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이후의 페미니즘 교육
쨈
한 해를 떠들썩하게 만든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N번방 사건’에 대해 누군가는 박사, 갓갓과 같은 악마들의 문제라고, 누군가는 처벌만 제대로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소라넷을 폐쇄해도 텔레그램처럼 방법만 바뀐 같은 사건이 반복되는 것을 보며 우리는 그 바탕에 더 근본적인 문제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성을 상품으로 생각하고 여성들의 일상을 포르노로 소비할 수 있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낳은 병리적 문화는 개인 이전에 사회 전반, 학교에도 실재합니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차별적·병리적 문화를 해소하고 평등한 문화를 확산시킬 교육이 필요합니다. 바람직한 미래의 페미니즘 교육을 함께 상상해보고자 <선생님, 페미니즘이 뭐예요?>와 <선생님, 민주시민교육이 뭐예요?>의 저자이자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중학교 교과서의 공저자이신 염경미 선생님과 초등성평등연구회의 오수연 선생님을 초대했습니다.
1. 텔레그램 성착취와 학교
쨈 : 염경미 선생님, 오수연 선생님 안녕하세요. 민주시민교육, 초등 성평등이라는 서로 다른 자리에서 페미니즘 교육을 위해 애쓰고 계신 것으로 아는데, 오늘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 이후의 페미니즘 교육에 대해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에 대해 여러 청소년이 학교와 교실에 이미 그 뿌리가 있는 문제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직접 학교 현장 학생들의 성차별적 행동들을 볼 수 있나요?
오수연 쌤 : 초등학생들도 사회와 학교에 이미 존재하는 성차별적 분위기에 물드는 모습을 자주 보여 줘요.
염경미 쌤 : 기존의 사회문화가 가부장제 질서를 재생시키는 대중매체로 가득하니까 학생들이 영향을 많이 받아요. 영화, 드라마, 예능프로그램, 대중가요, 광고를 통해 남자의 지배질서가 재탄생하기에 여학생은 외모 중시, 여성스러움, 사랑스러움, 나서지 않는 조신함을 미덕으로 삼고 자신을 훈련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에 제재를 받아요. 학교 내에서도 ‘여자가 어디 나서느냐? 센 여자, 똑똑한 여자 좋아하는 남자 없다, 여자는 미모, 남자는 권력(돈)’ 이런 식의 말이 자연스럽게 들려요.
쨈 : 선생님들은 그러면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과 학교 현장에서 볼 수 있는 학생들의 성차별적 인식과 행동이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수연 쌤 : 네.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과 관련하여 여성 청소년에게 성은 부끄러워해야 하는 것이지만 남성 청소년은 성을 과시해야 한다는 성차별적 인식이 있어요. 여성 아동, 청소년은 건전해야 한다는 기존의 성에 대한 남녀 차별적인 인식 때문에 텔레그램 가해자들의 협박이 여성 청소년, 아동에게 유효할 수 있었어요. 남성 아동·청소년의 일탈에는 협박이 가해지는 일이 적고, 신상이 드러나더라도 오히려 당당한 모습인 경우가 많은 것과 대비되죠.
염경미 쌤 : 2020년 <디지털 원주민 세대로서 중학생의 생활과 문화>라는 주제로 연구하기 위해 만난 여학생 5명, 남학생 5명과의 면담 과정에서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이 여학생과 남학생에게 다르게 다가왔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먼저 여학생의 경우, 여성 특히 미성년 여성을 성적 대상화 하여 음란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점에 대하여 두려움과 분노를 동시에 드러냈어요. 지금 10대의 학생들은 디지털 원주민으로서 SNS를 통해 자연스럽게 채팅을 하고, 이를 계기로 오프라인에서 대면 관계로 이어지기도 하므로 피해자가 바로 자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디지털 범죄를 뿌리 뽑게 되기를 희망해요.
남학생의 경우는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바라보는 지점이 성차별적 시선을 드러냈어요.
예를 들어 “남자의 성욕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이를 너무 법으로 막는다. 예를 들면 성매매 금지법으로 막다 보니 디지털 성범죄가 점점 늘어날 수밖에 없다.”, “여성가족부 등도 문제다. 남성들을 차별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서다. 폭파 시키고 싶다.”, “우리도 당연히 야동을 본다. 일상이다. 죄의식 가지지 않는다. 누구나 보는 거다.”, “유튜브를 많이 보는데 주로 여성 비하적 발언, 성적 발언을 세게 하는 남성 유튜버가 인기다.”, “실제로 여친 사귀고 싶다. 그런데 그게 잘 안되니까 사이버상에서 논다.”, “미투라고 하는 여자들 모두 문제다. 연애하다 헤어지면 미투해서 남자 인생 망치게 한다.”와 같은 말들을 했어요.
학교의 문화 자체가 남자에게는 관대해요. 심지어 성희롱, 여성 혐오적 발언을 하여도 그들(남자들) 사이에서는 영웅이 돼요. 페미니스트 여학생은 공격당할까 봐 자신이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하지 못해요. 이런 것은 모두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학교에서 재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성폭력에 대해서도 남학생들은 매우 관대해요. 심지어 “모든 남성을 잠재적 성폭력자로 만든다.”라고 분노를 표출하죠. 문제를 성폭력 가해자에게 찾지 않고 피해자에게 돌림으로써 정당화시키려 할 정도예요. 인터넷에서 일파만파로 억지 논리가 중학생 남학생에게는 상당히 잘 먹히고 있어요.
2. 성차별을 부추기는 기존의 교육
쨈 : 학생들이 가진 이런 성차별 문화의 형성에 대중매체나 사회가 아닌 기존의 교육도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다면 기존 교육의 어떤 부분이 문제라고 생각하세요?
염경미 쌤 : 학교에 애초에 성 평등 교육이 없는 게 문제에요. 성폭력 예방교육과 양성평등교육이 있을 뿐이죠. 이마저도 매우 형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오수연 쌤 : 맞아요. 넓은 의미의 성교육이 연간 15시간 이상인데 이 시간을 성교육만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안전교육 등과 합쳐져서 흐지부지되기 일상이에요. 문서에 기록은 되어 있고 기록된 체계는 있지만 창의 체험 시간에 할 것인지 보건교사가 할 것인지 체육 교사가 할 것인지 성교육의 주체도 명확하지 않고, 주지주의적 교육, 입시 위주 교육에 밀려서 학기당 1회 정도 외부 강사가 와서 하는 게 전부이고 중고등학교일 경우에는 자습시간으로 활용되기도 해요.
교육부 차원에서 이미 성인지 감수성이 부족해서 성교육에도 문제가 많아요. 성교육에서 여성의 성을 임신 출산에 가두고 전체적으로 터부시하는데 반대로 남성에게는 성적 욕구가 정당한 권리로 느껴져요. 성폭력 예방 교육은 가해자 예방 중심이기보다 피해자 예방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때문에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드러내기 어렵고, 가해가 일어난 원인을 자신에게 돌리는 경우가 생겨요. 이 내용을 중심으로 2차 가해가 일어나기도 하고요. 성교육 표준안도 논란이 많은데 교사용 지도안에 성폭력 예방 방법으로 여아 부분에만 짧은 치마를 입지 않기, 밤에는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이 들어가고 지하철에서 누가 나를 만지는 것 같으면 가방끈을 길게 내린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어요. 논란이 되었던 성교육 관련 교사용 자료가 게시판에서 모두 삭제되고, 2017년 수정된 자료가 나왔지만, 여전히 문제로 지적되는 부분이 많아 다시 개편작업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그마저도 세 차례 발주한 정책연구과제가 모두 유찰되었다는 이유로 2019년 2월 이후 작업이 중단된 상태입니다. 전반적으로 욕망과 욕구를 억누르는 분위기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교육 현장에 차별적인 문화가 있는 것도 문제예요. 성별을 학생들을 관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두 줄 설 때 남자 한 줄 여자 한 줄 세운다거나 운동회가 끝나고 공책을 나눠줄 때도 보통 파란색인 남아용, 분홍색인 여아용으로 준비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들도 성별에 따라 나누는 것에 너무 익숙해져서 성 고정관념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는 색깔에 상관없이 공책을 무작위로 나눠줘도 아이들끼리 자연스럽게 성별에 맞춰 바꾸더라고요.
쨈 : 기존 교육의 이러한 문제점만 해결된다면 성 평등 문화가 확산과 발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요?
오수연 쌤 : 공교육 상의 변화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해요. 초등학생들의 경우는 교육을 받고 난 이후에는 오히려 성인들보다 엄격하게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학교를 올 때는 이미 백지상태가 아니에요.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만 사는 존재가 아니어서 고학년이면 뉴스도 보고 이미 미디어를 통해 오염되어 오기 때문에 교실 밖의 교육이 추가로 필요해요. 아이들은 흡수가 빨라서 학교 밖과 연계되지 않으면 교실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교육은 소용이 없어요.
염경미 쌤 : 교실 밖의 변화 없이는 학교 내 교육, 학교 내 성 평등 문화의 확산이 어려워요.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들어도 저항을 하는 남학생들이 있으며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고요. 교사가 용기를 내어 ‘성차별’ 문화와 인식이 결국은 ‘성폭력’을 가져온다는 수업을 진행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어요. 이에 대하여 거부감을 가진 학생이 민원을 넣거나 그 부모가 항의성 민원을 제기하여 위축시키거든요.
오수연 쌤 : 맞아요. 마중물 선생님 사례처럼 실제로 민원 제기로 교육과정이 위축되고 소송까지 가게 되는 사례들이 있어요. 선생님들이 수업을 진행할 때 민원 제기에 대한 두려움을 계속 가지게 돼요. 민원에 아무리 개인적으로 대항한다고 해도 민원이 많아지면 학교 차원에서의 압박도 강하고요.
쨈 : 성교육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교사 개인이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벽이 많네요. 텔레그램 성 착취와 같은 사건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성 평등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 교육은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요?
염경미 쌤 : 공교육은 궁극적으로 민주시민을 육성하기 위해서 존재하는데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 사회는 그야말로 성 평등한 사회가 될 때, 가능해요. 왜냐면 어느 한 성(남성)이 다른 한 성을 억압하거나 무시하고 그들을 대상으로 성 노예화하는 문화와 의식을 가진다면 그것은 반인권적 상황으로 민주사회다 할 수 없죠.
교사 역량 강화를 위한 페미니즘 연수를 매년 10시간 이상 이수하게 하여 성적 불평등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해요. 아직도 ‘성 평등’이라는 말 자체를 가지고 ‘동성애자 옹호’라고 하면서 ‘양성평등’이라고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교사들 대부분도 성 평등 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모르는 사람들이 많고 성폭력이 존재한다는 걸 전제하여 예방 교육을 하고 있어요. 일단 인식이 되어야 문제를 바르게 보고 고치려는 의지를 가지게 되지요.
오수연 쌤 : 페미니즘 교육이 정의만 가르치는 주지주의적인 교육에서 벗어나 교사와 학생의 평등한 관계를 기반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페다고지, 교육 실천의 측면에서 필요하기 때문에 교사 역량 강화가 중요해요. 전체 교사의 성평등 인식 수준도 걱정스러운 상황에서 교사 지도서도 문제가 있고 연수 자료도 문제가 많아요. 성 평등 연수 이수 시간이 정해져 있어도 시간 때우기로 흐지부지되기가 십상이고요. 연수과정 이외에도 교대, 사범대와 같은 교사 양성 기관에서 커리큘럼을 점검하는 것이 필요해요. 모든 교과목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교사용 지도서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요. 학교생활 전반의 페미니즘 교육 생활화를 위해 노력해야 해요.
염경미 쌤 : 그런 다음에 각 교과서나 아이들이 좋아하는 도서, 대중문화에서 성 차별적인 요소를 찾아내어 수정하는 작업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져야 해요.
오수연 쌤 : 교과서도 삽화, 국어 지문 활용에서 다양한 성별, 인종이 등장하는지 어떻게 표현되는지 검토하는 것이 필요해요.
염경미 쌤 : 또 학교나 가정, 사회에서 무심코 하는 성 차별적인 대화나 언어에 대하여 “당신은 지금 성 차별적인 발언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지적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 가야 해요. 정치하는 사람들, 교사들은 모두 공적인 일을 하는 사람으로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언어의 사용은 학생들에게 많은 영향을 줘요. 그들이 공적인 업무를 맡기 전, 또는 시작하기 전에 철저하게 성차별 감수성에 대하여 사전 조사가 필요해요.
오수연 쌤 : 체계가 필요해요. 누가 어떤 내용을, 어떤 관점에서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가 필요하고 포괄적 성교육을 도입해야 해요. 성폭력 사안이 실제로 일어났을 때도 가해 학생을 그냥 전학 보내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 가해자가 교원일 때 조치는 어떻게 할지 피해 학생은 제대로 보호되는지 신고할 수 있는 분위기는 조성되어 있는지 체계를 정해두어야 해요.
디지털 성폭력도 학교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부분인데 세대 차이 때문에 보호자들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인지가 없어서 교사도 따라가기 힘들고요. 학교폭력실태조사처럼 주기적으로 실태조사를 한다든지 법과 함께 교육할 방법이 필요해요.
염경미 쌤 : 페미니즘(성차별에 저항하고 잘못된 제도나 문화를 바로 잡으려는 운동) 교육으로 민원에 시달리게 되면 교사의 교육활동이 위축돼요. 민주주의가 좋은 제도라는 것은 누구나 인지하듯이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깨는 대국민 광고(공익광고 포함)가 지속적으로 사방 곳곳에서 이루어졌으면 해요. 학교 안에서만 한다면 잘 안 되어요. 왜냐면 아이들은 이미 인터넷을 이용하여 학교 밖에서 더 많은 정보를 얻거든요.
오수연 쌤 : 페미니즘 교육이 정책적으로 내려오기 힘들지만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지금의 교육과정 내에서는 다룰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어서 교사가 시행한 교육의 법적 근거가 어디 있냐고 민원이 많이 들어오거든요. 예를 들어 성교육 표준안 자체에 성 소수자가 아예 빠져있어서 수업 중에 동성애를 다룰 법적·정책적 근거가 없어요. 민원을 방지하기 위한 법적·정책적 근거를 제시해주고 일반 시민을 상대로 공익광고와 같이 사회적 차원의 교육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요.
3. 페미니즘 교육이란?
쨈 : 페미니즘 교육 혹은 민주시민교육 의무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람의 수만큼의 다양한 페미니즘이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의무화를 한다면 페미니즘 교육을 위한 교사 지도서나 페미니즘 교과서를 만드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오수연 쌤 : 다양하더라도 경향성은 있기에 교사용 지도서가 가능해요. 교사가 일반적으로 학생에게 전달하기보다는 협력적인 관계를 조성하고. 대화를 많이 하고. 참여를 중요시하는 이러한 태도가 중요하거든요. 구체적인 교육내용이 아니라 교육내용에 접근할 때의 태도를 이야기하는 지도서요.
교사도 학생들의 위치성은 깨닫기 전에는 인식할 수 없어요. 아동이기 때문만 아니라 성별, 경제, 지역 등의 교차성에 있다는 것을 알고 다양한 관점을 교사가 가지게 하는 데에는, 각자의 위치가 변화한다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경향성의 지도서가 필요해요. 또, 각 선생님의 교육방식, 페미니즘을 공유하고 나누는 장에서 실천이 이론화되고 다시 연수내용으로 전달되며 교사 지도도 끊임없이 변화해야 해요.
염경미 쌤 : 교사용 지도서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요즘 여성혐오 문제, 디지털 성범죄가 심각하니 페미니즘 교육의 특화가 필요해요. 민주시민교육을 의무화 또는 전문화하고 그 안에 페미니즘 교육이 자리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요. 페미니즘 교육을 특화해서 한다면 교과서, 지도서 만드는 일은 가능합니다. 민주주의를 외치던 사람조차도 권력을 잡으면 여성을 성적대상으로 보고 성폭력을 행사하는 일을 수 차례 보면 더 절실히 요구해야 합니다.
쨈 : 이때 선생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페미니즘 교육이란 무엇인가요?
염경미 쌤 : 페미니즘이란 간접적인 성폭력이라고 할 수 있는 성차별적인 환경, 제도, 문화, 구조, 의식을 고쳐서 성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운동으로 페미니즘 교육이 곧 민주시민교육의 기본이에요. 민주주의 사회란 모름지기 인간의 존엄성, 자유, 평등을 그 이념으로 하죠. 성차별은 이미 여성의 존엄성과 자유, 평등을 훼손하는 행위에요. 그래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가 되면 모든 사람이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에 공감해요. 더 나은 민주주의, 실질적인 평등사회를 이루려면 페미니즘 교육은 기본으로 이루어져야 해요. 따라서 페미니즘 교육은 모든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여 진정한 의미의 질 높은 민주사회를 지향합니다.
오수연 쌤 : 페미니즘은 다양함을 추구해야 해요. 페미니즘도 다양하고 페미니스트 페다고지는 다양한 페미니즘 철학과 사상에 기반한, 다양한 교육 실천이 모인 것이니 더 다양한 모습을 가졌죠. 고정되지 않고 권위에 빠지지 않고 계속 변화하고 비판받아 진화하는 다양성과 아래를 향하는 시선이 페미니즘 교육이에요.
4. 교실 내 페미니즘 교육
쨈 : 학생들에게 학교 내에서의 교육으로 페미니즘에 대한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 가능할까요? 오히려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더 싫어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는 않을까요?
오수연 쌤 : 초등학생들이 페미니즘을 학교에서 접하면서 더 싫어하게 되거나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건 본 적이 없어요. 거부반응 자체가 실제로는 다양한 소수자성을 포괄하지만, 여성 인권만을 위한다는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에서 와요
아이들이 이미 세상을 경험해오고 있고 아동이기에 적어도 나이의 측면에서 사회적 약자로서의 경험이 있어요. 억압의 경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게 자기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 흥미를 끌어내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페미니즘 교육은 보다 유연하게 사고하는 것을 중요시하기에 다양하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나 연대하는 방식이 오해도 해소할 수 있어요.
염경미 쌤 : 성에 따라 페미니즘에 대한 요구가 완전히 달라요. 여학생은 존재 자체가 여성이면서 당한 성차별이 많고 도서도 많이 읽어서인지 페미니스트라고 자신을 밝히며 학교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해요. 그런데 남학생의 반발을 사거나 빈정거림을 당하다 보니 분반하여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반면에 남학생 중에서 여성혐오를 드러내며 성폭력 피해자에게 오히려 2차 가해를 하거나 꽃뱀 프레임을 씌우는 등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과격 발언을 하기도 하여 문제가 많아요.
이러한 남학생을 교육하는 데는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남교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가부장적 권위를 탈피한 친여성적 인권에 대한 인식과 행동을 하는 그런 남교사가 있어서 남학생 지도를 몇 번 한다면 수월할 듯해요. 그런데 여교사가 페미니즘 교육이라고 시작을 하면 거부감을 드러내며 역차별이라고 난리를 치는 아이도 있으니 어려워요. 남학생들이 이미 가부장적 사고와 행동을 하므로 남교사에게는 말도 못 하고 대들지 못하는데 여교사는 우습게 알고 여성 우월주의자, 편향된 교육 운운하면서 힘들게 해요.
쨈 : 마지막으로 페미니즘 교육이 공교육 내에서 이루어졌을 때 기대하는 효과는 무엇이고, 한계는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오수연 쌤 : 효과는 사회적인 합의점을 새로 만드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의무교육 내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이루어지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는 감수성을 공유하기 수월해지고 전반적인 인식 개선에 도움이 될 거에요.
한계는 아무래도 페미니즘 교육은 다른 교과와 다르게 계속 변화하고 진화해야 하니까 고정된 교육이 될 수 없다는 데에 있어요. 학교, 학급 사정에 따라서 교사의 관심 정도에 따라서 페미니즘 교육의 양과 질이 달라질 수 있어요. 페미니즘 교육의 형태는 정말 다양하기에 어려운 부분을 공유할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한계를 조금은 극복할 수 있을 거예요.
염경미 쌤 : 기대효과 7가지와 한계 3가지를 생각해봤어요. 1) 성차별 문화가 점점 사라지고 재생산 구조를 갖지 못할 것이고 2) 여자라고 우습게 여겨서 비하하거나 폭력적으로 몰고 가는 일이 줄어들 것이며 3) 성폭력이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하여 범죄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줄어들 것이라는 점 4) 더불어 행복한 가정, 직장, 조직 문화를 만들고 5)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에 넣고 이를 어길 경우 엄히 다스리며 6) 여성혐오적 발언, 인터넷에서 회자되는 여성혐오적 댓글이 줄어들고 7)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2차, 3차 가해가 줄어들 것이라는 7가지 부분에서 페미니즘 교육이 긍정적인 결과를 만들 것으로 기대해요.
하지만 1) 사회적인 문제나 구조의 문제를 바르게 보지 못할 경우, 성 대결적 양상을 띠며 여성혐오, 남성 혐오가 교실에 팽팽하게 되는 점 2) 책이나 토론을 통해 학습하지 않고 오직 인터넷의 댓글이나 SNS로 번지는 글을 통해 페미니즘을 접하게 되어 자신이 아는 지식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여 우기기 문화가 확대되면 토론 불가 상황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과 3) 지금 우리 사회가 디지털 성범죄를 남성 청소년기에 가지는 호기심 정도로 여기는 관대함 때문에 페미니즘 교육이 공교육 내로 들어오더라도 여전히 가지는 한계가 있어요.
5. 민주시민과 초등학교의 페미니즘
쨈 :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두 선생님의 이야기 너무 잘 들었습니다. 이제 선생님 각각의 민주시민교육 교과서의 공저자로서 또 초등성평등연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요.
먼저 염경미 선생님은 ‘페미니즘이 민주주의의 완성’이라고 책에서 이야기하셨는데 민주주의, 민주시민교육은 무엇이고 왜 페미니즘과 민주시민교육이 함께 필요한지 알려주세요.
염경미 쌤 : 도덕이나 윤리는 개인적인 문제 해결이나 의지를 말한다면 민주시민이란 공동체에 속한 시민으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더 생각해요. 우리가 사는 일상생활에서의 민주적인 문제 해결 능력, 민주적인 소통과정, 경청과 토론, 양보와 타협의 과정들, 내 생각에 대한 유연한 태도로 타인의 생각을 수용할 수 있는 개방성 등을 배우지 않고는 습득할 수 없어요. 1987년 6월 항쟁으로 형식적 민주주의를 얻었지만, 국회 등 정치판은 물론이고 우리의 일상을 보면 비민주적인 생활방식이 많습니다. 이를 성찰하고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학교교육과정에서 배워야 건강하고 민주적인 시민으로 자랄 수 있어요.
현재 학교교육과정에는 공식적으로 페미니즘 교육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마치 민주주의는 좋은 제도이고 민주시민은 민주공화국의 주인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페미니스트는 공공의 적으로 규정하곤 하죠. ‘페미니즘’이라는 말만 들어도 저항을 하는 남학생들이 있으며 잘못 이해하는 경우도 많아요. 보편적 인권이 아니라 자기에게 유리한 인권만 생각한다면 그는 민주시민이 아니에요. 민주시민교육에는 인권, 존중, 평등, 연대, 평화 등의 인류 보편적 가치에 대한 바른 태도, 이해, 실천적인 삶을 배우죠. 민주시민교육을 바르게 한다면 성 평등 문화 확산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어요.
쨈 : 결국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인류의 보편적인 권리를 이야기하는 페미니즘과 민주시민교육은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군요.
이렇게 필요성은 확실한 페미니즘 교육이지만 보통 비판적 사고능력은 중학교 이후에 형성된다고 생각하기에 초등학교 시기의 페미니즘 교육은 학생의 사고를 이끌어 내기 보다는 교사의 일방적인 지식전달로 진행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는데 초등학교 시기에 페미니즘 교육이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오수연 선생님의 의견이 궁금해요.
오수연 쌤 : 초등학생들이 이해하기 어렵다, 페미니즘 교육이 오히려 나쁜 것에 물들게 한다는 말 자체가 교사와 학생, 어른과 아이를 위계 짓는 관점이고 학생들의 경험 세계를 무시하는 관점이에요. 아이들은 이미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존재여서 ‘N 번 방 사건이나 연예인 자살 소식을 스스로 먼저 이야기하기도 해요. 이미 초등학생들은 기존의 성차별적 인식을 습득한 상태에요. 이미 ’여자애 같다‘가 상대를 비하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거나, 남자 연예인이 여장을 하면 우스꽝스러운데 여자 연예인이 남장을 하면 멋있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도 해요. 반면 여자아이라고 마음껏 소리 내어 웃거나 편한 자세로 앉지 못하는 것, 남자아이라고 말수가 적거나 섬세한 일을 잘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되어지는 것에 부당함을 표현하기도 하죠. 페미니즘 교육은 아이들이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해석할 관점을 알게 하는 거예요. 지구의 자전이라는 개념을 몰라도 낮과 밤은 경험적으로 알지만, 자전이라는 개념을 알면 현상을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것과 같아요. 페미니즘 교육이 학생들이 자신의 경험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주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페미니즘 교육의 내용이 연령층에 따라 다를 필요도 없어요. 성교육의 경우 다루는 내용 범위나 수준이 조금 다를 거예요. 초등학교에서의 관계 맺기가 나와 상대방의 경계를 인식하는 수준이라면 고등학교에서는 성적인 관계와 같이 더 심화된 교육이 가능하죠. 페미니즘 교육은 큰 차이가 날 필요가 없어요. 페미니즘은 기존의 주어진 것을 새로운 관점에서 해석하고 타인의 입장에서 불편하지 않고 긍정적인 사실일지 계속 질문을 던지는 차원이기에 평생교육의 문제에요. 초등학교 단계의 인격적인 존재로 타인을 대우하자는 명제가 성인 수준에서는 더 다양하고 실질적인 문제로 다가오는 것과 같이 심화 정도나 복합적인 정도에서 차이가 날 뿐이에요.
6. 페미니즘 교육의 미래
쨈 : 페미니즘 교육은 나이와 환경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필요하고 비슷하게 진행될 수 있는 보편적인 교육이군요. 민주시민교육과 초등학교에서의 페미니즘 교육에 관한 이야기까지 잘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들이 생각하시는 페미니즘 교육의 바람직한 미래에 관해 이야기 나누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염경미 쌤 : 성차별적 문화를 학습한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내려면 민주시민교육의 방법이 학습자 중심으로 생활 주변에서 그 사례를 가지고 와서 기존의 생각이 어디에서 영향을 받고 만들어졌는지를 성찰하기, 토론, 주장, 경청, 공감, 다시 쓰기 등을 통하여 생각의 변화를 재구성하고 자신의 언어로 발표하는 등의 지난한 노력이 필요해요. 성 평등이나 페미니즘을 직접적으로 목표하는 교육이 추가적으로 필요하고요. 학교 수업시수는 한정되어 있고 필요한 교육은 너무나 많아지고 있어요. 그러나 민주주의 완성은 마지막 계급인 여성이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제도와 문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더 나은 민주주의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민주시민교육 안에 페미니즘 교육이 자리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교육의 이념은 ’민주시민‘ 육성이에요. 민주공화국에 필요한 시민은 이기적 개인이 아닌 민주시민입니다. 우리 사회가 마주한 성폭력적인 상황은 사실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었으나 이제야 드러난 것이죠. 말하는 자는 듣는 사람을 필요로 해요. 이제야 비로소 성폭력 피해자가, 많은 차별받은 경험을 가진 여성이 말하기 시작했는데, 듣기조차 거부하며 여성 혐오 발언을 쏟아내고 2차, 3차 가해를 하고 있어요. 얼마나 우리 사회가 성폭력 피해자에게 폭력적이고 야만적인가가 여기서 드러나죠. 남성 권력자의 편을 드는 일은 쉬워요. 그러나 페미니즘 교육은 사회적 약자와 연대하고 그들의 인간다운 삶,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존중하는 인권교육이며 연대입니다. '살림' 교육이에요. 다 같이 살자는 교육입니다. 더 나은 민주주의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소수가 가졌던 권력을 다수에게 이양하는 일은 역사적 진보에요. 페미니즘은 사회발달에 따라 그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고자 자기 발전을 거듭할 것이라는 면에서 민주시민교육이기도 해요.
오수연 쌤 : 페미니즘은 기본적으로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이에요. 시작은 성별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페미니즘 교육이 더 많은 소수자성을 바라보게 하고 더 많은 대상과 연결이 되는 것이 바람직한 미래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을 만난 후 비건, 에코 페미니즘으로 확장되는 경우가 많은데 나를 존중하니 남을 존중하게 되고 동식물도 존중하는 거죠. 계속 변화하고 진화하는 모습, 내가 보지 못했던 다양성을 보게 해주는 교육이 페미니즘 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쨈 :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의 대화를 통해 페미니즘이 성인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살아가는 모든 연령층의 시민에게 중요하다는 것과 페미니즘 교육을 위해서는 흔히 생각하는 부족한 성교육뿐 아니라 학교 밖의 영향, 민원, 교사역량 강화와 같이 다양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하루빨리 페미니즘 교육을 위한 법적 근거도 만들어지고 교육과정에도 변화가 생겨 텔레그램 성 착취 사건을 반복하지 않는 미래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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