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과 권력형 성폭력

- 성차별적 사회구조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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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세 개의 연서명

2018년 하반기부터 텔레그램을 통해 피해자들을 유인하고 성 착취를 자행한 N번방 사건은 올해 초 수면 위로 드러남으로써 대한민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사회 각계에서 N번방 사건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서울대 역시 32216차 연운위에서 연석회의 이름 아래 N번방 사건을 규탄하는 성명문을 발표하는 안을 가결하고 이틀 후인 324일 성명문을 내었다. 그리고 이 성명문은 곧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서울대 내부 구성원들 사이 분쟁의 시발점이 된다.

 

연석회의 성명문

 

연석회의 성명문은 N번방 사건이 여성혐오 문제와 직결된 것으로 성차별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학내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권력형 성폭력 사건과도 연결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러한 성차별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의 변화와 문화적 전환을 촉구하며, 정치권에 차별금지법과 같은 실효성 있는 법안을 제정하고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타파하려는 노력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연운위는 성명문 발표와 함께 서울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N번방 사건 규탄에 동참하는 연서명을 받았다. 이것이 첫 번째 연서명이다.

해당 성명문은 발표된 직후 학내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에브리타임’, ‘스누라이프와 같은 대학 커뮤니티를 필두로 서울대 구성원 사이에서 성명문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연석회의 성명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성명문이 편향적이고 지나치게 페미니즘을 강조하여 서울대 구성원의 의견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가하였다.

이렇듯 여론이 계속해서 들끓는 가운데, 급기야 농생대 연석회의는 연운위의 성명문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연서명과 수정제안서를 발표하며 제 18차 연운위에서 연서명 수정 제안의 건을 발의한다. 두 번째 연서명의 등장이다.

 

 

농생대 입장문

농생대 연석회의는 단과대 연석회의 성명문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포함하지 않고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많은 학우들의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며 326일 연서명과 함께 수정제안서를 발의하였다. 농생대 연석회의 수정제안서의 주요 의견은 다음과 같다. 먼저 26만이라는 숫자의 수치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성명문의 신뢰도를 하락시키며, N번방 사건의 가담자가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 성차별적 가치관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N번방 사건 가해자 규탄, 피해자 구제와 수사 촉구에 대한 내용과 아동·청소년 보호에 대한 내용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며 차별금지법과 차별금지법이 왜 n번방 사건 해결에 적합한 수단인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농생대 연석회의는 이러한 수정제안 요청과 더불어, 기존의 성명문은 연석회의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여성혐오와 성차별을 부각하는 정치적 이용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그러나 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농생대의 수정제안서 발표 이후 이에 맞서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를 철회하라는 목소리 또한 등장한 것이다. 327일 일부 학생들은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를 비판하며 농생대에 수정제안서를 철회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연서명을 돌렸으며, 330일에 있을 18차 연운위에서 해당 내용을 담은 안을 공동발의했다. 마지막 세 번째 연서명의 등장이다.

농생대의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은 농생대의 수정제안서가 주장하는 근거들을 반박하며, 농생대의 수정제안서야말로 사건의 은폐와 축소를 부추기고 논리적 연결고리를 결격한 제안서라고 거세게 비판하였다. 또한 농생대 수정제안서의 골자 의견들에 대한 비판을 넘어 농생대가 연운위 회의에 불참하였으면서 수정제안서를 발의한 것, 총학생회칙에 규정된 회원이 아닌 졸업생·대학원생에게까지 연서명을 받은 것까지 비판하며 농생대의 공식사과문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이 얼키고 설킨 분쟁은 어떻게 끝났을까? 330일 열린 18차 연운위는 이 대립하는 두 안건이 부딪히는 중요한 장이었다. 결론적으로 해당 연석회의에서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는 의결되지 못하였다. 연석회의가 성명문 작성을 절차대로 의결했으며, 이에 대한 피드백 또한 충분히 받아 성명문을 수정하기 어렵다는 반박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충안으로 향후 연석회의 활동에서는 가해자 수의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성차별적 사회구조 및 차별금지법 입법에 대해 부가 설명하도록 하는 수정안이 채택됐다. [각주:1]

결국 기존 성명문의 기조가 유지된 채 표면적으로 분쟁은 일단락되었으나, 그럼에도 N번방 사건에 대해 각 단과대 단위로 내었던 입장문을 살펴보면 여전히 갈등이 산재함을 알 수 있다. 연석회의 이름이 아닌 각 단과대별 N번방 사건 규탄 입장문이 서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강조하는 지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대가 발표한 N번방 사건 관련한 입장문에서는 “‘n번방사태와 그 가해자들을 강력히 규탄하며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처벌 수위를 끌어올리고... 강력한 법안을 제정하자는 등 가해자를 엄벌하고 처벌의 수위를 높일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반면 인문대 학생회의 입장문에서는 가해자가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요구하는 것과 더불어 이 사건을 가능하게 한 일상 속의 성폭력을 해체할 것을 요구하고, “N번방 사건은 몇몇 개인들에 의해 갑자기 감행된 범죄가 아니라, 지금까지 성폭력을 묵인해 온 한국 사회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범죄라며 N번방 사건을 일상 속의 성폭력과 연결짓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는 여전히 N번방 사건의 해석과 성명문에 대해 서울대 구성원 사이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세 개의 연서명, 한 개의 쟁점

살펴본 세 개의 연서명, 들끓는 여론들, 단과대별로 강조점이 다른 입장문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이 싸움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흥미롭게도 이 분쟁을 잘 살펴보면, 결국 싸움의 주된 원인은 한 가지 명제를 두고 대립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명제는 바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는가?’이다. 왜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지, 농생대의 수정제안서와 이에 맞선 공동발의인들의 수정제안 철회요청서를 함께 살펴보자.

 

#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아니다?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는 기본적으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지 않다는 입장을 따른다. 이는 농생대가 수정을 요청한 두 번째 항목의 가해자들이 성차별적 가치관을 가질 수는 있지만 성차별적 구조가 사회적으로 만연하다는 것은 확대해석이다라는 주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을 따를 경우, 26만이라는 숫자의 신뢰성 문제, 사건의 사후처리 문제, 아동청소년 보호의 문제, 차별금지법에 대한 설명 부재 등의 나머지 근거들 역시 당연해진다. 먼저 26만이라는 수치는 가해자의 수를 부풀림으로써 구조적으로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결론에 이를 위험이 있으므로 부당해진다. 재발방지와 여성혐오에의 집중 역시 피해자로써 여성을 과도하게 부각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만연하다는 명제로 흐를 수 있으니 사후처리와 아동청소년 보호에 대한 내용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아니니 포괄적인 차별을 금지하자는 차별금지법 역시 N번방 사건의 해결과는 무관하게 된다.

결국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는 N번방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일부 가해자들의 도덕적 타락에 의한 사건으로 해석하고, 그에 따라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사회에 만연하거나 모든 남성이 가해자는 아니라는 주장을 전달하고 싶은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이다?

반면 농생대에 맞서 수정제안 철회 요청서를 발의한 공동발의인들은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을 따를 경우 26만이라는 수치의 명확성과 신뢰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으므로 아동 청소년 보호보다 여성 보호에 집중하는 것이 맞으며, 사건의 사후처리보다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예방하는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 차별금지법 역시 N번방 사건의 기저에 깔린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타파하는 데 기여하는 수단이 된다.

결국 공동발의인들의 철회 요청서는 N번방 사건이 일부 악마적인 가해자들의 소행이 아닌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이자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산물이며, 이를 정확히 짚고 타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라 해석해볼 수 있다.

이처럼 연운위의 성명문의 해석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분쟁을 꿰뚫는 핵심에는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각 단과대별로 상이한 입장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통일되지 않고 강조점이 다른 단과대별 입장문도 결국 N번방 사건의 본질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3.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인가?

그렇다면 문제는 N번방 사건의 본질이 과연 무엇이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N번방 사건에 분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쯤되면 정말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합의 지점에 이르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은 갈등은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끝없는 대립의 장이 펼쳐져 사건의 본질에 대한 담론은 흐릿해질 것이다. 더하여, 사건의 본질에 대한 담론의 부재는 결과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반복을 낳을 것이다. 우리는 사건의 예방 해결, 갈등 중재 등 모든 것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N번방 사건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사건에 대한 분노, 페미니즘 백래시에 대한 맥락을 최대한 배제한 채, N번방 사건이 왜, 어떻게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 피해자는 어떻게 피해자가 되었나

N번방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먼저 피해자가 피해자가 되기까지의 과정부터 살펴보자.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누구도 타인으로부터 성적 착취를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자신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영상을 공개하고 싶은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즉 피해자들은 원치 않게 피해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도대체 왜, 어떻게 성착취물을 찍게 된 것일까?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N번방을 운영하고 성 착취를 자행한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을 담보로 피해자들을 협박했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우선 메신저 앱을 이용해 스폰 알바 모집과 같은 게시글로 피해자들을 유인한 다음, 얼굴이 나오는 나체사진을 받아 이를 빌미로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유포하는 수법을 이용했다. 심지어 피해자를 유인한 뒤 강간한 영상을 남기고 이를 빌미로 협박하기도 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협박은 남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위협하는 행위로, 협박을 당하는 사람은 공포심에 자신의 의사와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즉 협박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협박을 가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약점을 쥐고 이를 빌미로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의 협박에 넘어가 성착취물을 찍게 되었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약점이 가해자들의 손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약점은 피해자들의 나체 사진과 영상물들, 이었다.

몸을 빌미로 한 협박은 피해자들이 나의 알몸 사진/영상이 찍히고 그것이 유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두려움이 크기는 그들이 성착취물을 찍게 될 정도까지 컸다. 무엇이 그렇게도 두려웠던 것인가? 그들은 누군가의 시선을 두려워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깊게 생각해보면 나의 몸을 찍고 관음하는 이때의 누군가가 단순히 불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이 찍히는 누군가, 이 찍힌 몸을 관음하는 누군가는 성별 특질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전자의 누군가는 여성이며, 후자의 누군가는 남성이다.

납득하기 어렵다면 리벤지 포르노라 흔히 일컬어지는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에 대해 고찰해보자.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은 반드시 피해자와 가해자가 두 성별로 양분된다. 영상물에는 분명 두 사람, 여성과 남성이 모두 나체로 등장하지만, ‘여성만이 협박을 당하고 유포를 두려워하며, 심지어 유포가 되었을 때에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한다. 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두 성별이 같은 조건에 있음이 분명한데, 피해는 한쪽만 당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이는 그 영상물에서 대상화되는 객체와 영상물을 소비하는 주체가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과 N번방 사건이 같은 맥락의 범죄인 이유이다. N번방 사건 역시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며, 이때 피해집단과 가해집단의 성별이 뚜렷하게 구별된다. 즉 피해집단은 여성이라는 특질로 묶인, 대상화당하는 집단이며 가해집단은 남성이라는 특질로 묶인 소비하는 집단이다.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된 것에는, ‘여성의 성적대상화남성의 소비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

 

# 여성의 (성적)대상화, 남성의 소비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가 느끼는 대상화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두려움의 크기가 성별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대상화를 두려워한다. 화장실이나 모텔을 갈 때 불법촬영물이 숨겨져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여성이다. 남성들은 이 같은 걱정을 현저하게 적게, 혹은 아예 하지 않으며, 남성의 불법촬영물은 여성의 그것과 달리 여기저기에 널려있지 않다. ,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된 것은, 피해자들이 여성이었기에, 다시 말하면 성적 대상화의 두려움이 큰 존재들이었기에 가능했다.

대상화라는 말 속에는 누구의 대상인가의 문제가 깊게 관여되어 있다. 주체와 객체가 필연적으로 상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의 객체, 즉 대상화되는 것은 여성이며 주체, 즉 대상화하는 이는 남성이다. 대상화의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위치한 남성들은 여성들의 외모를 품평하고, 그들의 신체를 소비함으로써 '남성성'을 획득한다.

여성이 대상화되고 남성이 이를 소비하는 예시는 수없이 많으며 일상적이다. 여성들의 신체와 외모는 쉽게 평가되고 경쟁된다. 뉴스 기사나 인터넷의 사이트에서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 등 신체를 강조한 만화에 대한 광고 등을 접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인 만화 나 잡지에서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닿는 대상으로 존재로, 여성은 늘 도발적인 자세와 표정을 동반하며 그들의 신체가 부각된다. 여성들이 술자리의 야한 농담과 안줏거리, 남성들의 평가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사실은 많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커뮤니티에서 일반인 여성들의 사진들은 지인 능욕등의 이름으로 이용되고 도용된다. 여성들의 외모에 순위를 매기고 여성들을 등급으로써 평가, 성희롱하는 대학 단톡방 사건들, 남성 교수와 여성 학생 간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은 대학 내에서 매년 터진다.

여성의 대상화는 여성이 가장 극단적이고 성적으로 대상화된 포르노 산업에서 특히 극대화된다. 여성향 포르노보다 남성향 포르노 산업이 훨씬 공고하며 그 규모와 수치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은, 포르노의 주 소비 계층이 남성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남성들은 포르노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포르노 배우의 외모, 몸매와 연기 등을 평가하고 이같은 정보를 댓글과 커뮤니티, 채팅을 통해 공유한다. 전문 포르노 배우를 넘어 걸그룹, BJ, 모델, 심지어 일반인의 야한 사진을 사이트에 올리고 관음하기도 한다.

앞서 예시로 나온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 역시 여성의 대상화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말해준다. 끔찍한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은 '포르노'라는 명칭으로 사회에 거듭 인용되며, ‘리벤지라는 말이 덧붙으며 마치 불법촬영물이 퍼지는 것이 타당한 원인을 가진 복수인양 보이게 한다. 심각한 범죄인 것이 자명함에도, 여성이 나체로 나온 영상은 성적 판타지와 욕구를 풀어주는 포르노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 그것도 성생활이라는 가장 은밀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포르노라는 이름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섭기 그지없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며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성도 대상화를 당하며 여성이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여성에 비해 모든 분야에서 현저히 적다면? 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단순히 성별을 반전시켜 남성들도 당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남성들은 여성들과 동등한 깊이로대상이 됨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끔찍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옹호하는 한 남성이 있다. 우리는 그 남성에게 너의 어머니//여동생/누나가 당했다고 생각해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차별적이다.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역지사지'인가? 제대로 된 역지사지라면 당신(남성)’이 당했다고, 피해자가 되었다고, 나체 동영상이 소비된다고 생각해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역지사지함에 있어서 그들이 아닌, 그들 주위의 여성들이 개입된다. 남성들은 피해자가 되지 않을 전제가 늘 깔려 있다.

'피해자가 되지 않을 전제'를 가진 남성들은 자연스레 성범죄 사건에 무감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체감공감은 차이가 있다. 체감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몸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공감은 노력의 영역이다. 남성들은 늘 피해자로서, 대상으로서 현존하였던, 그 가능성을 느껴보지 못했으니(혹은 현저히 적게 느꼈으니) 여성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 대상 성범죄 사건에 분노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성별이 항상 여성인 것은 이 문제가 그들의 체감이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가해자는 어떻게 가해자가 되었나

N번방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이기에 피해자가 되었다면, 가해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가해자가 된 것일까? 이때 주목할 것은 갓갓’, ‘박사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쩌다 범죄의 길로 빠지게 되었는지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어떻게 피해자의 영상을 대가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는지, 즉 디지털 성범죄가 어떻게 산업화되었는지, 그리고 이 산업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산업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여성의 대상화와 남성의 소비 담론을 가져와야 한다. 말했듯 우리 사회에서 대상화 당하는 계층은 여성, 이를 소비하는 계층은 남성이다. 여성 외모의 순위를 매기면서, 여성의 신체가 강조된 사진과 그림, 영상물을 소비하면서, 포르노와 포르노 배우를 소비하고 평가하면서,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미디어와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이를 감상하며 여성들의 대상화와 남성의 소비는 더욱 공고화된다. 즉 남성집단의 소비문화는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으며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 집단의 문화와 소비는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것과 이를 통해 그들이 남성성을 획득하는 과정 자체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스럽고도 무감각한 남성집단의 소비문화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바로 디지털 성범죄의 산업화이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처음 가시화된 것은 소라넷부터이다. 1996년 해외에 서버를 두어 2016년까지 생존했던 소라넷은 파일노리, 웰컴 투 비디오, 텔레그램 등으로 영상을 올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플랫폼만 바꾸어 생존해왔다.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운영진 몇몇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끝나곤 했으나, 운영진 몇몇의 처벌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조직적으로 산업화되어 있으며, 그 자체가 수많은 사람과 업체가 유착된 거대한 수익창출구조 모델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피해자의 불법촬영물은 어떻게 해서 디지털 성범죄 산업의 수익 창출을 불러왔을까? 지난 2017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국내 웹하드 업체들이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로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산업을 형성해온 것을 드러냈다. 영상을 올릴 수 있는 파일노리, 위디스크 등의 웹하드 플랫폼은 불법 촬영 영상을 올리는 전문 업로더에게 수익을 주며 사이트에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게 하고,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홍보하며 고객들을 유치한다. 유통된 불법 촬영물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플랫폼의 조회수가 올라가면 플랫폼은 광고를 걸어 수익을 내거나 회원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에게서 수익을 창출한다. 여기에 더해 웹하드 업체는 콘텐츠를 필터링하는 필터링 회사를 함께 운영하거나 유착관계 형성을 통해서 역시 부당한 수익을 창출한다.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 산업구조 속에 피해자의 영상을 삭제하는 장의업체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불법촬영물이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것에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들은 돈을 주면서까지 장의 업체에 영상 삭제를 요청한다. 이때 장의 업체는 피해자를 위해 영상을 삭제하려는 선량한 의도를 가진 경우도 있겠지만, 웹하드 카르텔 사건으로 인해 영상을 삭제하는 장의 업체 역시 웹하드 업체와 유착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각주:2] 이는 피해자가 고통 속에 영상을 지우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까지도 이용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명백히 피해자를 기만하는 산업구조이다.

, 디지털 성범죄는 누군가가 영상을 올리고, 영상을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이트는 광고수익을 받고, 소비자들이 감상 후 댓글로 영상 추천과 공유 등 2차 가해를 하고, 피해자는 영상을 지워달라고 사이트에 요청하고, 이를 지워주는 업체는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고, 그러면서도 영상 제공자와 결탁해 영상이 올라가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피해자가 고통받을 동안, 더 나아가 피해자의 고통을 이용해 이 산업구조 속 유착된 수많은 업체들은 수익 창출에 힘쓴다. 이러한 기이하고 기형적인 디지털 성범죄 산업구조를 살펴본다면, 단순히 N번방 사건의 가해자 몇몇에 집중하고 그들을 처벌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형적인 디지털 성범죄 산업구조가 버젓이 존재할 수 있으며 플랫폼을 바꿔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라넷으로부터 웹하드, 다크웹, 웰컴투비디오, 그리고 N번방 사건까지. 이들은 명백히 성범죄·성착취를 자행하고 있었으며 수십만 명의 업체와 소비자가 연관되어 있었음에도 음지에서 몇 개월, 몇 년, 심지어 몇십 년 동안 숨겨질 수 있었다. 왜일까? 이러한 거대 산업의 존재는 단순히 이들 범죄가 치밀해서, 음지에 있어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가 이 같은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무시, 더 나아가 조장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여성혐오를 통해서이다.

여성혐오의 혐오는 단순한 ‘hate’의 개념이 아닌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이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여성을 자연스레 배제하는 것, 여성의 외모를 숭배하거나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 역시 여성혐오이다. 남성집단은 여자 연예인 혹은 포르노 배우의 외모와 몸매 품평하고, 품번을 추천하고, 야한 움짤(ex.은꼴짤)을 만들어 이를 공유하며,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의 영상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는 등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한남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김치녀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으며,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데이트폭력과 강간, 안전이별을 걱정한다.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세심하고 감정적이며, 수동적이고 의존적이고 질투가 많다는 특징이 여성성혹은 여성적이다라는 단어로 표현, 공유된다. 유명 걸그룹은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돼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이러한 무수히 많은 예시가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된다. 즉 여성혐오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일상적인 여성혐오는 매우 자연스럽고 은밀하여 이 같은 예시들이 여성혐오라는 것에도 무감각하게 만든다.

일상적인 여성의 배제와 편견, 차별과 여성혐오는 남성집단뿐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이러한 여성혐오 문화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일조한다. 이성적, 주체적, 능동적 등 남성적인 특질에 우월한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권력의 차등이 생기며(이른바 젠더권력’), 여성혐오적 표현들과 이미지들로 인해 여성들의 발언권은 축소된다.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면서도 여성들에게 순수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리고 여성들의 발언권을 약화시키고 침묵시킴으로써 여성들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쉬우면서도 자신이 피해자인 것을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자연스레 남성집단과 한국 사회는 성범죄에 무감각해지면서 성범죄를 방조하게 된다.

 

#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

종합해보자면,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원인이 맞다. 성차별적 사회구조는 명시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은밀하다.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에 깊게 침투되어 있어 진지하게 고찰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부정하게 되기 쉽다. 실제로 N번방 사건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이 짙게 보였으며 이로 인해 사건의 본질은 다양한 방식으로 흐려진다.

N번방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일부 언론들은 조주빈을 비롯한 가해자 개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곤 했다. 그러나 이처럼 몇몇 가해자에 집중하고 이들을 악마화, 심지어 동정하기까지 하는 것은 여성의 대상화와 성범죄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써 존재한다는 점을 탈각시킨다. N번방 사건과 같은 무수히 많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단순히 몇몇 개인의 도덕적 타락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에의 집중 또한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피해자들은 아동·청소년이기 때문에 대상화가 된 것이 아닌, ‘여성이기에 대상화된 것이다. 피해자들 중 아동·청소년이 많았던 것은 그들의 물리적, 정신적 힘이 성인보다 약하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쉬워서였을 뿐이다. 이는 사건의 심각성을 더해주는 부가적인 요소일 뿐, 여전히 사건의 핵심은 여성의 대상화이다. 이를 무시한 채 아동청소년을 부각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디지털 성범죄 산업의 맥락을 탈각시킨다.

같은 맥락에서 사건의 사전예방보다 사후처리에 집중하는 것 역시 본질을 흐린다. N번방 사건은 지속적으로 터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이제 사후처리보다 사전예방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 채 몇몇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외치는 것은 당장의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구조 분석을 통해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또다시 발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젠더갈등이라는 용어와 페미니즘 백래시 역시 N번방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몇몇 사람들은 N번방 사건 속 페미니즘의 맥락을 탈각시키며,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또한 N번방 사건에 관한 논란을 젠더갈등이라는 용어를 통해 성별 대립의 장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을 통해 여성계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것이 아니다. 젠더권력과 여성혐오,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사회 깊숙이 내재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가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모두 탈각한 채 모든 남성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무책임한 것이다. ‘일상적으로 대상화와 범죄에 당할 위협에 시달리는 것자신이 가해자로 몰리지 않길 바라는 것은 염연히 양자간 경중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페미니즘 백래시로 사건의 본질을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채, 그저 스스로에게 올 손해를 모면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일을 더이상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를 그치고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음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플랫폼만 바꾼 채 끊임없이 존재해 온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더 나아가 디지털 성범죄뿐 아니라 미투운동이 왜 거국적으로 일어나는지, 왜 매년 단톡방 성폭력 사건과 교수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터지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이 모든 성범죄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성차별적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아직도 개선되거나 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성범죄 사건에서 페미니즘과 여성혐오,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맥락은 절대 탈각될 수 없다.

 

4.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서울대

다시 서울대 내에 있었던 분쟁 사건으로 돌아오면,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맞기 때문에 연운위의 성명문은 이를 잘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성명문으로 인해 서울대 내부의 갈등이 발생한 것은, 곧 구성원들 사이에 잠재되어 있던 젠더 갈등과 페미니즘 백래시가 겉으로 확연히 드러남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오독하려는 움직임이 서울대 내부에도 존재함을 보여준다.

N번방 사건의 본질을 오독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으며 사회적으로 이것이 만연하고 정당화되고 있다는 것은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N번방 사건뿐 아니라 그동안 있어 왔던 소라넷, 다크웹하드, 웰컴 투 비디오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 미투 운동, 사회의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가리키는 종착점은 곧 성차별적 구조가 사회적으로 만연하다는 명제이다.

만연한 성차별적 사회구조는 대학 역시 피해가지 않는다. 연운위의 성명문에서도 지적했듯, 교수 학생간 권력형 성범죄는 서울대에 수없이 많이 있어 왔다. 사회대 H교수, 인문대 A교수, 음대 B교수 등 매년 터지는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과 알파벳만 바뀌는 교수들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N번방 사건이 어느 외딴 섬 이야기라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괴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쩌면 필자가 글을 쓰는 지금, 당신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 내부에서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터지는 학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이제까지 해왔듯이 단순히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처벌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서울대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TF를 구성하고 피해자 보호와 교수 파면을 외치는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예방과 재발 방지에 힘쓰지 않는다면 알파벳만 바뀌는 교수들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대학은 사건의 구조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N번방 사건에서의 연운위 성명문과 같이, 학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다룸에도 있어서 대학이 반드시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원인으로 짚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려 할 때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원인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동안 고민했던, 나아가 꺼려왔던 지점일지도 모른다. 젠더갈등을 일으킬 우려가 있고 교수 학생 간 권력 격차에 비해 학생들이 모두 체감할 수 없어 의견이 합의되지 않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내의 끊임없는 권력형 성폭력 사건 역시 N번방 사건처럼 피해자는 항상 여성으로, 가해자는 항상 남성으로 대변된다. 교수 학생 간 권력형 성폭력 사건은 교수와 학생의 위계관계, 권력 격차도 주요한 요인이지만, 젠더권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주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를 인정하고 짚을 때이다. 진정으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더 나은 대학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학내에서 터질 수많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서울대는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원인임을 명시적으로 짚어야 할 것이다.

  1. 이현지, <‘n번방 사건학내 여론 제각기 터져 나와>, 서울대 대학신문, 2019.04.09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44   [본문으로]
  2. 황춘화, <양진호 1000억대 돈줄 뒤엔병 주고 약 파는 음란물 카르텔’>, 한겨레, 2018.11.0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8412.html [본문으로]

N번방 이후의 페미니즘 교육

 

 

한 해를 떠들썩하게 만든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N번방 사건에 대해 누군가는 박사, 갓갓과 같은 악마들의 문제라고, 누군가는 처벌만 제대로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소라넷을 폐쇄해도 텔레그램처럼 방법만 바뀐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우리는 그 바탕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을 상품으로 생각하고 여성들의 일상을 포르노로 소비할 수 있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낳은 병리적 문화는 개인 이전에 사회 전반, 학교에도 실재합니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차별적·병리적 문화를 해소하고 평등한 문화를 확산시킬 교육이 필요합니다. 바람직한 미래의 페미니즘 교육을 함께 상상해보고자 <선생님, 페미니즘이 뭐예요?><선생님, 민주시민교육이 뭐예요?>의 저자이자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중학교 교과서의 공저자이신 염경미 선생님과 초등성평등연구회의 오수연 선생님을 초대했습니다.

 

 

1. 텔레그램 성착취와 학교

 

: 염경미 선생님, 오수연 선생님 안녕하세요. 민주시민교육, 초등 성평등이라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위해 애쓰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오늘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이후의 페미니즘 교육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에 대해 여러 청소년이 학교와 교실에 이미 그 뿌리가 있는 문제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직접 학교 현장 학생들의 성차별적 행동들을 볼 수 있나요?

 

오수연 쌤 : 초등학생들도 사회와 학교에 이미 존재하는 성차별적 분위기에 물드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줘요.

 

염경미 쌤 : 기존의 사회문화가 가부장제 질서를 재생시키는 대중매체로 가득하니까 학생들이 영향을 많이 받아요.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대중가요, 광고를 통해 남자의 지배질서가 재탄생하기에 여학생은 외모 중시, 여성스러움, 사랑스러움, 나서지 않는 조신함을 미덕으로 삼고 자신을 훈련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 제재를 받아요. 학교 내에서도 여자가 어디 나서느냐? 센 여자, 똑똑한 여자 좋아하는 남자 없다, 여자는 미모, 남자는 권력()’ 이런 식의 말이 자연스럽게 들려요.

 

 

: 선생님들은 그러면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과 학교 현장에서 볼 수 있는 학생들의 성차별적 인식과 행동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수연 쌤 : .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과 관련하여 여성 청소년에게 성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지만 남성 청소년은 성을 과시해야 한다는 성차별적 인식이 있어요. 여성 아동, 청소년은 건전해야 한다는 기존의 성에 대한 남녀 차별적인 인식 때문에 텔레그램 가해자들의 협박이 여성 청소년, 아동에게 유효할 수 있었어요. 남성 아동·청소년의 일탈에는 협박이 가해지는 일이 적고, 신상이 드러나더라도 오히려 당당한 모습인 경우가 많은 것과 대비되죠.

 

염경미 쌤 : 2020<디지털 원주민 세대로서 중학생의 생활과 문화>라는 주제로 연구하기 위해 만난 여학생 5, 남학생 5명과의 면담 과정에서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여학생과 남학생에게 다르게 다가왔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먼저 여학생의 경우, 여성 특히 미성년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여 음란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점에 대하여 두려움과 분노를 동시에 드러냈어요. 지금 10대의 학생들은 디지털 원주민으로서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채팅을 하고, 이를 계기로 오프라인에서 대면 관계로 이어지기도 하므로 피해자가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범죄를 뿌리 뽑게 되기를 희망해요.

 

남학생의 경우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바라보는 지점이 성차별적 시선을 드러냈어요.

예를 들어 남자의 성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이를 너무 법으로 막는다. 예를 들면 성매매 금지법으로 막다 보니 디지털 성범죄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 등도 문제다. 남성들을 차별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서다. 폭파 시키고 싶다.”, “우리도 당연히 야동을 본다. 일상이다. 죄의식 가지지 않는다. 누구나 보는 거다.”,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 주로 여성 비하적 발언, 성적 발언을 세게 하는 남성 유튜버가 인기다.”, “실제로 여친 사귀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니까 사이버상에서 논다.”, “미투라고 하는 여자들 모두 문제다. 연애하다 헤어지면 미투해서 남자 인생 망치게 한다.”와 같은 말들을 했어요.

 

학교의 문화 자체가 남자에게는 관대해요. 심지어 성희롱, 여성 혐오적 발언을 하여도 그들(남자들) 사이에서는 영웅이 돼요. 페미니스트 여학생은 공격당할까 봐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하지 못해요. 이런 것은 모두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학교에서 재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성폭력에 대해서도 남학생들은 매우 관대해요. 심지어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자로 만든다.”라고 분노를 표출하죠. 문제를 성폭력 가해자에게 찾지 않고 피해자에게 돌림으로써 정당화시키려 할 정도예요. 인터넷에서 일파만파로 억지 논리가 중학생 남학생에게는 상당히 잘 먹히고 있어요.

 

 

2. 성차별을 부추기는 기존의 교육

 

: 학생들이 가진 이런 성차별 문화의 형성에 대중매체나 사회가 아닌 기존의 교육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기존 교육의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염경미 쌤 : 학교에 애초에 성 평등 교육이 없는 게 문제에요. 성폭력 예방교육과 양성평등교육이 있을 뿐이죠. 이마저도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오수연 쌤 : 맞아요. 넓은 의미의 성교육이 연간 15시간 이상인데 이 시간을 성교육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안전교육 등과 합쳐져서 흐지부지되기 일상이에요. 문서에 기록은 되어 있고 기록된 체계는 있지만 창의 체험 시간에 할 것인지 보건교사가 할 것인지 체육 교사가 할 것인지 성교육의 주체도 명확하지 않고, 주지주의적 교육, 입시 위주 교육에 밀려서 학기당 1회 정도 외부 강사가 와서 하는 게 전부이고 중고등학교일 경우에는 자습시간으로 활용되기도 해요.

 

교육부 차원에서 이미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해서 성교육에도 문제가 많아요. 성교육에서 여성의 성을 임신 출산에 가두고 전체적으로 터부시하는데 반대로 남성에게는 성적 욕구가 정당한 권리로 느껴져요. 성폭력 예방 교육은 가해자 예방 중심이기보다 피해자 예방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어렵고, 가해가 일어난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생겨요. 이 내용을 중심으로 2차 가해가 일어나기도 하고요. 성교육 표준안도 논란이 많은데 교사용 지도안에 성폭력 예방 방법으로 여아 부분에만 짧은 치마를 입지 않기,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이 들어가고 지하철에서 누가 나를 만지는 것 같으면 가방끈을 길게 내린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어요. 논란이 되었던 성교육 관련 교사용 자료가 게시판에서 모두 삭제되고, 2017년 수정된 자료가 나왔지만,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 많아 다시 개편작업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그마저도 세 차례 발주한 정책연구과제가 모두 유찰되었다는 이유로 20192월 이후 작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전반적으로 욕망과 욕구를 억누르는 분위기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교육 현장에 차별적인 문화가 있는 것도 문제예요. 성별을 학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두 줄 설 때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 세운다거나 운동회가 끝나고 공책을 나눠줄 때도 보통 파란색인 남아용, 분홍색인 여아용으로 준비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도 성별에 따라 나누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성 고정관념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색깔에 상관없이 공책을 무작위로 나눠줘도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성별에 맞춰 바꾸더라고요.

 

 

: 기존 교육의 이러한 문제점만 해결된다면 성 평등 문화가 확산과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오수연 쌤 : 공교육 상의 변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해요. 초등학생들의 경우는 교육을 받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성인들보다 엄격하게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학교를 올 때는 이미 백지상태가 아니에요.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만 사는 존재가 아니어서 고학년이면 뉴스도 보고 이미 미디어를 통해 오염되어 오기 때문에 교실 밖의 교육이 추가로 필요해요. 아이들은 흡수가 빨라서 학교 밖과 연계되지 않으면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교육은 소용이 없어요.

 

염경미 쌤 : 교실 밖의 변화 없이는 학교 내 교육, 학교 내 성 평등 문화의 확산이 어려워요.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들어도 저항을 하는 남학생들이 있으며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고요. 교사가 용기를 내어 성차별문화와 인식이 결국은 성폭력을 가져온다는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요. 이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진 학생이 민원을 넣거나 그 부모가 항의성 민원을 제기하여 위축시키거든요.

 

오수연 쌤 : 맞아요. 마중물 선생님 사례처럼 실제로 민원 제기로 교육과정이 위축되고 소송까지 가게 되는 사례들이 있어요. 선생님들이 수업을 진행할 때 민원 제기에 대한 두려움을 계속 가지게 돼요. 민원에 아무리 개인적으로 대항한다고 해도 민원이 많아지면 학교 차원에서의 압박도 강하고요.

 

 

: 성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교사 개인이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벽이 많네요. 텔레그램 성 착취와 같은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성 평등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 교육은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염경미 쌤 : 공교육은 궁극적으로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사회는 그야말로 성 평등한 사회가 될 때, 가능해요. 왜냐면 어느 한 성(남성)이 다른 한 성을 억압하거나 무시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성 노예화하는 문화와 의식을 가진다면 그것은 반인권적 상황으로 민주사회다 할 수 없죠.

 

교사 역량 강화를 위한 페미니즘 연수를 매년 10시간 이상 이수하게 하여 성적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해요. 아직도 성 평등이라는 말 자체를 가지고 동성애자 옹호라고 하면서 양성평등이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교사들 대부분도 성 평등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걸 전제하여 예방 교육을 하고 있어요. 일단 인식이 되어야 문제를 바르게 보고 고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지요.

 

오수연 쌤 : 페미니즘 교육이 정의만 가르치는 주지주의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교사와 학생의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페다고지, 교육 실천의 측면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교사 역량 강화가 중요해요. 전체 교사의 성평등 인식 수준도 걱정스러운 상황에서 교사 지도서도 문제가 있고 연수 자료도 문제가 많아요. 성 평등 연수 이수 시간이 정해져 있어도 시간 때우기로 흐지부지되기가 십상이고요. 연수과정 이외에도 교대, 사범대와 같은 교사 양성 기관에서 커리큘럼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해요. 모든 교과목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사용 지도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요. 학교생활 전반의 페미니즘 교육 생활화를 위해 노력해야 해요.

 

염경미 쌤 : 그런 다음에 각 교과서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서, 대중문화에서 성 차별적인 요소를 찾아내어 수정하는 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해요.

 

오수연 쌤 : 교과서도 삽화, 국어 지문 활용에서 다양한 성별, 인종이 등장하는지 어떻게 표현되는지 검토하는 것이 필요해요.

 

염경미 쌤 : 또 학교나 가정, 사회에서 무심코 하는 성 차별적인 대화나 언어에 대하여 당신은 지금 성 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해요. 정치하는 사람들, 교사들은 모두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언어의 사용은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줘요. 그들이 공적인 업무를 맡기 전, 또는 시작하기 전에 철저하게 성차별 감수성에 대하여 사전 조사가 필요해요.

 

오수연 쌤 : 체계가 필요해요. 누가 어떤 내용을, 어떤 관점에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가 필요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해야 해요. 성폭력 사안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도 가해 학생을 그냥 전학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가해자가 교원일 때 조치는 어떻게 할지 피해 학생은 제대로 보호되는지 신고할 수 있는 분위기는 조성되어 있는지 체계를 정해두어야 해요.

 

디지털 성폭력도 학교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부분인데 세대 차이 때문에 보호자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인지가 없어서 교사도 따라가기 힘들고요. 학교폭력실태조사처럼 주기적으로 실태조사를 한다든지 법과 함께 교육할 방법이 필요해요.

 

염경미 쌤 : 페미니즘(성차별에 저항하고 잘못된 제도나 문화를 바로 잡으려는 운동) 교육으로 민원에 시달리게 되면 교사의 교육활동이 위축돼요. 민주주의가 좋은 제도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듯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는 대국민 광고(공익광고 포함)가 지속적으로 사방 곳곳에서 이루어졌으면 해요. 학교 안에서만 한다면 잘 안 되어요. 왜냐면 아이들은 이미 인터넷을 이용하여 학교 밖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거든요.

 

오수연 쌤 : 페미니즘 교육이 정책적으로 내려오기 힘들지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지금의 교육과정 내에서는 다룰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어서 교사가 시행한 교육의 법적 근거가 어디 있냐고 민원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예를 들어 성교육 표준안 자체에 성 소수자가 아예 빠져있어서 수업 중에 동성애를 다룰 법적·정책적 근거가 없어요. 민원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정책적 근거를 제시해주고 일반 시민을 상대로 공익광고와 같이 사회적 차원의 교육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3. 페미니즘 교육이란?

 

: 페미니즘 교육 혹은 민주시민교육 의무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람의 수만큼의 다양한 페미니즘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의무화를 한다면 페미니즘 교육을 위한 교사 지도서나 페미니즘 교과서를 만드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오수연 쌤 : 다양하더라도 경향성은 있기에 교사용 지도서가 가능해요. 교사가 일반적으로 학생에게 전달하기보다는 협력적인 관계를 조성하고. 대화를 많이 하고. 참여를 중요시하는 이러한 태도가 중요하거든요. 구체적인 교육내용이 아니라 교육내용에 접근할 때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지도서요.

교사도 학생들의 위치성은 깨닫기 전에는 인식할 수 없어요. 아동이기 때문만 아니라 성별, 경제, 지역 등의 교차성에 있다는 것을 알고 다양한 관점을 교사가 가지게 하는 데에는, 각자의 위치가 변화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경향성의 지도서가 필요해요. , 각 선생님의 교육방식, 페미니즘을 공유하고 나누는 장에서 실천이 이론화되고 다시 연수내용으로 전달되며 교사 지도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해요.

 

염경미 쌤 : 교사용 지도서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요즘 여성혐오 문제,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하니 페미니즘 교육의 특화가 필요해요. 민주시민교육을 의무화 또는 전문화하고 그 안에 페미니즘 교육이 자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페미니즘 교육을 특화해서 한다면 교과서, 지도서 만드는 일은 가능합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조차도 권력을 잡으면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보고 성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수 차례 보면 더 절실히 요구해야 합니다.

 

 

: 이때 선생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즘 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염경미 쌤 : 페미니즘이란 간접적인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성차별적인 환경, 제도, 문화, 구조, 의식을 고쳐서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운동으로 페미니즘 교육이 곧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이에요. 민주주의 사회란 모름지기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그 이념으로 하죠. 성차별은 이미 여성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을 훼손하는 행위에요. 그래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되면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에 공감해요. 더 나은 민주주의, 실질적인 평등사회를 이루려면 페미니즘 교육은 기본으로 이루어져야 해요. 따라서 페미니즘 교육은 모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여 진정한 의미의 질 높은 민주사회를 지향합니다.

 

오수연 쌤 : 페미니즘은 다양함을 추구해야 해요. 페미니즘도 다양하고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다양한 페미니즘 철학과 사상에 기반한, 다양한 교육 실천이 모인 것이니 더 다양한 모습을 가졌죠. 고정되지 않고 권위에 빠지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비판받아 진화하는 다양성과 아래를 향하는 시선이 페미니즘 교육이에요.

 

 

4. 교실 내 페미니즘 교육

 

: 학생들에게 학교 내에서의 교육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 가능할까요? 오히려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더 싫어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요?

 

오수연 쌤 : 초등학생들이 페미니즘을 학교에서 접하면서 더 싫어하게 되거나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건 본 적이 없어요. 거부반응 자체가 실제로는 다양한 소수자성을 포괄하지만, 여성 인권만을 위한다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에서 와요

 

아이들이 이미 세상을 경험해오고 있고 아동이기에 적어도 나이의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경험이 있어요. 억압의 경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자기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페미니즘 교육은 보다 유연하게 사고하는 것을 중요시하기에 다양하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나 연대하는 방식이 오해도 해소할 수 있어요.

 

염경미 쌤 : 성에 따라 페미니즘에 대한 요구가 완전히 달라요. 여학생은 존재 자체가 여성이면서 당한 성차별이 많고 도서도 많이 읽어서인지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밝히며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요. 그런데 남학생의 반발을 사거나 빈정거림을 당하다 보니 분반하여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반면에 남학생 중에서 여성혐오를 드러내며 성폭력 피해자에게 오히려 2차 가해를 하거나 꽃뱀 프레임을 씌우는 등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과격 발언을 하기도 하여 문제가 많아요.

 

이러한 남학생을 교육하는 데는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남교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가부장적 권위를 탈피한 친여성적 인권에 대한 인식과 행동을 하는 그런 남교사가 있어서 남학생 지도를 몇 번 한다면 수월할 듯해요. 그런데 여교사가 페미니즘 교육이라고 시작을 하면 거부감을 드러내며 역차별이라고 난리를 치는 아이도 있으니 어려워요. 남학생들이 이미 가부장적 사고와 행동을 하므로 남교사에게는 말도 못 하고 대들지 못하는데 여교사는 우습게 알고 여성 우월주의자, 편향된 교육 운운하면서 힘들게 해요.

 

 

: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교육이 공교육 내에서 이루어졌을 때 기대하는 효과는 무엇이고, 한계는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오수연 쌤 : 효과는 사회적인 합의점을 새로 만드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의무교육 내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이루어지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감수성을 공유하기 수월해지고 전반적인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거에요.

한계는 아무래도 페미니즘 교육은 다른 교과와 다르게 계속 변화하고 진화해야 하니까 고정된 교육이 될 수 없다는 데에 있어요. 학교, 학급 사정에 따라서 교사의 관심 정도에 따라서 페미니즘 교육의 양과 질이 달라질 수 있어요. 페미니즘 교육의 형태는 정말 다양하기에 어려운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한계를 조금은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염경미 쌤 : 기대효과 7가지와 한계 3가지를 생각해봤어요. 1) 성차별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재생산 구조를 갖지 못할 것이고 2) 여자라고 우습게 여겨서 비하하거나 폭력적으로 몰고 가는 일이 줄어들 것이며 3) 성폭력이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하여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줄어들 것이라는 점 4) 더불어 행복한 가정, 직장, 조직 문화를 만들고 5)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에 넣고 이를 어길 경우 엄히 다스리며 6) 여성혐오적 발언,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여성혐오적 댓글이 줄어들고 7)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 3차 가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7가지 부분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것으로 기대해요.

 

하지만 1) 사회적인 문제나 구조의 문제를 바르게 보지 못할 경우, 성 대결적 양상을 띠며 여성혐오, 남성 혐오가 교실에 팽팽하게 되는 점 2) 책이나 토론을 통해 학습하지 않고 오직 인터넷의 댓글이나 SNS로 번지는 글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어 자신이 아는 지식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여 우기기 문화가 확대되면 토론 불가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3) 지금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를 남성 청소년기에 가지는 호기심 정도로 여기는 관대함 때문에 페미니즘 교육이 공교육 내로 들어오더라도 여전히 가지는 한계가 있어요.

 

 

5. 민주시민과 초등학교의 페미니즘

 

: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두 선생님의 이야기 너무 잘 들었습니다. 이제 선생님 각각의 민주시민교육 교과서의 공저자로서 또 초등성평등연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요.

먼저 염경미 선생님은 페미니즘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책에서 이야기하셨는데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은 무엇이고 왜 페미니즘과 민주시민교육이 함께 필요한지 알려주세요.

 

염경미 쌤 : 도덕이나 윤리는 개인적인 문제 해결이나 의지를 말한다면 민주시민이란 공동체에 속한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더 생각해요.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에서의 민주적인 문제 해결 능력, 민주적인 소통과정, 경청과 토론, 양보와 타협의 과정들, 내 생각에 대한 유연한 태도로 타인의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성 등을 배우지 않고는 습득할 수 없어요. 19876월 항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얻었지만, 국회 등 정치판은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을 보면 비민주적인 생활방식이 많습니다. 이를 성찰하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학교교육과정에서 배워야 건강하고 민주적인 시민으로 자랄 수 있어요.

 

현재 학교교육과정에는 공식적으로 페미니즘 교육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마치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이고 민주시민은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페미니스트는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곤 하죠.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들어도 저항을 하는 남학생들이 있으며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아요. 보편적 인권이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한 인권만 생각한다면 그는 민주시민이 아니에요. 민주시민교육에는 인권, 존중, 평등, 연대, 평화 등의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바른 태도, 이해, 실천적인 삶을 배우죠. 민주시민교육을 바르게 한다면 성 평등 문화 확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어요.

 

 

: 결국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권리를 이야기하는 페미니즘과 민주시민교육은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군요.

이렇게 필요성은 확실한 페미니즘 교육이지만 보통 비판적 사고능력은 중학교 이후에 형성된다고 생각하기에 초등학교 시기의 페미니즘 교육은 학생의 사고를 이끌어 내기 보다는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전달로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는데 초등학교 시기에 페미니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오수연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해요.

 

오수연 쌤 : 초등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페미니즘 교육이 오히려 나쁜 것에 물들게 한다는 말 자체가 교사와 학생, 어른과 아이를 위계 짓는 관점이고 학생들의 경험 세계를 무시하는 관점이에요. 아이들은 이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여서 ‘N 번 방 사건이나 연예인 자살 소식을 스스로 먼저 이야기하기도 해요. 이미 초등학생들은 기존의 성차별적 인식을 습득한 상태에요. 이미 여자애 같다가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거나, 남자 연예인이 여장을 하면 우스꽝스러운데 여자 연예인이 남장을 하면 멋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도 해요. 반면 여자아이라고 마음껏 소리 내어 웃거나 편한 자세로 앉지 못하는 것, 남자아이라고 말수가 적거나 섬세한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되어지는 것에 부당함을 표현하기도 하죠. 페미니즘 교육은 아이들이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관점을 알게 하는 거예요. 지구의 자전이라는 개념을 몰라도 낮과 밤은 경험적으로 알지만, 자전이라는 개념을 알면 현상을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아요. 페미니즘 교육이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주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페미니즘 교육의 내용이 연령층에 따라 다를 필요도 없어요. 성교육의 경우 다루는 내용 범위나 수준이 조금 다를 거예요. 초등학교에서의 관계 맺기가 나와 상대방의 경계를 인식하는 수준이라면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인 관계와 같이 더 심화된 교육이 가능하죠. 페미니즘 교육은 큰 차이가 날 필요가 없어요. 페미니즘은 기존의 주어진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실일지 계속 질문을 던지는 차원이기에 평생교육의 문제에요. 초등학교 단계의 인격적인 존재로 타인을 대우하자는 명제가 성인 수준에서는 더 다양하고 실질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것과 같이 심화 정도나 복합적인 정도에서 차이가 날 뿐이에요.

 

 

6. 페미니즘 교육의 미래

 

: 페미니즘 교육은 나이와 환경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비슷하게 진행될 수 있는 보편적인 교육이군요. 민주시민교육과 초등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이야기까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페미니즘 교육의 바람직한 미래에 관해 이야기 나누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염경미 쌤 : 성차별적 문화를 학습한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내려면 민주시민교육의 방법이 학습자 중심으로 생활 주변에서 그 사례를 가지고 와서 기존의 생각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고 만들어졌는지를 성찰하기, 토론, 주장, 경청, 공감, 다시 쓰기 등을 통하여 생각의 변화를 재구성하고 자신의 언어로 발표하는 등의 지난한 노력이 필요해요. 성 평등이나 페미니즘을 직접적으로 목표하는 교육이 추가적으로 필요하고요. 학교 수업시수는 한정되어 있고 필요한 교육은 너무나 많아지고 있어요. 그러나 민주주의 완성은 마지막 계급인 여성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제도와 문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더 나은 민주주의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민주시민교육 안에 페미니즘 교육이 자리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교육의 이념은 민주시민육성이에요. 민주공화국에 필요한 시민은 이기적 개인이 아닌 민주시민입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한 성폭력적인 상황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나 이제야 드러난 것이죠. 말하는 자는 듣는 사람을 필요로 해요. 이제야 비로소 성폭력 피해자가, 많은 차별받은 경험을 가진 여성이 말하기 시작했는데, 듣기조차 거부하며 여성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2, 3차 가해를 하고 있어요. 얼마나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가가 여기서 드러나죠. 남성 권력자의 편을 드는 일은 쉬워요. 그러나 페미니즘 교육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그들의 인간다운 삶,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존중하는 인권교육이며 연대입니다. '살림' 교육이에요. 다 같이 살자는 교육입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소수가 가졌던 권력을 다수에게 이양하는 일은 역사적 진보에요. 페미니즘은 사회발달에 따라 그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자기 발전을 거듭할 것이라는 면에서 민주시민교육이기도 해요.

 

오수연 쌤 :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에요. 시작은 성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페미니즘 교육이 더 많은 소수자성을 바라보게 하고 더 많은 대상과 연결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 미래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을 만난 후 비건, 에코 페미니즘으로 확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를 존중하니 남을 존중하게 되고 동식물도 존중하는 거죠.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는 모습, 내가 보지 못했던 다양성을 보게 해주는 교육이 페미니즘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대화를 통해 페미니즘이 성인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모든 연령층의 시민에게 중요하다는 것과 페미니즘 교육을 위해서는 흔히 생각하는 부족한 성교육뿐 아니라 학교 밖의 영향, 민원, 교사역량 강화와 같이 다양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루빨리 페미니즘 교육을 위한 법적 근거도 만들어지고 교육과정에도 변화가 생겨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반복하지 않는 미래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저번 호 기획 [청소년 섹슈얼리티와 성교육]의 고민을 이어, 이번 호에서는 후속보도로 학교 안에서 성평등한 문화를 만드려 노력하는 선생님 두 분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N번방 사건과 현재 교육, 학교 내 문화는 어떤 연관관계를 가지는지, 페미니즘이 교육될 수 있는지, 페미니즘 교육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고민을 나누어보려 합니다. 한편 올해 서울대에서는 N번방 사건의 본질이 무엇이냐에 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습니다. 교육저널은 [대학현안]에서 이 뜨거운 논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N번방 사건의 기저에 무엇이 깔려 있는지, N번방 사건과 반복되는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이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이야기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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