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사건과 권력형 성폭력

- 성차별적 사회구조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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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사건, 세 개의 연서명

2018년 하반기부터 텔레그램을 통해 피해자들을 유인하고 성 착취를 자행한 N번방 사건은 올해 초 수면 위로 드러남으로써 대한민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사회 각계에서 N번방 사건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고, 서울대 역시 32216차 연운위에서 연석회의 이름 아래 N번방 사건을 규탄하는 성명문을 발표하는 안을 가결하고 이틀 후인 324일 성명문을 내었다. 그리고 이 성명문은 곧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며 서울대 내부 구성원들 사이 분쟁의 시발점이 된다.

 

연석회의 성명문

 

연석회의 성명문은 N번방 사건이 여성혐오 문제와 직결된 것으로 성차별이 여전히 사회적으로 정당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는 학내에서 반복적으로 일어난 권력형 성폭력 사건과도 연결된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이러한 성차별적 구조를 해결하기 위한 구조의 변화와 문화적 전환을 촉구하며, 정치권에 차별금지법과 같은 실효성 있는 법안을 제정하고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타파하려는 노력을 할 것을 요구하였다. 연운위는 성명문 발표와 함께 서울대 구성원들을 대상으로 N번방 사건 규탄에 동참하는 연서명을 받았다. 이것이 첫 번째 연서명이다.

해당 성명문은 발표된 직후 학내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에브리타임’, ‘스누라이프와 같은 대학 커뮤니티를 필두로 서울대 구성원 사이에서 성명문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일기 시작한 것이다. 연석회의 성명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성명문이 편향적이고 지나치게 페미니즘을 강조하여 서울대 구성원의 의견을 모두 포괄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가하였다.

이렇듯 여론이 계속해서 들끓는 가운데, 급기야 농생대 연석회의는 연운위의 성명문을 수정할 것을 요구하는 연서명과 수정제안서를 발표하며 제 18차 연운위에서 연서명 수정 제안의 건을 발의한다. 두 번째 연서명의 등장이다.

 

 

농생대 입장문

농생대 연석회의는 단과대 연석회의 성명문이 사건의 본질을 제대로 포함하지 않고 의견수렴을 제대로 거치지 않아 많은 학우들의 의문을 불러일으킨다며 326일 연서명과 함께 수정제안서를 발의하였다. 농생대 연석회의 수정제안서의 주요 의견은 다음과 같다. 먼저 26만이라는 숫자의 수치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아 성명문의 신뢰도를 하락시키며, N번방 사건의 가담자가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 성차별적 가치관이 사회에 만연하다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이야기했다. 또한 N번방 사건 가해자 규탄, 피해자 구제와 수사 촉구에 대한 내용과 아동·청소년 보호에 대한 내용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며 차별금지법과 차별금지법이 왜 n번방 사건 해결에 적합한 수단인지 추가적인 설명이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농생대 연석회의는 이러한 수정제안 요청과 더불어, 기존의 성명문은 연석회의라는 위치를 이용하여 여성혐오와 성차별을 부각하는 정치적 이용이라고 거세게 비판했다.

그러나 분쟁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농생대의 수정제안서 발표 이후 이에 맞서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를 철회하라는 목소리 또한 등장한 것이다. 327일 일부 학생들은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를 비판하며 농생대에 수정제안서를 철회하고 사과를 요구하는 연서명을 돌렸으며, 330일에 있을 18차 연운위에서 해당 내용을 담은 안을 공동발의했다. 마지막 세 번째 연서명의 등장이다.

농생대의 사과를 요구하는 이들은 농생대의 수정제안서가 주장하는 근거들을 반박하며, 농생대의 수정제안서야말로 사건의 은폐와 축소를 부추기고 논리적 연결고리를 결격한 제안서라고 거세게 비판하였다. 또한 농생대 수정제안서의 골자 의견들에 대한 비판을 넘어 농생대가 연운위 회의에 불참하였으면서 수정제안서를 발의한 것, 총학생회칙에 규정된 회원이 아닌 졸업생·대학원생에게까지 연서명을 받은 것까지 비판하며 농생대의 공식사과문을 요구하였다.

그래서 이 얼키고 설킨 분쟁은 어떻게 끝났을까? 330일 열린 18차 연운위는 이 대립하는 두 안건이 부딪히는 중요한 장이었다. 결론적으로 해당 연석회의에서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는 의결되지 못하였다. 연석회의가 성명문 작성을 절차대로 의결했으며, 이에 대한 피드백 또한 충분히 받아 성명문을 수정하기 어렵다는 반박이 우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절충안으로 향후 연석회의 활동에서는 가해자 수의 출처를 분명히 밝히고, 성차별적 사회구조 및 차별금지법 입법에 대해 부가 설명하도록 하는 수정안이 채택됐다. [각주:1]

결국 기존 성명문의 기조가 유지된 채 표면적으로 분쟁은 일단락되었으나, 그럼에도 N번방 사건에 대해 각 단과대 단위로 내었던 입장문을 살펴보면 여전히 갈등이 산재함을 알 수 있다. 연석회의 이름이 아닌 각 단과대별 N번방 사건 규탄 입장문이 서로 통일되어 있지 않고 강조하는 지점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공대가 발표한 N번방 사건 관련한 입장문에서는 “‘n번방사태와 그 가해자들을 강력히 규탄하며 가해자들에 대한 엄벌을 촉구하고, “처벌 수위를 끌어올리고... 강력한 법안을 제정하자는 등 가해자를 엄벌하고 처벌의 수위를 높일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반면 인문대 학생회의 입장문에서는 가해자가 엄중한 처벌을 받도록 요구하는 것과 더불어 이 사건을 가능하게 한 일상 속의 성폭력을 해체할 것을 요구하고, “N번방 사건은 몇몇 개인들에 의해 갑자기 감행된 범죄가 아니라, 지금까지 성폭력을 묵인해 온 한국 사회의 연장선에서 일어난 범죄라며 N번방 사건을 일상 속의 성폭력과 연결짓는 것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이는 여전히 N번방 사건의 해석과 성명문에 대해 서울대 구성원 사이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 세 개의 연서명, 한 개의 쟁점

살펴본 세 개의 연서명, 들끓는 여론들, 단과대별로 강조점이 다른 입장문은 분명히 주목할 만하다. 이 싸움은 어떠한 의미를 가질까? 흥미롭게도 이 분쟁을 잘 살펴보면, 결국 싸움의 주된 원인은 한 가지 명제를 두고 대립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 명제는 바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는가?’이다. 왜 이러한 결론이 나오는지, 농생대의 수정제안서와 이에 맞선 공동발의인들의 수정제안 철회요청서를 함께 살펴보자.

 

#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아니다?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는 기본적으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지 않다는 입장을 따른다. 이는 농생대가 수정을 요청한 두 번째 항목의 가해자들이 성차별적 가치관을 가질 수는 있지만 성차별적 구조가 사회적으로 만연하다는 것은 확대해석이다라는 주장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을 따를 경우, 26만이라는 숫자의 신뢰성 문제, 사건의 사후처리 문제, 아동청소년 보호의 문제, 차별금지법에 대한 설명 부재 등의 나머지 근거들 역시 당연해진다. 먼저 26만이라는 수치는 가해자의 수를 부풀림으로써 구조적으로 성차별이 만연하다는 결론에 이를 위험이 있으므로 부당해진다. 재발방지와 여성혐오에의 집중 역시 피해자로써 여성을 과도하게 부각하게 되고 마찬가지로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만연하다는 명제로 흐를 수 있으니 사후처리와 아동청소년 보호에 대한 내용을 보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아니니 포괄적인 차별을 금지하자는 차별금지법 역시 N번방 사건의 해결과는 무관하게 된다.

결국 농생대의 수정제안서는 N번방 사건을 여성혐오 범죄가 아닌 일부 가해자들의 도덕적 타락에 의한 사건으로 해석하고, 그에 따라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사회에 만연하거나 모든 남성이 가해자는 아니라는 주장을 전달하고 싶은 것으로 해석해볼 수 있다.

 

#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이다?

반면 농생대에 맞서 수정제안 철회 요청서를 발의한 공동발의인들은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을 따를 경우 26만이라는 수치의 명확성과 신뢰성은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사건이 일어났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또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으므로 아동 청소년 보호보다 여성 보호에 집중하는 것이 맞으며, 사건의 사후처리보다 사건의 근본적 원인을 예방하는 재발 방지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타당하다. 차별금지법 역시 N번방 사건의 기저에 깔린 여성혐오와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타파하는 데 기여하는 수단이 된다.

결국 공동발의인들의 철회 요청서는 N번방 사건이 일부 악마적인 가해자들의 소행이 아닌 명백한 여성혐오 범죄이자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산물이며, 이를 정확히 짚고 타파하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주장하고 싶은 것이라 해석해볼 수 있다.

이처럼 연운위의 성명문의 해석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분쟁을 꿰뚫는 핵심에는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다. 각 단과대별로 상이한 입장문 역시 마찬가지이다. 통일되지 않고 강조점이 다른 단과대별 입장문도 결국 N번방 사건의 본질을 둘러싼 견해 차이로 인해 발생하는 것이다.

 

3.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인가?

그렇다면 문제는 N번방 사건의 본질이 과연 무엇이냐는 문제로 귀결된다. N번방 사건에 분노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쯤되면 정말로 N번방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 과연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찰하고 합의 지점에 이르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은 갈등은 지속적으로 일어날 것이며, 끝없는 대립의 장이 펼쳐져 사건의 본질에 대한 담론은 흐릿해질 것이다. 더하여, 사건의 본질에 대한 담론의 부재는 결과적으로 디지털 성범죄의 반복을 낳을 것이다. 우리는 사건의 예방 해결, 갈등 중재 등 모든 것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N번방 사건의 본질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사건에 대한 분노, 페미니즘 백래시에 대한 맥락을 최대한 배제한 채, N번방 사건이 왜, 어떻게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고찰해보고자 한다.

 

# 피해자는 어떻게 피해자가 되었나

N번방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서 먼저 피해자가 피해자가 되기까지의 과정부터 살펴보자.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누구도 타인으로부터 성적 착취를 당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며 자신이 성적으로 착취당하는 영상을 공개하고 싶은 사람 역시 없을 것이다. 즉 피해자들은 원치 않게 피해자가 되었다.

그렇다면 피해자들은 도대체 왜, 어떻게 성착취물을 찍게 된 것일까?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N번방을 운영하고 성 착취를 자행한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을 담보로 피해자들을 협박했다는 것이다. 가해자들은 우선 메신저 앱을 이용해 스폰 알바 모집과 같은 게시글로 피해자들을 유인한 다음, 얼굴이 나오는 나체사진을 받아 이를 빌미로 협박해 성착취물을 찍게 하고 이를 유포하는 수법을 이용했다. 심지어 피해자를 유인한 뒤 강간한 영상을 남기고 이를 빌미로 협박하기도 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협박은 남에게 어떤 일을 하도록 위협하는 행위로, 협박을 당하는 사람은 공포심에 자신의 의사와 반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즉 협박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협박을 가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약점을 쥐고 이를 빌미로 상대방에게 공포감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협박이 전혀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이 가해자들의 협박에 넘어가 성착취물을 찍게 되었다는 것은, 곧 자신들의 약점이 가해자들의 손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약점은 피해자들의 나체 사진과 영상물들, 이었다.

몸을 빌미로 한 협박은 피해자들이 나의 알몸 사진/영상이 찍히고 그것이 유포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의 두려움이 크기는 그들이 성착취물을 찍게 될 정도까지 컸다. 무엇이 그렇게도 두려웠던 것인가? 그들은 누군가의 시선을 두려워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깊게 생각해보면 나의 몸을 찍고 관음하는 이때의 누군가가 단순히 불특정 다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몸이 찍히는 누군가, 이 찍힌 몸을 관음하는 누군가는 성별 특질에 따라 확연히 구분된다. 전자의 누군가는 여성이며, 후자의 누군가는 남성이다.

납득하기 어렵다면 리벤지 포르노라 흔히 일컬어지는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에 대해 고찰해보자.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은 반드시 피해자와 가해자가 두 성별로 양분된다. 영상물에는 분명 두 사람, 여성과 남성이 모두 나체로 등장하지만, ‘여성만이 협박을 당하고 유포를 두려워하며, 심지어 유포가 되었을 때에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 한다. 왜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한다면 두 성별이 같은 조건에 있음이 분명한데, 피해는 한쪽만 당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가? 이는 그 영상물에서 대상화되는 객체와 영상물을 소비하는 주체가 명확히 구분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지점이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과 N번방 사건이 같은 맥락의 범죄인 이유이다. N번방 사건 역시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과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며, 이때 피해집단과 가해집단의 성별이 뚜렷하게 구별된다. 즉 피해집단은 여성이라는 특질로 묶인, 대상화당하는 집단이며 가해집단은 남성이라는 특질로 묶인 소비하는 집단이다.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된 것에는, ‘여성의 성적대상화남성의 소비의 문제가 필연적으로 개입될 수밖에 없다.

 

# 여성의 (성적)대상화, 남성의 소비

남성과 여성은 서로의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가 느끼는 대상화에 대한 두려움의 정도를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두려움의 크기가 성별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훨씬 대상화를 두려워한다. 화장실이나 모텔을 갈 때 불법촬영물이 숨겨져 있을까 걱정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여성이다. 남성들은 이 같은 걱정을 현저하게 적게, 혹은 아예 하지 않으며, 남성의 불법촬영물은 여성의 그것과 달리 여기저기에 널려있지 않다. , N번방 사건의 피해자들이 피해자가 된 것은, 피해자들이 여성이었기에, 다시 말하면 성적 대상화의 두려움이 큰 존재들이었기에 가능했다.

대상화라는 말 속에는 누구의 대상인가의 문제가 깊게 관여되어 있다. 주체와 객체가 필연적으로 상정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때의 객체, 즉 대상화되는 것은 여성이며 주체, 즉 대상화하는 이는 남성이다. 대상화의 권력 관계에서 우위에 위치한 남성들은 여성들의 외모를 품평하고, 그들의 신체를 소비함으로써 '남성성'을 획득한다.

여성이 대상화되고 남성이 이를 소비하는 예시는 수없이 많으며 일상적이다. 여성들의 신체와 외모는 쉽게 평가되고 경쟁된다. 뉴스 기사나 인터넷의 사이트에서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 등 신체를 강조한 만화에 대한 광고 등을 접한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성인 만화 나 잡지에서 여성은 남성의 시선이 닿는 대상으로 존재로, 여성은 늘 도발적인 자세와 표정을 동반하며 그들의 신체가 부각된다. 여성들이 술자리의 야한 농담과 안줏거리, 남성들의 평가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사실은 많은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 커뮤니티에서 일반인 여성들의 사진들은 지인 능욕등의 이름으로 이용되고 도용된다. 여성들의 외모에 순위를 매기고 여성들을 등급으로써 평가, 성희롱하는 대학 단톡방 사건들, 남성 교수와 여성 학생 간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은 대학 내에서 매년 터진다.

여성의 대상화는 여성이 가장 극단적이고 성적으로 대상화된 포르노 산업에서 특히 극대화된다. 여성향 포르노보다 남성향 포르노 산업이 훨씬 공고하며 그 규모와 수치가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은, 포르노의 주 소비 계층이 남성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남성들은 포르노를 소비하는 것을 넘어 포르노 배우의 외모, 몸매와 연기 등을 평가하고 이같은 정보를 댓글과 커뮤니티, 채팅을 통해 공유한다. 전문 포르노 배우를 넘어 걸그룹, BJ, 모델, 심지어 일반인의 야한 사진을 사이트에 올리고 관음하기도 한다.

앞서 예시로 나온 '리벤지 포르노'라는 단어 역시 여성의 대상화가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말해준다. 끔찍한 불법촬영물 범죄 사건은 '포르노'라는 명칭으로 사회에 거듭 인용되며, ‘리벤지라는 말이 덧붙으며 마치 불법촬영물이 퍼지는 것이 타당한 원인을 가진 복수인양 보이게 한다. 심각한 범죄인 것이 자명함에도, 여성이 나체로 나온 영상은 성적 판타지와 욕구를 풀어주는 포르노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의 일상, 그것도 성생활이라는 가장 은밀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포르노라는 이름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무섭기 그지없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다며 반문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남성도 대상화를 당하며 여성이 소비의 주체가 될 수 있지 않느냐는 반문이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그 숫자가 여성에 비해 모든 분야에서 현저히 적다면? 이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단순히 성별을 반전시켜 남성들도 당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남성들은 여성들과 동등한 깊이로대상이 됨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끔찍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을 옹호하는 한 남성이 있다. 우리는 그 남성에게 너의 어머니//여동생/누나가 당했다고 생각해보라고 말할 수 있으며,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러나, 이는 명백히 차별적이다. 과연 이것이 제대로 된 '역지사지'인가? 제대로 된 역지사지라면 당신(남성)’이 당했다고, 피해자가 되었다고, 나체 동영상이 소비된다고 생각해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역지사지함에 있어서 그들이 아닌, 그들 주위의 여성들이 개입된다. 남성들은 피해자가 되지 않을 전제가 늘 깔려 있다.

'피해자가 되지 않을 전제'를 가진 남성들은 자연스레 성범죄 사건에 무감각하게 될 수밖에 없다. ‘체감공감은 차이가 있다. 체감은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몸으로 느끼는 것이지만, 공감은 노력의 영역이다. 남성들은 늘 피해자로서, 대상으로서 현존하였던, 그 가능성을 느껴보지 못했으니(혹은 현저히 적게 느꼈으니) 여성들의 두려움과 공포를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여성 대상 성범죄 사건에 분노하고 목소리를 크게 내는 성별이 항상 여성인 것은 이 문제가 그들의 체감이자,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 가해자는 어떻게 가해자가 되었나

N번방 사건의 피해자는 여성이기에 피해자가 되었다면, 가해자는 어떤 과정을 거쳐 가해자가 된 것일까? 이때 주목할 것은 갓갓’, ‘박사가 어떤 삶을 살아왔고 어쩌다 범죄의 길로 빠지게 되었는지가 아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이들이 어떻게 피해자의 영상을 대가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는지, 즉 디지털 성범죄가 어떻게 산업화되었는지, 그리고 이 산업화를 가능하게 만든 것이 무엇인지이다.

디지털 성범죄의 산업화를 논하기 위해서는 앞서 이야기했던 여성의 대상화와 남성의 소비 담론을 가져와야 한다. 말했듯 우리 사회에서 대상화 당하는 계층은 여성, 이를 소비하는 계층은 남성이다. 여성 외모의 순위를 매기면서, 여성의 신체가 강조된 사진과 그림, 영상물을 소비하면서, 포르노와 포르노 배우를 소비하고 평가하면서, 그리고 이러한 이미지들이 미디어와 매체를 통해 재생산되고 이를 감상하며 여성들의 대상화와 남성의 소비는 더욱 공고화된다. 즉 남성집단의 소비문화는 사회 전반에 만연해있으며 자연스럽게 일상에 녹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남성 집단의 문화와 소비는 여성들을 대상화하는 것과 이를 통해 그들이 남성성을 획득하는 과정 자체를 무감각하게 만들고, 그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게 만든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스럽고도 무감각한 남성집단의 소비문화가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바로 디지털 성범죄의 산업화이다.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처음 가시화된 것은 소라넷부터이다. 1996년 해외에 서버를 두어 2016년까지 생존했던 소라넷은 파일노리, 웰컴 투 비디오, 텔레그램 등으로 영상을 올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플랫폼만 바꾸어 생존해왔다.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은 운영진 몇몇만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끝나곤 했으나, 운영진 몇몇의 처벌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디지털 성범죄는 조직적으로 산업화되어 있으며, 그 자체가 수많은 사람과 업체가 유착된 거대한 수익창출구조 모델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성범죄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이다.

피해자의 불법촬영물은 어떻게 해서 디지털 성범죄 산업의 수익 창출을 불러왔을까? 지난 2017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국내 웹하드 업체들이 디지털 성범죄의 가해자로 적극적으로 가담하며 산업을 형성해온 것을 드러냈다. 영상을 올릴 수 있는 파일노리, 위디스크 등의 웹하드 플랫폼은 불법 촬영 영상을 올리는 전문 업로더에게 수익을 주며 사이트에 불법 촬영물이 유통되게 하고,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 홍보하며 고객들을 유치한다. 유통된 불법 촬영물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플랫폼의 조회수가 올라가면 플랫폼은 광고를 걸어 수익을 내거나 회원제 유료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고객들에게서 수익을 창출한다. 여기에 더해 웹하드 업체는 콘텐츠를 필터링하는 필터링 회사를 함께 운영하거나 유착관계 형성을 통해서 역시 부당한 수익을 창출한다.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이러한 디지털 성범죄 산업구조 속에 피해자의 영상을 삭제하는 장의업체도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불법촬영물이 인터넷상에서 떠도는 것에 고통스러워하는 피해자들은 돈을 주면서까지 장의 업체에 영상 삭제를 요청한다. 이때 장의 업체는 피해자를 위해 영상을 삭제하려는 선량한 의도를 가진 경우도 있겠지만, 웹하드 카르텔 사건으로 인해 영상을 삭제하는 장의 업체 역시 웹하드 업체와 유착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것이 드러났다. [각주:2] 이는 피해자가 고통 속에 영상을 지우려고 노력할 수밖에 없다는 점까지도 이용하여 수익을 창출하는, 명백히 피해자를 기만하는 산업구조이다.

, 디지털 성범죄는 누군가가 영상을 올리고, 영상을 소비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이트는 광고수익을 받고, 소비자들이 감상 후 댓글로 영상 추천과 공유 등 2차 가해를 하고, 피해자는 영상을 지워달라고 사이트에 요청하고, 이를 지워주는 업체는 피해자로부터 돈을 받고, 그러면서도 영상 제공자와 결탁해 영상이 올라가는 하나의 거대한 산업구조의 형태를 띠고 있다. 피해자가 고통받을 동안, 더 나아가 피해자의 고통을 이용해 이 산업구조 속 유착된 수많은 업체들은 수익 창출에 힘쓴다. 이러한 기이하고 기형적인 디지털 성범죄 산업구조를 살펴본다면, 단순히 N번방 사건의 가해자 몇몇에 집중하고 그들을 처벌하려는 시도는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한 가지 주목할 점은, 이러한 기형적인 디지털 성범죄 산업구조가 버젓이 존재할 수 있으며 플랫폼을 바꿔 생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소라넷으로부터 웹하드, 다크웹, 웰컴투비디오, 그리고 N번방 사건까지. 이들은 명백히 성범죄·성착취를 자행하고 있었으며 수십만 명의 업체와 소비자가 연관되어 있었음에도 음지에서 몇 개월, 몇 년, 심지어 몇십 년 동안 숨겨질 수 있었다. 왜일까? 이러한 거대 산업의 존재는 단순히 이들 범죄가 치밀해서, 음지에 있어서라는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한국 사회가 이 같은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무시, 더 나아가 조장해왔기 때문이다. 바로 여성혐오를 통해서이다.

여성혐오의 혐오는 단순한 ‘hate’의 개념이 아닌 대단히 포괄적인 의미이다. 여성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는 것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여성을 자연스레 배제하는 것, 여성의 외모를 숭배하거나 여성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 역시 여성혐오이다. 남성집단은 여자 연예인 혹은 포르노 배우의 외모와 몸매 품평하고, 품번을 추천하고, 야한 움짤(ex.은꼴짤)을 만들어 이를 공유하며, 디지털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피해자의 영상을 포털사이트에 검색하는 등 2차 가해를 하기도 한다. ‘한남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기 전까지 김치녀라는 용어의 문제점을 누구도 인식하지 못했으며, 여성은 남성과의 관계에서 데이트폭력과 강간, 안전이별을 걱정한다.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세심하고 감정적이며, 수동적이고 의존적이고 질투가 많다는 특징이 여성성혹은 여성적이다라는 단어로 표현, 공유된다. 유명 걸그룹은 여자가 쉽게 맘을 주면 안돼라는 가사의 노래를 부른다. 이러한 무수히 많은 예시가 모두 여성혐오에 해당된다. 즉 여성혐오는 이미 우리의 일상이 되어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일상적인 여성혐오는 매우 자연스럽고 은밀하여 이 같은 예시들이 여성혐오라는 것에도 무감각하게 만든다.

일상적인 여성의 배제와 편견, 차별과 여성혐오는 남성집단뿐 아니라 여성들 사이에서도 공유되고, 이러한 여성혐오 문화는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일조한다. 이성적, 주체적, 능동적 등 남성적인 특질에 우월한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권력의 차등이 생기며(이른바 젠더권력’), 여성혐오적 표현들과 이미지들로 인해 여성들의 발언권은 축소된다. 여성들을 대상화하고 소비하면서도 여성들에게 순수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그리고 여성들의 발언권을 약화시키고 침묵시킴으로써 여성들은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쉬우면서도 자신이 피해자인 것을 드러내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결과 자연스레 남성집단과 한국 사회는 성범죄에 무감각해지면서 성범죄를 방조하게 된다.

 

#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

종합해보자면,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원인이 맞다. 성차별적 사회구조는 명시적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은밀하다. 우리의 삶과 사고방식에 깊게 침투되어 있어 진지하게 고찰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부정하게 되기 쉽다. 실제로 N번방 사건 이후에도 이러한 경향이 짙게 보였으며 이로 인해 사건의 본질은 다양한 방식으로 흐려진다.

N번방 사건의 실체가 드러나고 일부 언론들은 조주빈을 비롯한 가해자 개인의 삶에 포커스를 맞추곤 했다. 그러나 이처럼 몇몇 가해자에 집중하고 이들을 악마화, 심지어 동정하기까지 하는 것은 여성의 대상화와 성범죄가 하나의 거대한 산업으로써 존재한다는 점을 탈각시킨다. N번방 사건과 같은 무수히 많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이 단순히 몇몇 개인의 도덕적 타락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아동청소년에의 집중 또한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피해자들은 아동·청소년이기 때문에 대상화가 된 것이 아닌, ‘여성이기에 대상화된 것이다. 피해자들 중 아동·청소년이 많았던 것은 그들의 물리적, 정신적 힘이 성인보다 약하기 때문에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쉬워서였을 뿐이다. 이는 사건의 심각성을 더해주는 부가적인 요소일 뿐, 여전히 사건의 핵심은 여성의 대상화이다. 이를 무시한 채 아동청소년을 부각하는 것은 마찬가지로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디지털 성범죄 산업의 맥락을 탈각시킨다.

같은 맥락에서 사건의 사전예방보다 사후처리에 집중하는 것 역시 본질을 흐린다. N번방 사건은 지속적으로 터지는 (디지털) 성범죄의 연속선상에 있는 것이 분명하기에, 이제 사후처리보다 사전예방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지 못한 채 몇몇 가해자 처벌과 피해자 구제를 외치는 것은 당장의 미봉책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구조 분석을 통해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피해자는 또다시 발생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젠더갈등이라는 용어와 페미니즘 백래시 역시 N번방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몇몇 사람들은 N번방 사건 속 페미니즘의 맥락을 탈각시키며, ‘모든 남성이 그런 것은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또한 N번방 사건에 관한 논란을 젠더갈등이라는 용어를 통해 성별 대립의 장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N번방 사건을 통해 여성계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모든 남성이 잠재적 범죄자라는 것이 아니다. 젠더권력과 여성혐오,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사회 깊숙이 내재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을 가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모두 탈각한 채 모든 남성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무책임한 것이다. ‘일상적으로 대상화와 범죄에 당할 위협에 시달리는 것자신이 가해자로 몰리지 않길 바라는 것은 염연히 양자간 경중이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페미니즘 백래시로 사건의 본질을 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채, 그저 스스로에게 올 손해를 모면하는 것을 우선으로 삼는 일을 더이상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본질을 흐리려는 시도를 그치고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음을 인정하면, 지금까지 플랫폼만 바꾼 채 끊임없이 존재해 온 디지털 성범죄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다. 또한 더 나아가 디지털 성범죄뿐 아니라 미투운동이 왜 거국적으로 일어나는지, 왜 매년 단톡방 성폭력 사건과 교수의 권력형 성폭력 사건이 터지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이 모든 성범죄를 관통하는 키워드가 성차별적 사회구조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성범죄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는 것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해왔으며, 아직도 개선되거나 사라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성범죄 사건에서 페미니즘과 여성혐오,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맥락은 절대 탈각될 수 없다.

 

4.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서울대

다시 서울대 내에 있었던 분쟁 사건으로 돌아오면, N번방 사건의 본질은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맞기 때문에 연운위의 성명문은 이를 잘 지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성명문으로 인해 서울대 내부의 갈등이 발생한 것은, 곧 구성원들 사이에 잠재되어 있던 젠더 갈등과 페미니즘 백래시가 겉으로 확연히 드러남을 보여줌과 동시에 사건의 본질을 흐리고 오독하려는 움직임이 서울대 내부에도 존재함을 보여준다.

N번방 사건의 본질을 오독하는 이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N번방 사건의 본질이 성차별적 사회구조에 있으며 사회적으로 이것이 만연하고 정당화되고 있다는 것은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N번방 사건뿐 아니라 그동안 있어 왔던 소라넷, 다크웹하드, 웰컴 투 비디오와 같은 디지털 성범죄 사건, 미투 운동, 사회의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이 가리키는 종착점은 곧 성차별적 구조가 사회적으로 만연하다는 명제이다.

만연한 성차별적 사회구조는 대학 역시 피해가지 않는다. 연운위의 성명문에서도 지적했듯, 교수 학생간 권력형 성범죄는 서울대에 수없이 많이 있어 왔다. 사회대 H교수, 인문대 A교수, 음대 B교수 등 매년 터지는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과 알파벳만 바뀌는 교수들은 성차별적 사회구조와 N번방 사건이 어느 외딴 섬 이야기라거나,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과 괴리된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어쩌면 필자가 글을 쓰는 지금, 당신이 글을 읽는 지금 이 순간에도 대학 내부에서 성범죄가 발생하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지속적으로 터지는 학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에 대해, 이제까지 해왔듯이 단순히 피해자 구제와 가해자 처벌에 집중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서울대 역시 변화가 필요하다. TF를 구성하고 피해자 보호와 교수 파면을 외치는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사건의 예방과 재발 방지에 힘쓰지 않는다면 알파벳만 바뀌는 교수들은 끊임없이 나올 것이다. 대학은 사건의 구조와 본질을 제대로 파악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번 N번방 사건에서의 연운위 성명문과 같이, 학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다룸에도 있어서 대학이 반드시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원인으로 짚어야 한다는 뜻이다.

대학이 권력형 성폭력 사건을 해결하려 할 때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원인이라는 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그동안 고민했던, 나아가 꺼려왔던 지점일지도 모른다. 젠더갈등을 일으킬 우려가 있고 교수 학생 간 권력 격차에 비해 학생들이 모두 체감할 수 없어 의견이 합의되지 않은 지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내의 끊임없는 권력형 성폭력 사건 역시 N번방 사건처럼 피해자는 항상 여성으로, 가해자는 항상 남성으로 대변된다. 교수 학생 간 권력형 성폭력 사건은 교수와 학생의 위계관계, 권력 격차도 주요한 요인이지만, 젠더권력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주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를 인정하고 짚을 때이다. 진정으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더 나은 대학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 앞으로 학내에서 터질 수많은 권력형 성폭력 사건들에 대해 서울대는 성차별적 사회구조가 원인임을 명시적으로 짚어야 할 것이다.

  1. 이현지, <‘n번방 사건학내 여론 제각기 터져 나와>, 서울대 대학신문, 2019.04.09 http://www.snu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1044   [본문으로]
  2. 황춘화, <양진호 1000억대 돈줄 뒤엔병 주고 약 파는 음란물 카르텔’>, 한겨레, 2018.11.0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68412.html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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