부에 도입된 디지털교과서는 사진을 확대하고, 과학 과목의 모형을 시각화하는 수준의 기술이 구현되어 있다. 코스웨어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인공지능을 기반으로 학생들의 수준을 파악한 후, 맞춤형으로 학습할 수 있도록 돕는 자기주도적 교재[각주:1]이다. 따라서 이제 학교에서도 AI 기술 기반 진단과 평가를 바탕으로 메타버스, 확장 현실(XR), 음성 인식 등의 다양한 에듀테크(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차세대 교육)를 적용하여 맞춤 학습을 받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교사들도 학생들의 학습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고 분석하여 수업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는 우선 수학, 영어, 정보 교과에 이러한 교과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AI 교과서에 대해 기대가 많은 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데이터 수집에 따른 개인정보 보호 문제부터 시작하여, 어떤 식으로 AI 기반 디지털교과서가 운용될 것인지에 대한 가이드라인의 부재 문제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AI 디지털교과서의 적용 양상을 예측한 뒤 활용 시 생길 수 있는 장단점을 비교하고, 교육 현장에서의 교과서의 역할에 대해 고찰해보려 한다.

 

이미 교육 현장에 자리 잡은 인공지능

 

  사실 인공지능이 교육 현장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산타 토익’ 등 평가와 관련해 이미 인공지능 기술이 적용된 교육 플랫폼은 많이 존재한다. 인공지능이 무엇보다 잘할 수 있는 일은, 학습자가 무엇을 알아야 하는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판단을 내리고 새로운 문제를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교육에 도움을 주는 AI 플랫폼으로는 ‘클래스팅’을 들 수 있겠다. ‘클래스팅’은 인공지능 학습관리 솔루션을 지향하는 에듀테크 기업으로, 2015년부터 인공지능을 개인 맞춤형 학습에 도입하는 ‘러닝카드 프로젝트’(現 클래스팅 AI)를 시작했다. 학습관리 시스템에는 최근 챗GPT 기반 AI 보조교사 ‘젤로’를 추가해 교사의 업무 부담을 덜 수 있도록 했다. 젤로는 교육이나 학습 관련 정보에 대응하기 쉽게 만들어진 교육자 전용 질의응답 챗봇이다. 젤로의 쓰임새는 문항 자동 생성, AI 코딩 교육, 영어 말하기 교육 등으로 확장이 되고 있다.[각주:2] 클래스팅의 조현구 대표는 책 《AI 시대, 교사는 살아남을 것인가》 속 인터뷰에서 인공지능을 통해 변별력 있는 문항을 가려낼 수 있다는 이점을 역설했다. 또한, 문항 반응이론에 근거해 컴퓨터 기반 평가를 하면 학생의 수준에 맞게 다음 문제가 계속 달라지면서 짧은 시간 안에 학생의 상태를 평가할 수 있다고 밝혔다.[각주:3]

 

  한편, 공교육 속으로 본격적으로 들어온 AI의 사례로는 ‘똑똑 수학탐험대’를 들 수 있겠다. '똑똑! 수학탐험대'는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인공지능(AI) 활용 초등 1~4학년 수학 수업 지원시스템이다. 이는 진단 데이터 기반으로 맞춤형 문제를 제공하는 AI 추천 활동 기능을 사용한다. 교육부의 설명에 따르면, ‘똑똑 수학탐험대’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학습자 개별 맞춤형 분석을 통해 추가 학습을 제공하고, 게임 요소가 담겨 있어 초등학교 학생들이 수학에 재미를 느끼면서 공부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각주:4]

 

  똑똑! 수학탐험대 수업 루틴은 다음과 같다. 교과 활동 문제 풀이 후, 평가 활동의 차시 평가 두 문제를 풀고, 시간이 남은 학생들에게 구출 탐험, 인공지능 추천 활동을 하게 한다. 학습 태도가 좋은 경우, 자유 활동(수학 게임)을 보상으로 제공한다. 이 플랫폼을 통해 학생들은 수학 문제를 게임처럼 즐긴다. 수업 시간이 끝나도 '더 하면 안 돼요?'라는 말이 쏟아져 나올 만큼 학생들 호응도가 높다. 평가 활동은 자동으로 채점돼 결과를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결과 기반으로 학급에서 많이 틀린 문항 추가로 설명한다. 학생의 성취도도 확인할 수 있다. 학생 수준에 맞는 추가 과제도 쉽게 제공할 수 있다. 계정 ID와 비밀번호를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가정에서도 추가 학습이 가능하다.[각주:5]

 

AI 디지털교과서의 가능성

 

  교육부 측은 “학생 한 명 한 명을 인재로 키우기 위한 맞춤 교육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으나 교실 환경에서 맞춤 교육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최근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AI 등 첨단 기술은 학생의 역량과 특성을 고려한 맞춤 교육 실현에 새로운 희망으로 대두됐다”고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각주:6] 또한, 교육부는 AI 디지털교과서의 도입으로 학생들은 학습 수준에 맞는 배움으로 학습에 자신감을 갖게 되고, 학부모는 풍부한 학습 정보를 바탕으로 자녀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교사는 학생의 인간적 성장에 더 집중할 수 있어 교실이 학생 참여 중심의 맞춤교육이 이루어지는 학습 공간이 될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각주:7]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AI 디지털교과서를 함께 소통하여 만들고 활용할 때, ‘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을 실현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AI 디지털 교과서를 구체적으로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실제로 전문가는 AI 디지털교과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교육학과의 임철일 교수에게 자문했다. 먼저 AI 디지털교과서가 현재 사용되는 온라인 교과서 플랫폼과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에, AI 디지털교과서의 실체는 아직 없다고 답하였다. 현재 AI 디지털교과서는 개발을 시도하고 시범학교에 적용해서 효과성과 개선 방향을 연구하는 시범적인 단계에 머물러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현재의 온라인 교과서 플랫폼을 ‘교과서’라고 칭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인 ‘아이스크림 홈런’ 같은 경우, 현재의 종이 교과서의 보조적인 자료로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현재 AI를 통한 수준별 콘텐츠 제공 기술이 부족하다는 점을 들며 정부에서 내세우는 AI 디지털교과서가 제대로 작동하기에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제대로 된 수준별 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방대한 데이터가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국어나 영어 등 언어 과목의 교과서에 인공지능이 어떻게 도입될지 질문했다. 교육저널 세미나에서 부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았을 때, 수학이나 과학 등 문제 풀이 위주의 교과목의 경우, 부족한 부분에 대한 문제 풀이를 제공하는 등 형태가 어느 정도 예측이 간다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국어나 영어의 경우, AI가 이들 교과목에 유의미한 작용을 할 수 있을지 대부분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임 교수는 인공지능이 언어 교과목에 도입되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많이 발전했다고 말했다. ‘산타 토익’을 예시로 보면, 학습 예측 시스템을 통한 문제 풀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데, ‘산타 토익’의 회사인 뤼이드에서 이미 서울사대부설중, 서울사대부설여중 영어 학습 현장에서 데이터를 받아 산타토익의 기술을 적용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영어에서도 선택형 문항의 데이터를 분석해서 일정한 문제를 새롭게 풀리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어도 마찬가지로 선택형 문항이 많이 있으므로, 이를 통해 인공지능이 어떤 부분에 약한지 알려줄 수도 있고, 관련 학습 자료를 유튜브 등에서 추천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정리하면, AI 디지털교과서에는 대부분의 교과에서 인공지능을 통해 수준별로 문제를 제시할 수 있겠다는 장점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우려와 기우

 

  한편, 인공지능이 교과서에 들어왔을 때 우려되는 점 역시 존재한다. 먼저 AI 디지털교과서의 도입과 함께 유독 표방되는 목표인 ‘개별화’에 대한 우려다. 이에 대해 임 교수는 두 가지를 들어 부작용을 설명했다. 첫 번째로는, 개별화 시스템에 대한 반감 발생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 미국 퍼듀대학교에서 학생 데이터를 수집하여 각자에게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좋은 의도로 프로그램을 시작했는데, 실상 이 프로그램에 대해 학생들은 우호적이지 않았다고 한다. 수집되는 개인의 데이터는 곧 ‘개인정보’로 치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연장선에서 보면, ‘개별화’의 가장 큰 복병은 정보 노출 문제다. 최악의 경우, 개인정보와 관련된 범죄에까지 연루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협동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약화될 염려가 있다고 밝혔다. 이는 반드시 발생하진 않을 수도 있지만 주의할 필요는 있다고 언급하였다.

 

  다른 부작용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눠보았다. 임 교수는 현장에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는 데에서 오는 혼란 역시 문제라고 답했다. 현재 교원 사회에는 다양한 연령층의 교사가 있을 텐데, AI 디지털교과서 도입 초기에는 기술의 적응에 개인차가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단계별 도입이 불가피한데, 현 정부의 계획은 전면 도입이다. 따라서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하다면서, 초기에는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이 미진한 시스템은 학생들의 학습 집중을 방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으므로 계속해서 시스템 개선 및 보완에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특히 임 교수는 AI 교과서 도입 초기 학생들의 데이터 수집 문제를 들어 우려를 표했다. AI 디지털교과서가 잘 기능하려면 방대한 양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적응학습을 꾸준히 시켜야 한다. 그런데 그 데이터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이 교과서를 계속 써야 데이터를 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데이터를 축적할 시간도, 축적된 데이터도 부족한 상황이기에 임 교수는 “시스템이 잘 작동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작동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우려 사이에서 오히려 희망을 본 부분도 있었다. 필자는 인공지능의 자연어 처리 기술이 가지고 있는 한계 탓에 인공지능이 언어 과목에서 제대로 작동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대학에 가는 AI, 교과서를 못 읽는 아이들》이라는 책에서 저자는 인공지능에는 통계와 연산만이 작용한다면서, 인간에게는 간단한 문제도 인공지능에게는 엄청난 학습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 뇌의 사고 작용—특히 언어 기능의 경우—을 전부 수식으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책에서는 인공지능이 ‘정말로’ 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그러나 임 교수는 다른 시각을 제시한다. 선생님은 ‘ChatGPT’의 사례를 들어,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자연어 처리를 상당한 수준까지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다른 분야에서도 ‘ChatGPT’를 연동하여 자연어 처리 문제를 많이 해결하였다고 한다. 따라서 언어 과목에도 AI 교과서의 활용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재정립과 현상 유지: 교사와 교과서

 

  그렇다면 이렇게 교과서가 급변하는 시대에 교사는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하냐는 질문에, 임 선생님은 문제해결 능력을 꼽았다. 어떤 교과 수업에서든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을 다루게 되며, 이때 교사는 교과 특성에 맞는 해결 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 문제를 가지고 사회과에서는 인구 데이터를 살펴볼 수 있고, 지구과학과에서는 기온 데이터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교사가 AI 기술 및 데이터 과학(데이터를 수집·분석·처리하여 유의미한 정보를 추출하고 활용하는 과학적 방법론, 프로세스, 시스템 등을 포함하는 학제 간 연구 분야) 기술을 갖추게 된다면, 보다 수월하게 학생들이 통합적으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른 미래 교사 역량으로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있다. ‘디지털 리터러시’란 인터넷,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클라우드 컴퓨팅, 빅데이터 등 다양한 디지털 기술과 도구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뿐 아니라 디지털 기술과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각주:8] 종전에는 ‘국·영·수’(국어, 영어, 수학)가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지식이라고 믿는 경향이 강했으며, 소프트웨어와 AI 기술을 보조적으로 사용하는 정도에 그쳤었다. 그러나 2022 개정 교육과정에 이미 ‘디지털 리터러시’ 항목이 명시된 만큼, 현재 교육 방향이 AI·디지털 역량을 상당히 중시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시 말해, 모든 교과에서 디지털 리터러시가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교사는 어떤 과목을 가르치더라도 디지털 툴(tool)을 통해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AI 시스템의 일정 부분을 이해하며 그 부분을 다시 교과에 융합하여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 흐름을 잘 보여주는 것이 22년부터 시행된 ‘아이에답(AIEDAP)’ 프로젝트이다. ‘AIEDAP(아이에답, AI EDucation Alliance and Policy lab)’은 예비•현직 교원의 AI•디지털 역량 함양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AI·디지털 교육을 선도하는 전문가 교사(마스터 교원)를 양성해내고 있다. 한편, ‘터치(T.O.U.C.H.) 교사단’에서는 이미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를 염두에 두고 교사들을 선발하여 교육하고 있다. ‘터치 교사단’은 디지털 기반 교육 대전환 시대에 첨단 기술을 바탕으로 맞춤 교육을 구현하고, 학생들과의 인간적인 연결을 통해 학생들의 성장을 이끄는 교사 그룹을 가리킨다. 터치 교사단 집중 연수는 민관협력으로 운영되는데, 20명 단위의 교실에서 모둠 중심 과제 기반 활동, 토론, 수업 실연 등을 통해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활용방안과 수업지도안 등을 연구·공유한다. 터치 교사단은 2023년 2학기부터 디지털 선도학교 운영을 주도하고 교원연수 강사 활동, 인공지능 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관련한 다양한 정책 참여 등 교육의 디지털 대전환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각주:9]

 

  그렇다면, 교과서가 똑똑해진 지금, 교과서와 교사는 어떤 관계로 남아야 할까. 이에 임철일 교수는 우선 인공지능의 의미가 무엇이고, 인간과 어떤 관계인지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바뀐 후 과학의 발전과 함께 인간이 모든 것에 대해 통제권을 가지게 된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등장한 작금에는 인공지능을 통제의 대상, 즉 도구로만 파악할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하나의 ‘주체’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으로 임 교수는 교사가 AI 디지털교과서를 동료로 여길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였다. AI 기반 교과서는 교사보다 더 똑똑할지도 모르고, 때로는 그 사실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교사가 인공지능에게 많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따라서 교사는 최종적인 결정을 내리는 주체로 남되,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라는 동료에게 언제든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열린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좋은 교사, 좋은 교과서

 

  모두가 같은 속도로 동일한 내용을 습득하게 하는 기존의 획일적인 교육 체계에 회의를 가지고 ‘인공지능 도입’을 통한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고무적이다. 다만 AI가 제공하는 ‘맞춤형 교육’에 대해 큰 환상을 가질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인공지능이 말해주는 것이 전부 정답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학생들의 다음 시험 점수는 예측해줄지 몰라도, 10년 뒤 그들이 어떻게 자라날지는 쉽사리 예상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인공지능이 계산한 학생의 잠재력이 틀릴 공산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만약 인공지능이 그렇게 할 수 있다 해도, 기술의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한 인간의 미래를 쉽게 규정짓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된다. 교사는 교과서와 학생들 사이에서 인공지능이 내린 결과를 해석해주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줄 필요가 있다. 더불어 기술이 진보하고 있는 지금, 오히려 교사는 기본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에게 학생의 취약점을 찾도록 하고 맞춤형 문제를 양산하도록 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단기적으로는 그러한 ‘맞춤 솔루션’ 덕분에 특정 문항에 대해 오답률이 크게 줄어드는 효과를 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학습에 있어서 학생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문해력과 사고력과 같은, 좀 더 근본적인 것들이다. ‘이해하기’와 ‘정답 찾기’는 비슷하면서도 정말 다른 영역의 활동이다. 전자가 전제되어야 후자가 비로소 의미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맞춤형 문제 풀이를 통해 오답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학생들이 ‘이해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지문을 읽어내고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지는 학생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교사는 학생들이 정답만 찾게 할 것이 아니라, 학습 기초 체력을 길러주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 반드시 학생들이 배운 것을 제대로 읽어내고 또 충분히 생각한 후 본인의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도울 수 있어야 한다. 요컨대 교사는 학생들의 학습 방식을 적절히 지도해주는 ‘안내자’로 남아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는 그 구체적인 모습이 드러나지 않은 상태이다. 누구도 당장 정확히 어떻게 작동할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러니 인공지능의 전면 도입이 끼칠 장기적인 영향력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인공지능이 들어간 교과서의 도입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 어떤 좋은 교과서도 좋은 교사를 만나지 못한다면 소용이 없다. 교원들이 인공지능을 제대로 알고 준비한다면, AI 기반 디지털교과서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당근주스

  1. 문가영⟨“너 이 부분 모르는구나”...희한하게 교과서가 알아채네⟩《매일경제》, 23.01.05. [본문으로]
  2. 양용비, '교편 잡던' 조현구, AI 기술로 공교육 선진화 이끈다, the bell, 23.06.02. [본문으로]
  3. 임철일, AI 시대, 교사는 살아남을 것인가, 서울: 학이시습, 2021, 109-111. [본문으로]
  4. 교육부, 인공지능과 게임으로 초등 수학 즐겨 봐요 - 똑똑! 수학탐험대2021년 성과보고회 개최 -, 교육부, https://blog.naver.com/moeblog/222606494208, 21.12.28. [본문으로]
  5. 마송은, [에듀플러스-에듀테크스쿨 발언대] “VR로 다양한 교육 체험·수학탐업대로 공부 동기유발 등, 전자신문, 23.08.01. [본문으로]
  6. 백두산, AI 디지털교과서, 2025년부터 순차 도입모두를 위한 맞춤교육실현, UNN, 23.06.08. [본문으로]
  7. 교육부, AI 디지털교과서로 1:1 맞춤 교육시대 연다, 교육부, https://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moeblog&logNo=223123439288&categoryNo=96&parentCategoryNo=96&from=thumbnailList, 23.06.08. [본문으로]
  8. 한국경제신문, 디지털 리터러시, 한경 경제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679091&cid=42107&categoryId=42107, 23.02.27. [본문으로]
  9. pmg 지식엔진연구소, 터치 교사단, 시사상식사전, 디지털 리터러시, 한경 경제용어사전,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6694285&cid=43667&categoryId=43667, 23.07.24.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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