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존중받는 대학을 위하여
고슴도치뇽
불 켜진 샤 뒤에는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빛나는 서울대 뒤에는 무엇이 숨어있을까.
넓은 캠퍼스 안에는 그 존재를 인정받으려는 학내 노동자들의 치열한 투쟁이 있었다.
서울대 노동자의 1년을 돌아보며
-도서관 난방 파업부터 생협 파업, 기전노조 투쟁까지-
2019년 서울대 노동자들의 삶은 녹록치 않았다. 지난 겨울 기계전기 노동자들의 난방 중단 파업을 시작으로, 글로벌사회공헌단·언어교육원 한국어강사들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투쟁, 대학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휴게 공간이 드러났던 청소노동자 사망 사건, 저임금 고강도 노동을 버텨냈던 생협 노동자들의 대규모 파업, 자유롭게 노동조합활동 할 권리를 외쳤던 기계전기·청소경비 노동자들의 단식·삭발 투쟁까지. 그들은 열악한 노동 환경 속에서 일해야 했고, 본부의 노조 탄압을 견뎌야 했고, 투쟁을 할 때는 사회의 눈초리를 이겨내야 했다. 그들의 1년이 어땠는지 다시 기억해보자.
2019년 2월, 기계전기 노동자들의 파업
무기계약직 전환 1년이 지난 당시, 기계전기·청소경비 노동자들은 여전히 2017년 임금을 받고 있었 다. 임금 조건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은 계속 요구안을 양보해왔다. 최후에는 제조업 직종 종사자들의 평균 임금, 각종 상여금 지급, 차별 없는 복지조건 등 최소한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것들만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이를 거절했다. 학교는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교섭에서 불성실한 태도를 보이며 책임을 회피했다. 노동자들은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고, 최후의 보루로 파업을 택했다. 행정관, 도서관 등의 건물에 난방 작동을 중단하고 점거에 돌입했다. ‘도서관 난방 파업’은 곧 사회적인 논쟁을 불러왔다. 학문의 발전과 후속 세대 양성을 위한 대학 도서관의 난방을 꺼버리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의견과 파업은 법이 보장하는 노동자의 권리라는 의견 등 사람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한 가지 분명한 점은 ‘도서관 난방 파업’으로 인해서 대학 내 노동이 가시화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알지 못했다. 파업은 기계전기 노동자들에 시중노임단가 수준 임금 인상, 청소경비 노동자들에 상여금 지급이 약속되며 마무리되었다.
2019년 3월, 글로벌사회공헌단 노동자와 언어교육원 한국어강사들의 투쟁
글로벌사회공헌단(이하 글사공) 노동자들은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가이드 라인’에 따라 정규직 전환 대상이 되었다. 그들은 2년 이상 지속이 예상되는 직군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는 글사공 활동이 일시적인 업무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사공은 지속가능한 봉사를 위해 설립된 기관으로, 노동자들은 매년 해외봉사, 멘토링 등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준비한다. 다른 대학 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은 글사공 운영이 지속가능하도록 힘쓰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이하 언교원) 강사들 역시 정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정규직 전환되어야 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들이 노동자가 아닌 시간강사이기 때문에 노동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말했다.(그렇다고 이들이 시간강사의 대우를 보장받은 것은 아니다. 언교원 강사들이 받는 시간당 임금은 학부 시간강사 임금의 절반 수준이었다.) 언교원 강사들은 교육부, 법무부 등에 가서 자신들의 지위를 확인받고자 했고, 고용노동부는 그들을 노동자로 인정했다.
두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학교는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전환 대상을 자의적으로 좁혀 노동자들의 고용불안을 심화시켰다. 이에 노동자들은 학생들과 함께 학내 행진, 시민 사회 연대 기자회견 등을 진행하며 무기계약직 전환과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노동자들의 꾸준한 투쟁의 결과, 언교원 한국어강사들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되었다.
2019년 8월,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 사망 사건
지난 8월, 302동에서 근무하던 청소노동자가 휴게실에서 잠시 쉬다가 사망했다. 그가 생을 마감한 휴게실은 1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에어컨도 창문도 없으며, 환기도 되지 않는, 계단 아래에 마련된 작은 지하 공간. 이 청소노동자의 사망에 대한 여러 언론의 보도는 여러 대학과 공공기관에 근무하는 청소노동자들의 휴게 공간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장되었다. 학생들은 청소노동자의 죽음을 추모하는 추모공간을 설치하고, 청소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서명 운동을 벌였다. 고용노동부는 서울대에 노동자 휴게공간 개선을 권고했으며, 서울대는 노후한 공간은 폐쇄하고, 대체 공간을 확보할 것이며, 환기시설을 개선한다고 답하였다.
2019년 9월, 생활협동조합 노동자들의 파업
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 노동자들이 30년 만에 파업에 돌입했다. 그들의 요구는 기본급 인상, 호봉체계 개선, 휴게시설 및 근무환경 개선이었다. 생협 노동자들은 뼈주사를 맞으며 강도 높은 노동을 감당하는데, 초봉은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으며, 호봉체계는 10년을 일해도 월 200만월을 겨우 받는 정도로 정해져 있었다. 솥단지가 펄펄 끓는 주방에는 에어컨 하나가 없었으며, 휴게실도 좁아 노동자들은 식당 홀에 나와 휴식을 취했다. 샤워시설도 없어서 온몸이 땀으로 젖은 채 퇴근했다. 그들은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자 파업에 나섰지만, 학교는 계약직과 수습 조리사에게 대체 근무를 서게 하는 등 파업의 효과를 무력화하며 상황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파업은 12일간 계속되었으며, 노동자들은 파업가를 부르며 캠퍼스 곳곳을 행진했다. 학생들은 #당신의노동은나의일상, #서울대생협노동자파업지지 등의 해시태그 릴레이를 하며 응원메시지를 전달했다. 생협은 최저임금을 약간 상회하는 수준으로 1호봉 기본급을 인상했으며, 노동자들의 휴게시간 1시간 보장을 인정하기로 했다.
2019년 10월, 청소경비·기계전기 노동자들의 단식·삭발 투쟁
2018년, 본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만든 노동조합을 교섭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지방노동위원회, 중앙노동위원회 등에 소송을 제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교섭창구 단일화를 강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며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2019년 올해, 본부는 또다시 노동자들의 노조할 권리를 억압했다. 본부는 노조 전임자의 임금 지급을 중단했으며, 교섭에서 근무시간 중 조합 활동 금지, 노조 간부 회의시간 단축과 같은 안을 제시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자들이 민주적으로 노조를 결성하고 자유롭게 노조 활동을 할 권리를 억압하는 본부에 맞서 단식·삭발 투쟁을 진행했다. 법인 직원들과의 명절상여금 차별 철폐, 휴게 공간 개선 등도 함께 요구했다. 결국 본부는 청소경비, 기계전기 노동자들에게 명절휴가비를 연 100만원 지급하며, 조합원 교육시간을 연 6시간을 허용하기로 약속했다.(1)
학문이 신성화되는 대학
대학에서는 학문의 이름으로 많은 것들이 억압된다. 가령, 교수의 노동은 핵심노동이지만, 학생과 노동자의 노동은 비핵심노동이다. 대학의 주요 기능, 지식 생산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교수의 노동은 신성화되지만, 그 기능을 뒷받침해주는 다른 것들은 희생의 대상이다. 특히나 교육과 연구가 신성화되고, 학벌사회의 최정점에 있는 서울대에서는 그 모순이 심화된다. 지난 겨울, 기계전기 노동자들의 파업에 대한 사회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사람들은 어떻게 국가와 사회를 책임질 인재를 양성하는 곳에서 학생을 인질로 잡고 파업을 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이 파업은 분명 ‘서울대’였기 때문에 사회의 논쟁거리가 되었다. 만약, 도서관 난방 파업이 어느 이름 모르는 대학에서 일어났다면 사회의 반응은 어땠을까. 물론 한국사회에서 파업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정적이기 때문에 그 대학에서도 역시 노동자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었을 수 있다. 하지만 결코 서울대에서만큼 도서관이라는 장소가 ‘위대한 공부’를 하는 곳으로 신성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진리를 추구하는 서울대에서 (교수자가 아닌) 노동자들의 삶은 비가시화된다. 교수를 위한 연구 공간과 교육이 이루어지는 강의실 등 대학의 핵심 공간이라고 생각되는 것들과 달리, 노동자 휴게공간은 대학에 꼭 필요한 공간이 아니다. 생협 사측과 면담을 하거나 노사 교섭에서 나왔던 본부 직원들의 발언을 들어보면, “대학에 그런 공간이 필요해?”와 같은 논리로 일관할 때가 종종 있다. 공부는 길바닥에서 하면 안 되는데 노동자들은 길바닥에서 쉬어도 되는 것이다. 대학은 학생들에게 약자들을 밟고 일어서고 불의를 모른 척하며 세계를 선도할 인재가 되라고 말한다.(2)
이런 대학에서 제대로 된 배움은 불가능하며, 배움은 일상과 단절된다. 학문이 신성화되는 대학에서는 강의실에서의 배움만, 교수의 지식만이 진정한 지식이 된다. 학생들은 자신만의 문제의식을 발전시키기는 커녕, 기계처럼 교수의 강의를 받아 적는다. 이는 사회는 물론이고 나와 나의 일상에 대해 고민하지 못하게 만든다.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없는 대학에서 학문은 현실과는 유리된, 고고한 지식이 되며, 이는 노동을 소외시킨다. 지난 난방 파업 때 사회학과의 어떤 교수는 말했다. 대학에서 파업을 하는 것은 곧 응급실을 폐쇄하는 것이며, 학업과 연구에 직결되는 시설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변화의 방향을 분석하고 대안적인 지식을 마련해야 하는 사회학 교수의 이러한 발언에서 학문을 현실과 유리된 것으로 보는 생각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대학은 학문을 사회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는 커녕, 학문을 공동체 안에서 약자를 소외시키는 것에 이용한다. 학문이 신성화되는 대학에서 ‘우리는 왜 학문을 하는가’, ‘대학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학은 존재의 이유를 고민하지 못한 채 학문 발전과 후속 세대 양성을 위해 존재하며, 나라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구성원의 권리가 유보되는 공간이다.
기업화되는 대학
한국 대학의 기업화는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5·31 교육개혁안 이후로 본격화되었다. 대학정원 자율화, 국립대학 민영화, 총장직선제 폐지, 등록금 자율화, 대학평가 등의 교육 정책이 제시(3)되었고, ‘자율화’라는 이름 아래 기업 경영의 논리가 대학에 잠식했다. 교육은 상품이 되고 대학은 상품 판매를 위한 매장이 되었다.(4) 기업화되는 대학에서 배움은 사라진다. 교수-학생 학문공동체가 역동적인 상호작용을 하며 지식을 생산해내는 공간이 아닌, 300명의 학생들이 교육의 소비자로서 한 강의실에서 교수의 강의를 듣고 그것을 받아 적는 공간이 되었다. 기업화되는 대학에서 지식의 속성은 왜곡된다. 대학은 기업의 후원을 받거나 기업과 연계하여 학과를 개설하는 등 기업을 위한 인재를 양성한다. 대학의 지식은 기업을 위한 상품이 되며, 효율성을 추구하지 않는 학문은 도태된다. 대학은 기업자본을 위한 이윤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작동한다. 대학은 식당, 문구점 등의 시설에서 수익 사업을 벌이는 것을 시작으로, 캠퍼스를 확장하거나 유학생을 유치하며 재원을 얻는다. 그러한 재원은 온전히 대학 구성원들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학 내 의사결정과 재정 운용은 이사회에 의해 이루어지며, 대학 구성원들은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다.
대학 기업화는 대학노동시장에도 영향을 미쳤다. 대학이 효율성을 추구하는 모습은 대학노동시장의 변화 과정에서도 볼 수 있다. 일반 산업분야보다는 구조조정이 낮은 강도로 진행되었지만, 1980년대 말 부터, 대학 노동자들은 외주·용역화 되었다. 1989년 ‘고용직공무원규정’이 개정되며, ‘고용직공무원’인 대학 경비노동자들은 ‘기능직공무원’으로 통폐합되었다. 국가공무원법의 대상인 정규직 노동자는 줄어들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확대되었다. 1993년 5·31 교육개혁 당시, 대학은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원의 확보와 동시에 긴축재정을 요구받았다. 교원의 확보는 필연적으로 지출의 증가를 가져오는데, 동시에 긴축재정을 요구하면서 대학 내 노동자에 대한 인건비가 절감됐다.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정리해고제가 조기실시 되고 근로자 파견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비정규직은 급속하게 증가하였으며,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사무직 노동자들도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었다. 대학은 노동자들에게 조기퇴직을 제안하였으며, 노골적으로 경비절감을 이야기했다. 노동자들은 비용계산단위에 불과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대학에 무인시스템이 도입되었다. 여러 대학에서는 이를 이유로 더 이상 노동력이 필요 없다며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경비직이라는 직군 자체는 여러 대학에서 사라져가고 있으며, 식당, 카페 노동자들도 키오스크 도입으로 인해 인원 감축의 대상이 되었다.(5)
대학이 지출을 줄여야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다. 올해 12월, 생협 사측은 30년 만의 대규모 파업으로 얻어낸 기본급 인상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했다. 식당 운영을 축소하며 노동자들의 추가 수당 지급을 중단했다. 식당 운영 축소는 학생들의 교육권, 생활권에 직결되는 문제이다. 대학은 학내 구성원의 생활권을 책임질 의무가 있다. 특히나 학내 구성원의 복지를 위해 설립된 비영리조직인 생협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 학생의 생활권이 침해되고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 환경이 개선되지 못한다면, 학교는 학생 복지와 노동자 인권을 위해 생협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화된 대학에서, 대학은 학내 구성원의 인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그것은 수익을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기업화된 대학에서는 학내에 외주업체가 무분별하게 입점한다. 학교는 외주업체 입점을 허용하며 그들에게서 임대료를 받는다. 외주업체는 기본적으로 학내 구성원의 복지를 위해 설립된 조직이 아닌, 이윤 추구를 위해 운영되는 기업이다. 외주업체 입점은 자연스레 학내 생활물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이런 대학에서 학생 복지를 운운하는 생협이 설 공간은 더욱 줄어들며, 생협의 재정 적자의 원인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작년 12월, 식대 조정과 관련하여 이사회에서 심의된 안건을 보면, 이러한 상황이 보다 명확히 드러난다. 생협은 식대를 조정하는 사유로 ‘2016년 이후 최저임금 상승으로 인한 인건비 비용 증가, 정규직 확대 등 직원의 고용 구조 변화 및 임금인상 폭 증가, 주 52시간 근로제 시행 및 직원의 노동환경개선 요구 확대’ 등을 제시했다. 이는 생협이 적자의 원인을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기업화된 대학에서는 기업의 논리가 작동된다. 노동자들의 현재 노동환경은 어떠한지, 그것이 어떻게 개선되어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윤을 추구하는 공간에서 학내 구성원의 인권은 고려되지 않으며, 노동자는 그저 가장 먼저 착취당할 비용에 불과하다.
노동자와 학생의 관계가 단절된 대학
노동자와 학생이 손을 잡고 대학과 사회를 바꾸는 ‘노학연대’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노학연대는 80년대 민주화운동 속에나 존재했던, 역사 속의 언어가 되었다. 신자유주의가 심화된 대학에서 ‘연대’는 어려워졌다. 학생들은 졸업을 위해 각자 시간표를 선택하고, 대학은 미래를 위해 다니는 하나의 공간으로서만 기능한다. 개인화된 학생 사회에서 대학의 역할, 운영방식, 학내 구성원의 권리에 대한 문제제기는 부재하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공동의 경험은 더욱 어려워진다.
지난 겨울 난방파업 때, 파업에 대한 총학생회의 대응은 대학 내에서 노동자와 학생의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노조가 도서관 난방을 중단하자, 총학생회는 ‘학생이 따뜻한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하며, 파업 대상에서 중앙도서관 본관 및 관정관을 제외해달라고 노조에 요청했다. 이러한 초기 대응은 곧 사회적 논란으로 번졌고, 총학생회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입장문을 게시했다. 입장문의 요지는 이러했다.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을 존중하나 도서관과 같이 학생들의 학업과 연구에 직결되는 시설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며, 노조에 도서관을 파업 대상 시설 에서 제외해줄 것을 다시 한 번 요청한다.” 파업에 대한 책임이 노조에 전가되는 현상 속에서, 학생이 따뜻한 도서관에서 공부할 권리와 노동자가 존엄하게 일할 수 있는 권리는 대립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부가 노동자들의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환경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지 않고 교섭에 불성실하게 임해서 파업이 발생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노조에 해결을 요구했다.
학생들에게는 분명 따뜻한 공간에서 공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러한 권리에 대한 책임은 학교에게 있으며, 그 권리를 위해서 다른 대학 구성원의 권리가 유보되어야 할 하등의 이유는 없다. 난방파업 당시 학생과 노동자의 관계가 단절되지 않았다면, 학생은 대학에서 노동자의 존재와 위치를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며, 파업에 있어서도 본부에 적극적인 해결을 요청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학에서의 노동은 학생들의 일상에서 가려져있었다. 학생들은 대학의 노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지 못했으며, 자신들이 편안히 누려오던 일상이 깨짐으로 인해서 노동자의 존재를 인지했다.
파업에 대한 비난의 화살이 노동자들을 겨눌 때, 대학 본부는 책임을 회피한다. 파업은 사업장의 운영을 일시적으로 중단시키는 행위이다. 이는 노동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며, 학생을 비롯한 학내 구성원들에 상당한 피해를 입힌다. 하지만 학생의 교육환경과 노동자의 처우를 책임져야 하는 대학 본부는 상황 해결을 위한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노동자가 파업을 철회해야 상황이 해결되는 것처럼 안내하며 대학 내의 노동을 더욱 소외시킨다.
노학연대의 복원으로 일상에서 배움을 실천하자
노동이 소외되지 않는 대학을 위하여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대학 내 노학연대를 복원하는 것이 하나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 노학연대가 80년대만큼 활발하지 못하지만 지금도 그것을 실현해내려 각자의 위치에서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다. 2018년, 많은 대학에서 청소노동자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홍익대·고려대 등의 대학에서 청소노동자 인원 감축을 시도했으며, 동국대에서는 퇴직자 자리를 근로장학생으로 대체하려 했다. 이에 대해서 많은 학생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리고 인력 충원을 촉구하는 서명을 받으며 투쟁에 연대했다. 노동자와 학생들의 강한 반발로 여러 대학에서는 청소노동자 구조조정 실시 계획을 철회했다. 서울대에서도 노동자들의 투쟁에 학생들은 여러 방법으로 연대해왔다. 같은 공동체를 살아가는 동료 시민으로서, 노동이 존중받는 대학을 위하여 함께 싸웠다.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서명 운동을 받거나,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하여 해시태그 릴레이를 하거나, 노동자들과 함께 학내 행진을 하며 노동 없는 대학은 없다고 외쳤다. 그들의 노동이 우리의 일상을 만들며, 노동자 인권과 학생 인권은 결코 대립되는 것이 아님을 말했다. 이러한 노력들은 대학을 하나의 공동체로 복원하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개인들이 각자의 삶을 사는 대학에서는 누구의 인권도 존중받지 못한다. 학내 생활 물가는 더욱 올라갈 것이며, 이윤 논리에 적합하지 않은 학문은 더욱 배제될 것이다. 또한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학문이 신성화되고, 대학이 기업화되고, 학생과 노동자의 관계가 단절되는 흐름 속에서 대학 구성원 내의 약자인 노동자들은 더욱 소외될 것이다.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노동자들과 직접적으로 함께 투쟁할 수도 있고, 노동자들의 현실을 공론화하는 활동을 기획할 수도 있고, 반이라는 공간 안에서 노동 문제를 계속 이야기해볼 수도 있다. 대학에서 노동이 소외되는 현실을 글로 써볼 수도 있겠다. 지금 작성하는 이 글도 연대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하는 하나의 노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앞서, 대학에서의 배움이 일상과 단절된다고 이야기했다. 배움은 누군가의 지식을 전달받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 지식을 강의실이라는 공간에 맞게 구조화한다고 해서, 그 지식이 모두 나의 것이 되는 것도 아니다. 문제를 직접 정의하고, 동료들과 함께 질문하고 공부하며 문제의식을 심화시키고, 그것을 일상에서 실천할 때, 진정 배움이 나의 것이 된다. 또한 이러한 배움은 현실과 유리된 지식을 기계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무엇을 할 것이며,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지를 상상하게 한다. 노학연대를 복원하는 것은 대학에 공동체성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대학의 역할을 질문하는 것이다. 대학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우리는 왜 학문을 하는지를 질문하며 주체적인 시민으로 행동하는 것이다. 노동이 존중받는 대학을 위하여,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진정한 배움을 시작해야 한다.(6)
(1)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여러 정보를 참고하였다.
(2) 교육사회 수업에서 에세이로 썼던 ‘나는 대학에서 무엇을 배웠나’ 글을 인용하였다.
(3) 고부응, <한국 대학의 기업화>, 《역사비평》, 2010.08, p16~42.
(4) 고부응, 《대학의 기업화》, 한울, 2018, p158.
(5) 김광민, <한국대학노동시장의 외주·용역화에 관한 연구 –경비직 노동자를 중심으로->, 2009, p12~23.
(6) 이 글의 많은 부분에서 필자가 교육사회 수업에서 과제로 냈던 글을 인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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