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미술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미술관에서 ‘관람자’가 중요해지면서, 미술관에서의 교육, 학습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 되었다. 필자는 학과 특성상 미술관에서 진행하는 이러저러한 프로그램을 많이 접할 수 있었으나, 미술관에서의 교육, 학습이 전공자, 미술관에 꾸준히 관심 있는 일부 이외의 사람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는 종잡을 수 없었다. 미술관의 입장에서는 미술관 교육/학습 모델이 활발하게 연구되고 있지만, 미술관에 자주 찾아가는 사람은 정해져 있고, 그 교육 혜택 역시도 일반적인 교육에 비해서는 장벽이 높다.
그리하여 필자는 역사를 좋아하는 중학생 사촌 동생 두 명이랑 미술관 교육을 주제로 이야기해 보았다. 이들은 미술사와 미술관에 흥미를 느끼고 있지만, 미술관 관람을 자주 해보지는 않은 학생이었다.
월영: 미술관에서 보는 것이 우리 생활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HY: 내 생각에는, 미술관에서 얻을 수 있는 건 어떤 정보잖아. 그런데 그 정보는 관심사가 같은 사람끼리 대화 소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 다음에 비슷한 무언가를 봤을 때 먼저 아는 체 하면서 이야기 꺼낼 수도 있고.
휘영청: 미술관에서는 예술가 고유의 세계를 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 의견을 들으면서 다양한 해석을 해볼 수도 있겠다.
필자는 사촌 동생들과 전시를 보고 난 후에 대화를 나누는 것이 의미 있는 학습 경험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아울러 필자 입장에서는 이 대화는 관람자의 학습 경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귀한 기회였다. 근래에 들어 미술관 교육/학습 모델 연구에 관람자의 역할을 중요시하여 관람자를 “더이상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의미를 형성하는 복합적인 존재”로 위치시키는 일이 잦다. 그러나 이때의 관람자는 어떤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배경을 대표하는 추상적인 존재로 남아있는 경우가 많고, 필자는 그 부분이 항상 아쉬웠다. 사촌 동생들이 미술관에서 학습하는 경험을 살펴보면서, 미술관과 관람자, 그리고 그들의 일상이 미술관 관람 경험과 맺는 관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1
아마도 이 인터뷰로 미술관 학습법에 대한 번듯한 결론을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획을 통해서 추상적으로만 그려지던 ‘미술관 관람자’가 미술관을 통해 어떤 결과물을 얻어가는지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 2022.01.14.(금) 경남도립미술관, HY와 월영은 <각인> 전을 보러 갔다.
<각인> 전시는 경남도립미술관에서 ‘판화’를 주제로 현대 판화 작가의 작품을 소개하고, 근현대 판화 작품을 아카이빙한 전시이다. 현대 판화 작가의 작품은 ‘국토’와 ‘인물’로 나누어서 전시되어있었고, 아카이빙 관은 따로 마련되어있었다. HY와 필자(월영)는 미리 전시를 둘러보고, 오후 2시에 현대 판화 작가를 위주로 도슨트의 작품 해설을 들었다. 도슨트 해설을 듣기 전 전시를 훑어보면서 각 작품에 대해 소소하게 감상평을 나눌 수 있었는데,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월영: 여기 구석에 조그맣게 사람 있는 거 보여?
HY: 어 진짜네! (작품을 보다가) 나 이 작품 좋다.
월영: 어, 왜?
HY: 여기 그려진 사람 시선으로 그림을 보게 되는데, 풍경이 꽤 좋은 것 같아.
전시 캡션이 충분히 달려 있지 않아서, 도슨트의 설명을 통해 작품에 사용된 재료나 주제에 대해서 상세하게 파악할 수 있었다. 필자나 HY나 굉장히 내성적인 성격이라 도슨트의 질문에도 쭈뼛대면서 아주 적극적인 태도로 임하지는 않았지만, 도슨트 해설에 상당히 만족했다. 그러나 해설만 들었을 때 몇몇 그림을 온전히 감상하지 않고 넘어가게 되는 점, 그림을 보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시간이 짧아진다는 점은 여전히 아쉬웠다.
전시 해설을 다 듣고 난 후, 미술관 옆 찻집에서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① 일상의 작은 파동: 미술관
판화라는 장르 자체가 익숙하지 않다 보니, 전시를 보면서 이전까지 HY와 필자는 판화 작품에 대해서는 그것을 ‘작품’ 혹은 ‘예술’로도 인지하고 있지 않았단 사실을 알았다. 이것은 특히 아카이빙 전시관을 둘러보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HY: (몽실언니를 가리키며) 나 이 책 읽어본 적 있어! 이 표지가 판화였구나.
전시관을 나와서도 우리 주변에 판화가 어디에 있었을지도 한번 떠올려보았지만 뚜렷하게 생각나는 바는 없었다. 필자와 HY는 판화를 아예 보지 못했다기보다는 일상 속의 판화를 판화로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게 없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이 전시를 본 후 휘영청과 갔던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일상적이고 평범한 것이라도 미술관 안에서는 특별한 것이 되는 듯했다.
미술관 안에서 특별함을 얻는 것, 이 현상을 보며 미술관이라는 기관을 전시한 작품과 작가가 권력을 얻도록 돕는 공간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굳이 미술관의 권력을 인식하지 않는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미술관 안에서 어떤 이미지를 새삼스럽게 보는 것이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필자와 HY는 <각인> 전을 통해서 판화가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상당히 다양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월영: 나는 판화라는 장르를 좁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판을 깎아서 찍는 게 다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설명 들어보니까 꼭 그런 것도 아니었지.
HY: 그림 보니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폭이 훨씬 넓어진 것 같아.
월영: 제일 판화 같지 않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있었어?
HY: 2층 ‘인물’ 테마의 관에 갔을 때 제일 처음 본 작품이 그랬던 것 같아. 불교 수인을 취하고 있는 게 판화 같지 않았어.
월영: 그렇지, 판을 찍어놓은 게 아니라 판을 직접 전시해놓은 것 같았지!
이번 <각인> 전시에서 특징적이었던 부분은, 판화를 제작하는 방식이 굉장히 다양했다는 것이었다. 판화라는 장르가 가진 특성들, 예컨대 원본 판이 있다면 끊임없이 복제 가능하다는 등의 특성들에서 벗어난 작품들이 많았다. 판화 작품 자체가 다양하니까, HY와 필자는 그 과정에서 서로의 미감이 완전 다르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HY는 만화를 이어붙인 듯한 <갈라파고스>(윤여걸 작가)라는 작품과 강렬한 빨간색이 특징적인 정비파 작가의 판화를 좋아했고, 필자는 김준권 작가의 <산의 노래> 작품을 좋아했다.
HY: <갈라파고스>, 그 작품은 예뻤던 것 같아.
월영: 진짜?
HY: 그 작가님 작품이 두 점 더 있었잖아. 나머지 하나도 아름다웠다고 생각했어.
월영: 나는 그걸 독특하다고만 생각했는데!
HY: 색깔 때문인 것 같아. 하지만 내용은 예뻐 보이지 않고, 도슨트 분은 그 판화를 원초적인 성격인 것으로 설명하셨는데 딱 그래 보이긴 했어.
월영: 그 작품은 판화로 만화를 그리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거였지. 내용은 원초적인 성격이었지만 판화의 색채는 다채로웠던 기억이 나. 나는 그 작품은 별 생각 없이 지나쳤는데. 나는 1관에서 봤던 산이 중첩되어있던 산수화가 정말 예쁘다고 생각했거든.
HY: 그림 볼 때 당시에는 난폭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예쁜 거 있었냐고 물어보니까 그게 생각났어.
월영: 사람마다 이렇게 미감이 다르구나.
판화라는 장르도, 그 작품들도 많이 생소했던 만큼 HY와 월영은 이 전시를 통해서 다양한 표현방식, 판화로부터 표현될 수 있는 이미지와 그에 대한 각자의 취향을 새롭게 알 수 있었다. HY가 기대했던 대로, 전시를 보면서 일상에서는 쉽사리 찾기 힘들었던 새로운 대화 거리를 얻은 듯했다. 이후 HY와 필자는 <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전시에서 18-19세기의 화가 존 컨스터블(John Constable)의 판화를 보고, 그 판화의 표현 기법을 분석하면서 <각인> 전시에서 판화를 봤던 경험을 십분 활용했다.
② 자발적 학습의 장으로서 미술관 교육
박물관교육학자 후퍼그린힐(Hooper-Greenhill)은 유물에 대한 감각적 해석 및 체험이 유물을 지적으로 깊이 있게 알게 하는 기초가 되고, 박물관을 통한 교육, 학습이 교과과정의 이해와도 연결된다고 주장했다. 마찬가지로 교육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박물관 교육이 학교와 사회에 유용하다고 생각했고, 박물관 교육이 교육적 환경 구성에서 통합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2 그렇다면 정규교육과정이 어떤 주제에 대해서 충분히 다루고 있지 않을 때, 사회에서 그 주제가 논의되는 깊이를 포용하지 못할 때는 미술관에서 더 어떤 논의가 가능할까?
<각인> 전시의 ‘국토’를 주제로 한 부분에서는 ‘통일’이라는 주제가 자주 등장했다. 하나의 국토를 회복하고픈 열망, 분단된 국토에 항시 도사리는 위험을 표현한 작품이 많이 있었다. 필자는 HY에게 그 작품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월영: 독수리 있던 그림 있잖아. 그 그림 보면서는 어떤 생각을 했어?
HY: 그 그림은 설명 듣기 전과 후가 많이 달랐어. 설명 듣기 전에는 독수리만 보였는데, 그 아래 백두산을 내려다보고 있다고 말씀해주시니까 백두산도 중요한 주제로 보이더라고.
월영: 그 그림은 도슨트 설명에 따르면 통일에 대한 거였지, 이 주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
HY: 나는 통일보다는 종전했으면 좋겠어.
필자가 중등교육을 받을 때에도 통일은 너무나도 당연했기 때문에, 지금도 역시 비슷하게 교육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월영: 요새 통일에 대해서도 많이 배워?
HY: 도덕에서 배웠어. 시험에서도 겨레말 큰사전, 언어 비교, 한국 말이랑 북한 말이랑 비교하는 것도 배우고.
월영: 통일은 꼭 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
HY: 해야 한다는 쪽이 더 강조되었던 것 같아. 어떤 이유에서 통일은 필요하다. ‘인도주의적인 차원에서’ 필요하다는 말이 기억에 남네.
통일은 필자가 배우던 것과 HY가 배우던 것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육과정도 박물관 교육도 통일 문제를 깊이 있게 논의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통일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이번 <각인> 전시를 통해서도 풍부하게 담지는 못할 것 같았다.
월영: 종전이 필요하지. 전쟁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을 우선 해소했으면 좋겠는 게 있지.
HY: 맞아. 그리고 통일이 갑자기 되면 많은 게 복잡해질 것 같아.
월영: 그렇지.
HY: 그러다 전쟁도 또 나면 어떡해.
<각인> 전시에서 본 작품은 한반도를 통일된 형태로 보고 있었다. 도슨트의 해설 역시 그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만약 HY와 필자가 이 주제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면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을까? 꼭 그렇다고 볼 수 없겠지만, 도슨트의 해설은 작품을 해석하는 데 기본적인 틀을 제시하고, 개별 관람자의 작품 해석은 도슨트의 설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HY와 필자는 박물관 바깥에서 다시 전시를 되짚어 보면서 작품의 주제의식에 구체적인 의문을 제기할 수 있었다. 즉, 전시와 작품을 관람자 나름의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미술관 도슨트를 듣는 것만으로 이루어지기 힘들 수 있다. HY와 필자는 이 이야기를 끝내며 작품의 주제의식이 지금의 한반도에 어떤 의미일 수 있는지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좋겠다는 의견을 나눴다.
한편, 미술관의 전시, 도슨트 해설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전하고 있으나, 그것으로 시험을 치거나 그것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필자와 HY가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통일 교육의 취지와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설사 <각인> 전에서 전하려고 했던 내용과는 다를지라도) 이번 미술관 교육이 자발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필자는 미술관이 학교에서 접한 문제의식을 새롭게 발전시키는 중간 다리 역할을 하거나, 공교육의 정형화된 지식을 접하기 전 가볍게 본인의 관점을 형성하도록 돕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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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간 동안 수다를 떨다 보니 금세 해가 지고 있었다. 필자도 한 전시를 주제로 이렇게 길게 이야기 나누어본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질문을 잘 던지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곧바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마구 던졌음에도 열심히 답해준 HY에게도 고마웠다.
이런 인터뷰를 하고 보니, 미술관에서 전시를 본 후 관람객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주는 행사가 자주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미술관은 오고 가는 것이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그만큼 미술관에서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기에 어렵다. 기껏해야 전시를 본 후 감상을 짧게 나누거나 SNS를 통해서 후기를 남기는 것에 그치는데, 이보다 더 적극적인 형태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각 전시에 대한 비평이 더욱 활발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지금의 필자처럼 글을 쓴다는 인위적인 목적이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전시를 보고 이야기할 기회, 분위기가 더욱 필요하다.
2. 2022.01.17.(월) 한화 갤러리아 포레, 휘영청과 월영은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을 보러 갔다.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시는 한화 갤러리아 포레에서 현대 팝아트의 거장 리히텐슈타인을 단독으로 다룬 전시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작품 포스터를 사랑과 눈물, 붓자국, 거장에 대한 오마주, 기업과 협업한 사례 등 각기 다른 주제로 나누어 전시 공간을 구성했다. 필자와 휘영청은 미리 전시장을 둘러보았다. 전시장 한 면에 크게 쓰인 문구가 필자와 휘영청의 시선을 끌었다.
월영: “나는 항상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를 알고 싶어했다.” 이 말 있잖아. 어떻게 생각해?
휘영청: 나도 이게 항상 의문이었어. 현대미술 보면 선 하나 그어놓고 작품이라는 것들 있잖아. 그렇게 치면 나도 예술가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름의 의문을 품은 채로 월영과 휘영청은 전시장을 더 둘러보았다. 리히텐슈타인이 중국의 수묵산수화를 그의 특징적인 기법인 밴데이 점으로 재해석한 작품에 이르렀을 때 도슨트 시작 시간인 2시가 되었고, 휘영청과 월영은 서둘러 전시장 입구로 돌아갔다. 도슨트를 다 듣고난 후 다시 전시를 되짚어가며 꼼꼼히 못 본 작품들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① 학교 미술 교육이 채우지 못한 것
리히텐슈타인 전 도슨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진행자는 “자유롭고 편하게 관람하라”라고 강조했다. 앞서 언급했던 문구에서도 드러나듯이 이 전시는 쉽고 재미있는 예술을 지향하고, 그럼으로써 예술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필자와 휘영청 역시 그러한 관점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전시를 보게 되었다.
월영: 이 전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뭐였어?
휘영청: 샴페인이었나, 와인이었나? 하여튼 리히텐슈타인이 디자인했던 그 술병이 기억나.
월영: 아 맞아, 그 병은 다른 작품과 달리 실생활에 쓰였던 거니까.
휘영청: 다른 거는 다 그림인데, 그건 물건이니까 훨씬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
월영: 전시장 벽면에서 봤던 질문 있잖아. 예술은 어디까지 예술이고, 예술이 아니면 어디까지 예술이 아닌지. 방금 전 너가 언급한 게 그런 질문과 연결될 수 있겠다.
휘영청: 길거리 벽에 그리는 그림도 하고, 모래에 그리는 그림도 그림이니까.
이 소재로도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휘영청과 현대미술에서 어떤 것이 중요할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어보았다. 필자와 휘영청은 전시가 던진 질문, “어디까지가 예술인가”를 생각해보며 현대미술이 어떻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지 생각해볼 수 있었다. 이것은 휘영청의 입장에서는 생소했던 아이디어였다. 휘영청이 받아왔던 미술 수업에서는 소묘, 수채화 같은 실기만 해왔고, 휘영청의 미술 선생님 취향이 이탈리아 르네상스여서 시험도 그 시기에만 치우쳐 있기 때문이었다.
월영: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일반적인 만화랑 다르지 않을 수 있잖아.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전시될 수 있고, 대단한 화가로 추앙받을 수 있다면 그 근거는 뭐라고 생각해?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이) 모작이 쉬울 것 같은데, 먼저 이걸 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먼저 자신이 생각한 바를 그림으로 그려놓았다는 것이 큰 것 같아.
월영: 자기 아이디어를 회화로 구성해서 내놨다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이지? 다른 현대미술에도 적용될 수 있는 설명인 것 같아.
휘영청은 이런 이야기를 재밌어하는 듯 보였는데,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했다. HY의 경우에는 미술 시간에 근현대 미술의 다양한 유파들의 그림을 자기 나름대로 재해석하는 시간을 자주 가졌다고 이야기한 적 있다. 필자가 고등학생일 때는 학교에서 빨간색을 그림에 많이 사용하면 높은 점수를 주는 독특한 미술 선생님이 계셔서 한창 시끄러웠던 적이 있다. 미술 선생님의 성향에 따라서 교육의 내용이 한정된다는 사실이 휘영청과 이야기하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심지어 어떤 내용을 배우든 그 방식이 미술 실기여야 한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았다. 필자와 휘영청, HY 모두 미술 시간에는 자신의 실기 작품을 만드느라 바빴고, 이론 공부는 특정 내용을 암기하라며 쪽지를 나눠준 후 형식적으로 필기 시험을 치는 데 그쳤다. 물론 실기를 통해 학생들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을 새롭게 터득할 수 있고, 이론으로 배운 내용을 실제로 표현하면서 미술 이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론에 대한 논의 없이 오로지 실기만을 중심으로 하는 미술 수업은 미술에 대한 이해를 기술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게 한다.
그리고 실기에 대한 평가는 학생 개인이 이미지를 얼마나 잘 표현하는지, 다시 말해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측정하는 정도에만 그치기 쉽다. 사전 인터뷰에서 휘영청은 미술 실기에는 자신이 없었고, 차라리 이론을 배우는 것이 흥미로웠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어쩌면 예술가라고 볼 수 없는 시민은 필자와 휘영청처럼 전시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으로 예술과 더 가까워질 것이다. 필자는 학교 미술 수업에서 이론을 더 자주 다루고, 이론과 작품을 두고 논쟁하는 자리가 마련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했다.
다음으로 필자와 휘영청은 리히텐슈타인 이전에 있었던 거장들의 작품을 리히텐슈타인 스타일로 재해석한 작품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은 자신이 재해석한 작품의 원작 이름을 밝히지 않는다고 도슨트가 알려줬잖아. 그렇게 하면 작품을 보는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 이게 이 작품에서 따온 건지 저 작품에서 따온 건지.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것도 재밌지 않을까?
월영: 너가 말한 원작을 밝히지 않는다는 부분이 흥미롭긴 하다. 누구 작품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는 게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는 거잖아. 그렇다면 갑자기 궁금해지는 게 있는데, 왜 리히텐슈타인은 작품의 원작을 밝히지 않았을까? 뻔히 보이는 게 있는데도.
휘영청: 자기 작품만을 바라봐 주길 원한 건 아닐까? 원작을 밝히면 그것과 비교하게 되잖아.
월영: 이것도 본인의 작품이라는 것 자체를 봐 주길 바랬다. 그것도 재밌는 해석인 것 같네! 아까 전시장에서 네가 작품에 이름이 대문짝만하게 있는 것도 그것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을 했잖아. 그것과도 통하는 면일 수 있겠고.
휘영청: 이름 자체로 포스터를 만들 수 있는 거니까!
이전에 있었던 이미지를 재해석한 것도 작품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휘영청에게 현대미술을 학교 수업에서 어떻게 다룰 수 있을지 물어봤을 때 다시 화제가 되었다.
월영: 이런 미술이 있을 수 있단 걸 알았는데, 그렇다면 학교 미술 시간에 오늘 봤던 미술을다룬다면 어떻게 수업을 할 수 있을까?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은) 접근하기 쉬우니까, 따라 그리기도 쉽고. 자기만의 작품을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월영: 오, 그렇지.
휘영청: 모나리자를 완벽하게 따라 그릴 수는 또 없잖아. 완벽하게 그릴 수 없겠지만 유사하게 그릴 수는 있지 않을까. 리히텐슈타인은 그리기 좀 쉬워 보였어. 아까 봤던 미국 국기는 선 그리고 원 그리면 되니까.
월영: 예전에 팝아트 할아버지 초상화 그려준다고 그런 식으로 그려본 적 있는데, 팝아트의 느낌이나 아이디어를 활용해보는 것도 팝아트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재해석해보는 것일 수도 있겠다.
휘영청: 리히텐슈타인이 거장들의 작품을 재해석하듯이 나도 있던 그림을 내 방식대로 따라 그릴 수 있을 테니까.
필자는 휘영청이 이 주제에 대해서 자기 의견을 열심히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학교 미술 교육 역시 학생에 맞춰서 다변화된다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혹은, 미술관 관람이 학교 교육의 연장선에서 더 활발해진다면 미술관 학습 경험이 학교 미술 수업에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다. 휘영청과 HY는 수학여행을 하며 국립중앙박물관을 간 적 있지만 관람 안내를 받지 못했고, 그 영향인지 많은 시간을 친구들과 다른 주제로 수다를 떠는 데 썼다고 한다. 미술 수업 시간을 통해서든 미술관 관람을 통해서든 작품에 대해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토론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난다면, 이들의 수다는 미술관과 훨씬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② 서로 다른 지식들이 모이는 순간
처음 인터뷰를 계획했을 때, 필자는 전시에서 동원할 수 있는 지식을 한정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역사 교과에서는 미술이 문화사의 일부로만 의의를 갖고, 미술은 작품 그 자체에 대해서 다루기는 하지만 결국 실기가 위주가 된다. 필자는 전시를 본격적으로 보기에 앞서 이런 한계로 전시에 대해 충분히 대화할 수 없을까 걱정했으나, 인터뷰를 진행해오면서 그런 우려는 어느 정도 해소되었다. 앞서 HY와 <각인> 전시를 보면서는 통일에 대해서 틀에서 벗어난 이야기해볼 수 있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번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을 휘영청과 함께 보면서는 다양한 배경 지식을 전시를 통해 종합해 볼 수 있었다.
휘영청은 전시 전에도 리히텐슈타인에 대해서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것은 국어 교과의 지문 중 팝아트 거장들을 소개하는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 내용을 제대로 기억하지는 못했지만 눈물 흘리는 여자 이미지와 리히텐슈타인을 기억하고 있었고, 전시장에 처음 들어섰을 때도 그런 종류의 이미지에 익숙한 편이었다. 휘영청은 미술 중에서도 이론을 좋아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이 이번 전시에서 화가가 보인 기법과 자신이 알고 있던 미술 이론을 비교해보았다.
월영: 오늘 도슨트 따라다니면서 들은 리히텐슈타인의 기법들 기억나?
휘영청: 점 찍는 거!
월영: 그렇지, 밴데이 기법! 아까 너가 점 크기나 모양 살펴봤던 거 있잖아. 이전에 유사한 것을 본 적이 있어?
휘영청: 그랑드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에서 봤던 것 같아.
월영: 오, 점묘화와도 비슷한 지점이 있지. 점묘화를 볼 때와 이 그림들을 볼 때는 어떤 차이가 있었어?
휘영청: 점묘화는 정리되어있지 않은 느낌이었는데, 리히텐슈타인은 정리되어있는 느낌이었어. 점을 모아서 이미지를 만드는 것과 이미 있는 이미지를 점으로 표현하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고.
월영: 그치그치. 일정한 간격으로 줄세워져있는 게 리히텐슈타인 이미지의 차이인 것 같아.
이러한 비교는 도슨트를 들을 때도, 전시 흐름만 봐서도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필자는 휘영청의 대답을 들으며 아비 바르부르크(Aby Moritz Warburg)의 므네모시네(Mnemosyne)를 떠올렸다. 므네모시네는 서로 다른 시대에 나타나는 유사한 이미지를 모아놓은 패널이다. 이미지를 모아놓은 후 유사하게 나타나는 경향을 살펴보고, 그 원형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도 함께 살펴보는 것이다. 므네모시네는 아비 바르부르크 사후 미완으로 남았지만 그 아이디어의 특성상 므네모시네는 무한히 갱신될 수 있다.
필자와 휘영청이 나눈 대화 역시 므네모시네의 아이디어와 연결되는 면이 있다. 미술 사조, 지역, 시대를 뛰어넘는 작품을 비교하는 것은 이미 미술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이다. 예컨대 이 전시 이후 HY와 필자가 함께 관람했던 <빛: 영국 테이트 미술관> 전시는 ‘빛’이라는 주제로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사조의 작품을 전시했다. 이러한 연결을 통해서 누군가는 익숙한 이미지에서 색다른 재미를 발견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비평 소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인상 깊은 작품을 골라보라고 했을 때 고른 작품들 역시 그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던 사실들과 연관된 작품이었다.
휘영청: 88올림픽 포스터 기억에 남는다. 우리나라랑 관련된 거니까, 아무래도. 아까 도슨트도 거기서 사진 제일 많이 찍어가는 곳이라고 했고, 내가 찍기도 했고.
월영: 어떤 느낌이었어? 멀리 있는 나라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열린 올림픽이랑 관련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던 것 같고.
휘영청: 88년도는 이미 한글이 많이 쓰이고 있을 때였을 텐데 왜 한자를 썼지? 하는 생각.
월영: 그렇지.
휘영청: 우리만의 언어가 있는데 왜 거기다 한자를 써놨는가.
월영: 그 사람들이 아시아면 다 같은 아시아라고 생각했던 거지.
휘영청: 인식을 좀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HY와 <각인> 전시를 보았을 때 통일 문제를 다루었던 것처럼, 휘영청 역시 <로이 리히텐슈타인> 전에서 의도하지는 않았을 생각을 이야기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휘영청이 국어나 역사를 배웠기 때문에 말할 수 있었던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미술관이 관람자의 자발성, 자율성을 어느 정도는 보장하는 공간이라 작품을 본 휘영청이 완전히 다른 곳에서 그만의 문제의식을 이끌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어쩌면 나중에 휘영청이 탈식민주의 이론을 접한다면 더 구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3. 나가며
지금까지 사촌 두 명과 전시를 보고 이야기하며 필자가 느낀 것을 정리해보았다. 사촌들이 필자의 질문에 열심히 대답해주어 필자 역시 재밌게 글을 쓸 수 있었다. 사촌들에게도 이 경험이 썩 재밌었기를 바란다.
필자가 이 글을 통해서 짚은 것은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하나는 학교에서의 미술 교육이 실기 중심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미술에 흥미를 일으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휘영청은 실기 수업을 썩 내켜 하지 않았고, HY 역시 본인의 실기 점수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처럼 전시를 보고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실기에서 성취감을 못 느끼는 것은 실기 창작물 평가가 학생 개인의 손재주를 가늠하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그 평가 기준이 상당히 주관적이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실기 평가 위주로만 진행되는 학교 미술 교육은 일상에서 미술을 누리는 데는 효과적이지 않다. 필자는 학교 미술 수업에서 미술 이론과 작품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도록 함으로써 실기 중심 교육의 난점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머지 하나는 미술관에서의 자발적인 학습이 한 사람이 가진 관점과 다양한 지식을 한데 이끌어내고 융합하는 데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물론 미술관에서도 전시를 통해 제시하는 메시지가 있고, 작품을 특정한 방향으로 보도록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필자와 사촌들이 도슨트를 듣고 각자 감상문을 썼다면 이 글에서 다룬 이야기와는 다른 결의 이야기를 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사촌들은 그 시선을 그대로만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것은 미술관에서의 교육이 강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도슨트의 설명을 이해하기는 했으나 사촌들은 그 위에 자신의 관점과 지식을 동원한 또 다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냈고, 그것은 전시장 바깥에서 전시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 생각한다.
따라서 필자는 미술관에서의 학습이 더욱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미술관 관람 이후 그것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미술관에서 마련할 수도, 전시를 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글은 미술관에서 전시를 본 후 보람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미술관 교육의 나름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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