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노동
삶을 지탱해주는 이들의 목소리 찾기

 

아무

 

1. 우리 삶의 곳곳 : 대학생 잉명이의 하루

 

승차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셔틀버스 대신 임차버스가 증차되었고 이에 기존 셔틀버스 노동자들의 노동 강도는 점차 증가되었다.
2019년 9월 생협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 및 처우 개선 등을 요구하는 파업이 있었다.
매일 아침 청소 노동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강의실이 없다. 수업에 적절한 온도와 습도 등을 조절해주시는 기계실 노동자들의 노동 또한 대학 내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이다.
값싼 가격의 학식을 먹을 수 있는 조건의 이면에 저임금으로 권리를 찾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2. 노동을 바라보지 않던 시선

 

2019년 2월 당시 기숙사에 살고 있던 나는 고시 공부를 하던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매일 밤 12시는 넘어야 들어오던 룸메이트가 해가 떠 있는데 다시 들어오던 날이 있었다. 도서관 난방 파업으로 히터가 나오지 않아 너무 추워서 공부할 수가 없다면서, 기숙사로 돌아온 룸메이트는 다시 책상에 앉아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공간이 추워도 공부를 그만둘 수 없는 학생들은 입김을 내쉬면서 자리를 지켰고 몇몇은 지키던 자리를 떠났다. 학생을 볼모로 파업을 하냐는 거센 비판의 목소리와 오죽하면 난방 파업을 하겠냐며 노동자들의 처지를 한탄하는 의견이 대립하면서 학교 커뮤니티와 학생 사회는 논쟁을 벌였다. 심지어 학교를 넘어 이를 다룬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도 한 마디씩 거들었다.


2019년 2월 7일 서울일반노동조합 서울대 기계 전기 분회는 건물 난방을 차단하는 파업에 나섰다. 노 조는 행정관과 도서관 등 3개의 건물 기계실에 들어가 난방 장치를 끄고 무기한 점거 농성을 시작했고 이에 서울대 총학생회는 노조의 정당한 파업권을 존중한다는 의견을 표함과 동시에 도서관은 파업 대상 시설에서 제외시켜 달라는 요청을 보냈다. 또한 학생회는 학생의 권리 보호를 위해 힘쓰겠다며 핫팩을 배부하기도 하고 전열 기구를 설치하기에 나섰다. 이러나 저러나 난방 파업과 관련한 찬반은 학교 안과 밖에서 첨예하게 대립하며, 대학 내 존재하는 노동자의 역할과 영향력이 얼마나 컸으며, 역설적으로 무 시되어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청소 업무나 식당 업무 등은 비교적 학생들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가시적이지 않으며 학생이나 교직원과의 교류가 적은 건물, 기계, 비품, 전기 등의 업무를 맡던 노동자 들은 학생들이 머무는 강의실과 시설들의 곳곳을 비추었지만, 정작 투명 인간처럼 받아야 할 대우를 받 지 못했다. 희망을 가지고 있던 정규직 전환에 대한 본부의 말장난, 파업에 대한 학생과 사회의 시선, 끝없는 기다림 끝에 반복되는 좌절들을 경험했을 여러 노동자들이 우리와 함께 이 캠퍼스에 있었다. 여러모로 부끄럽지만 도서관에 갈 일이 별로 없었던 나는 이 사건이 있었을 당시 관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고 나 스스로를 격리시킴으로써 책임을 피했다. 머리 아픈 일들에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기도 했지만 정말 내 자신이 이 일과는 상관없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지내던 룸메이트가 더 오래 방에 있는 것 이외에는 크게 나의 삶에 변화한 게 없다는 경솔한 생각으로 시간을 보냈을 뿐이다. 나 이외에도 많은 학우들은 도서관 파업과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외침이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여겼을 것 같다. 그러나 이런 무관심하고 스스로를 “문제”에서 배제시키는 태도가 현재의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미뤄온 본부의 태도를 방치했으며, 대체 가능한 이름 없는 노동자 1인의 현재와 같은 처지를 만들어왔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식으로 대체되어 왔는가.

 

이를 보여주듯 도서관 난방 파업에 대한 학생들의 태도가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사람이기에 예상치 못 한 피해를 입는 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자신이 앞둔 취업과 고시 준비에 영향을 받음으로써, 학생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또한 이 투쟁에서 진정으로 주목됐어야 할 부분인 노동의 환경에 대한 성찰과 공허한 약속이었던 임금 문제, 본부의 책임 회피보다 노동권과 학습권의 대립에 대해 주로 논의가 집중되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 사건은 비가시화되던 노동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계기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서울대학교의 상징적인 의미에서 기인한 것인지 유독 다른 파업들에 비해 도서관 난방 파업 사태에 대해서는 사회적인 파급력이 높았고, 이에 대해 학생의 취업난을 고려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행위라는 거센 비판과 노동자의 열악했던 환경에 분노하고 파업을 지지하는 목소리가 충돌이 명시적으로 드러났다.

 

그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우리 삶의 보이지 않던 부분을 책임지고 있던 노동의 가치들은 파업을 시작으로 점차 가시화되기 시작했으며 대학 내 노동의 무게와 이들의 빈자리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가 일을 맡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의 일상이 멈춰버리는 짧은 경험으로 우리는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회피해왔던 노동과 노동자들의 외침을 인식할 수 있었다. 도서관이든 강의실이든 앉아 공부하는 사람들의 노동과 그들의 몸을 덥히는 전기와 기계, 건물 등을 관리하는 이들의 노동의 값어치를 어떻게 누가 어떤 잣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들의 눈과 귀를 모을 수 있던 이 시작은 앞으로 노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모이게 되는 중요한 시점으로 회자될 것이다.


 
3. 학생과 노동의 관계

학교를 오며 가며 지나는 노동자와 학생의 물리적 거리는 학생과 학생의 거리만큼 가깝다고 볼 수 있으나 심리적 거리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여전히 노동 문제에 대한 해결을 촉구하는 투쟁은 큰 진전 없이 지속되어 왔다. 그러던 중 2019년 8월에는 공대 301동에서 한 평도 되지 않는 작은 방에서 노동자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9월에는 생협 노동자들이 노동 환경에 대한 울분을 참지 못하고 봇물터지듯 목소리를 냈다. 이에 파업을 지지하던 학생 사회의 반응과 생협 노동자의 노동 환경에 대해서 이정도일 줄은 몰랐다는 반성의 의견이 눈에 띄었다. 노동자들은 식당을 멈추고 나와 식사를 준비하는 대신 천막을 치고 부침개를 만들어 팔았고 학생들은 직접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그들을 위해 이름을 걸고 ‘당신의 노동은 우리의 일상입니다.’라는 메시지로 함께한 학생들이 있었다.

 

생협 파업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일이 있다. 파업 당시는 축제 기간이었고, 나는 축제가 있는 총장 잔디 쪽으로 가던 중 맛있는 냄새에 부침개를 사먹으러 천막으로 갔다. 부침개를 부치던 분들께 상투적인 응원의 몇 마디를 전했을 뿐인데 그분들은 웃으시면서 부침개를 몇 장이나 더 얹어주셨고 미안하다는 말을 하셨다.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불편하고 오히려 학생으로서 더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부침개를 맛있게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맛있게 먹긴 했다.). 누군가의 일상에 작은 구멍이 생긴 후에야 우리는 그 구멍을 채우던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역할을 떠올리기 시작한다.

 

전혀 나와 상관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자리가 비면 누구보다 눈에 띌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노동자들의 노동이 멈추면 학교가 멈춘다. 여러 시설의 전기와 난방 문제가 있다면 해결하는데 매우 오래 걸릴 것이며 깨끗한 수업 환경을 늘 유지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수요가 매우 높지만 셔틀버스가 적어져서 교통에 더욱 불편을 겪을 수도 있으며 혹은 아예 운영이 중단될 수도 있다. 이밖에 식사나 음료 등 다른 것들을 이용할 수는 있더라도 비싼 가격으로 많은 것을 대체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학교 구성원들이 누려온 값싼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주머니를 줄이면서 나온 것이다. 노동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으나 대개 학생 사회에서 노동자들을 대해 온 냉담한 태도는 사측이 그들을 약자로 만들기 위한 좋은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과연 학생과 노동자의 관계는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과 없으면 조금 불편한 서비스를 공급하는 사람의 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일까.


기숙사 사생인 나는 가장 가까운 노동자인 기숙사를 청소해주시는 서명옥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평소에 거의 만나지 못하거나 만나도 어색하게 고개만 수그리면서 지나가는 사이였지만 잠시 이야기를 나누면서 청소 노동자분들이 생각하는 노동 현장에 대해 들어볼 수 있었다. 늘 일을 하면서 학생들을 만나는데 학생들과 어떻게 지내시는지,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는지 여쭤보자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다 딸들 같다. 나이대가 딸 같고 대강 얼굴을 알아서 우리끼리 있을 때는 ‘그 집 딸 저기 있네, 우리집 딸 저기 있네요’라며 농담한다. 우리 사이에서 다 딸로 통한다. 인사도 하고 학생들이 착하다. 아줌마 수다스럽게 안 해서 그렇지. 그래도 그중에 말걸고 그러면 불편한 사람들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조용히만 해주고 그런다.”


스브스 뉴스 인터뷰 중 한 조리원분은 학생들에게 계속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어서 돌아가서 밥해주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들에게는 학생들이 얼굴을 익혀가며 만나는 직장의 딸, 아들과 겹쳐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그들은 어떠한가. 가족까지는 아니라도 동등한 학내 구성원으로서 일상을 함께하는 이웃으로 그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절실한 때라고 생각한다.



4. 나가며

노동에 대해 학생들의 냉담한 반응이 있었던 한편, 어떤 학생들은 파업을 지지하거나 공감해주었으며, 노동을 일상으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알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누군가의 일상을 이루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들어가는 노동은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며 우리의 삶과 유리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동안 무심하고 행동력이 없었던 필자 스스로를 돌아보면서 글을 이어나가기 부끄러워질 때도 많았다. 학생과 노동자의 관계를 회복하고 같은 학내 구성원으로서 동등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바로 제시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것은 매우 힘든 것일지도 모른다. 명확한 답이 없는, 공허한 외침만을 부르짖는 것 이상으로 노동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변화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나 현상을 꿰뚫는 통찰력있는 답을 알지 못하기에, 이 글에서 내놓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필자는 실천하고자 한 작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한다. 학생 식당에서 배식받을 때나 매점에서 직원분들을 만날 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반드시 하려고 한다. 평소에 교내 신문을 읽고 노동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면 읽어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파업 이후 생협의 식당 운영 시간 축소와 임금 삭감에 반대하는 서명을 하고 앞으로도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에 작은 지지라도 보낼 수 있는 일이라면 관심을 가지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누구는 이에 대해서 실천이라고 할 정도로 거창한 것이 없는 것에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 학내 구성원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거창한 인식개선과 교육이나 변화나 행동을 이루기 이전에 갖추어져야 할 조건이다. 학교의 일상을 이루어주는 그들의 노동이 정당 한 대우를 받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라며 진정으로 학교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함께 지켜볼 책임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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