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가 유행 이후, 우리는 두 번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마주했다. 이 시험들의 총평에는 전례 없이 ‘코로나 격차’나 ‘교육 격차’ 같은 말이 따라다녔다. 작년 수능 출제 브리핑에서도 코로나 19 확산이 ‘교육 격차’ 심화에 미친 영향도 고려했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위수민 출제 위원장은 코로나로 인한 교육 격차 우려 제기는 인정하지만 두 차례 모의평가를 통해 학력 양극화 현상이 특별히 드러나지 않았으며, 2022 수능은 두 차례 시행된 모의평가 출제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출제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대체 ‘교육 격차’를 왜 사람들은 주목하고 또 우려하는가? 이것은 코로나 19와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가?

 

교육 격차가 뭐길래

 

교육 격차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집단(성, 지역, 계층) 간에 나타나는 교육결과의 차이와 그러한 교육결과에 이르게 되는 과정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각주:1] 사실 코로나 19 때문에 교육 격차가 발생했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보다는 원래 존재하던 교육 격차가 더 심화되어 수면 위로 드러났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코로나 19 확산 탓에 공교육은 ‘원격 수업’이라는 새로운 학교 운영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에 따라 정상적인 수업이 이뤄지지 못해 학생들의 학습격차가 커졌다는 것이 중론이다. 26일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교원 1만88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초중등 원격 교육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절반 이상이 올해 1학기 원격 수업으로 학생 간 학습 수준 차이가 커졌다고 평가했다. 학습 수준 차이가 매우 심화했다는 응답은 9.9%였고, 그렇다는 응답은 44.6%였다. 원격 수업을 통한 학업 성취도가 기존 등교 수업과 유사한지를 묻는 질문에 교원들은 매우 아니다 15.9%, 아니다 48.7%, 보통이다 23.0% 등 총 64.6%가 부정적으로 응답했다. 학교급별로 원격 수업과 등교 수업의 학업 성취가 얼마나 비슷한지를 5점 척도로 환산했을 때에도 초등학교(2.23점)와 중학교(2.44점), 고등학교(2.35점) 모두 부정적 평가가 높았다. 5점에 가까울수록 두 수업의 차이가 없고 0에 가까울수록 차이가 크다는 뜻이다. 원격 수업이 학습 격차 확대를 야기했다는 평가도 이어졌다. 응답자의 75.7%는 원격 수업 이후 상위 10%의 학생들 성적은 유지됐다고 판단했다. 이에 비해 중위권 학생들의 수준이 낮아졌다는 응답은 60.9%, 하위 10% 학생들의 성취도가 떨어졌다는 의견은 77.9%에 달했다. 교원들은 교육 격차가 코로나 19 발발 초기인 2020년과 올해를 비교해도 더 커졌다고 우려했다. 등교 수업과 원격 수업이 병행될 때 가장 염려되는 부분 역시 학생 간 학습 격차(39.4%)였다.[각주:2]

 

실제 교육 현장 속에서는

 

과연 실제 교육 현장에서는 지금의 교육 격차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현직 고등학교 교사 1명과 2022년 고교 졸업생 2명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도록 하겠다.

 

교육 격차의 배경: 당연함이 퇴색되는 순간

 

이주양 서울 백암고 교사는 코로나 19 이전과 비교했을 때 “학생들이 공부가 잘 안 된다고 학교를 나오지 않는 일이 매우 빈번해졌다”며, 학생들이 학교에 나오는 것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문득 필자는 본인이 고등학교 생활을 마쳤던 2020학년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모두가 처음 마주한 상황에 우왕좌왕했고, 결국 등교마저 미뤄지게 되었다. 몇몇 친구들은 길어진 자습 시간을 이유로 들며 긍정적인 반응을 내비쳤다. 하지만 필자는 학교에 가고 싶었다. 한 치 앞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차라리 학교라도 가면 다른 모든 것도 선명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개학한 후에도 한참 동안 온라인 클래스에 들락날락해야 했었다. 날마다 하는 자가 진단에 권태를 느낄 5월 중순 무렵, 대면 등교가 시작됐다. 하지만 학교에 가도 별반 다를 것 없이 계속 이어지는 자습 시간과, 정리되지 않은 부산한 학교 시스템에 다들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코로나 19가 발생하기 전에도 학교에 대해 불평하곤 했지만, 이미 비대면의 자유(?)를 맛본 이들이 말하는 투정들에는 이전과 다른 진심이 담겨 있었다. 항간에는 ‘누구는 학교를 빼고 한의원에 다닌다더라’, ‘누구는 아프다고 하고 스터디 카페에 간다던데…’와 같은 소문도 돌았다. 사실이든 아니든, 코로나 19가 시작된 무렵부터 공교육의 권위는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갔던 학교에서, 필자는 그동안 ‘당연하다’고 여겼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린 기분이 종종 들었다. ‘학생이면 당연히 학교에 가야지!’라는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들이었다.

 

펜데믹 이후, 선생님들은 종종 ‘(공부)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하는 게 더 심해졌다’라고 말씀하시며 탄식하셨다. 온라인 클래스의 강제력이 현저히 떨어졌던 탓에 학생들의 생활 습관이 무너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은 아침마다 모닝 콜을 돌리면서까지 학생들이 온라인 출석 체크에 늦지 않도록 독려하셨지만, 대면 수업만큼의 강제성을 부여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필자 역시도 출석 체크만 하고 다시 잠들어버리는 일상을 반복하곤 했다. 수업도 집중이 잘 안 되어 종종 틀어놓기만 하고 다른 공부를 했던 기억이 있다. 다만 그 당시에는 이것이 실제 성적상의 차이로 나타났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필자가 다른 학우들의 성적을 따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고를 준비하며 선생님께 “실제로 이런 상황에서 교육 격차가 발생했냐”는 질문을 하였고, 선생님은 “2021학년도에는 처음부터 격주 등교가 실시 되었음에도 원격 수업 시 발생하는 ‘물리적인 현장감’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는 공부 의욕에 따라 성취도 차이가 극심하게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고 답변했다. 정말로 이러한 환경 변화가 성적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필자는 본인과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 다른 학년의 이야기도 들어보고자 했다. 필자는 이미 고등학교를 떠난 지 1년이나 지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 고등학교를 마친 학생들(2022학년도 목동고 졸업생 A양과 진명여고 졸업생 B양)을 대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현재의 교육 격차를 조망해보려 했다. 사진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직전의 백암고등학교 3학년 8반 교실.

교육 격차의 배경: 희미해진 학교

 

필자는 본인과 선생님의 이야기에서 한 발짝 나아가 다른 학년의 이야기도 들어보고자 했다. 필자는 이미 고등학교를 떠난지 1년이나 지나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막 고등학교를 마친 학생들(2022학년도 목동고 졸업생 A양과 진명여고 졸업생 B양)을 대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 현재의 교육 격차를 조망해보려 했다. 사진은 2021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직전의 백암고등학교 3학년 8반 교실.

 

A양은 코로나 19 확산 이전에 비해 비교과 활동이 현저하게 줄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2년 전만 해도 토론 대회, 과학 캠프, 수학 여행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런 기회조차 사라졌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또한 “친구들 혹은 선후배들과 협업 능력을 기를 수 없게 되면서, 공교육의 가장 중요한 기능 중 하나가 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2년 동안 받았던 수업의 질은 어땠냐는 질문에, “전반적인 공교육 수업의 질이 낮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며, 아예 수업하지 않고 학습 자료로만 수업을 대체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고 답했다. 이어서 펜데믹 이후 사교육의 영향력이 더 커졌냐는 질문에 A양은 “더 커졌다”며, “격주 등교나 단축 수업 등으로 공교육 시간이 줄어든 만큼, 학원에서 학생들을 불러서 보충 수업을 진행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심한 경우 온라인 수업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원에서 학생들을 불러 학교 수업에 접속만 한 후 학원 수업을 듣게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또, 야간 자율 학습이 사실상 불가능해져서 이를 독서실이나 학원에 가는 것으로 대체하는 경우도 늘었다고 대답했다. 한편, B양 역시 사교육의 영향력이 더욱 커졌으며, 특히 학원보다도 시공간의 제약이 적은 인터넷 강의 사이트의 영향력이 커진 것 같다고 대답했다. 또한, 학교 수업에 나가지 않고 학원에 가본 적 있냐는 질문에 B양은 “논술 준비하는 문과 친구들이 그러는 경우를 봤다”고 대답하기도 했다.

 

A양은 온라인 클래스가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다는 것은 알지만, 많이 미흡했다고 느꼈다”며 씁쓸함을 드러냈다. A양의 학교는 EBS 온라인 클래스 플랫폼을 이용했는데, 코로나 19 확산 초반인 2020년에는 실시간 강의가 아닌 정해진 기간 내에 수강만 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고 한다. 그렇기에 강의를 틀어놓기만 하고 듣지 않는 등 전반적인 학생들의 생활 습관이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재는 대부분 실시간 강의로 전환되면서 이러한 단점들이 어느 정도 보완되었지만, 그럼에도 A양은 대면 수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B양의 경우, “비대면이다 보니 어린 동생들이 수업을 제대로 참여하지 않는 모습을 집에서 종종 목격한다”며, “아무리 좋은 수업이어도 수업 집중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어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고 답했다. B양도 역시 대면 수업이 필요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악순환

 

이번에는 코로나 19 이후의 교육 격차가 이전의 교육 격차와 다른 특징이 있냐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이에 대해 이 선생님은, “특별히 다른 특징이라기보다는 기존의 빈부 차이가 아주 심화됐다”며, 가정에서 잘 돌봄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이 공부를 집중해서 할 수 없음을 강조했다. 이 선생님은 이런 경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보통 공교육의 주요한 역할이 학습 지도라고 생각하겠지만, 코로나 19 이후 돌봄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입증되었다”고 덧붙였다. 또한, “중하위권 학생들의 학력 붕괴는 모든 선생님이 말하는 부분”이, 현재 성적 분포에 “중간이 없다”며 교육 격차 심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다. 더 나아가 이렇게 심화된 교육 격차가 소득 격차로 이어지는 상황, 즉 빈부격차가 고착화되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득 수준에 따른 교육 격차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교육부와 통계청이 지난해 3월 발표한 2020년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 소득 800만원 이상 가구의 학생 1인당 사교육비 지출은 50만4000원으로 조사됐다. 반면 200만원 미만 가구의 사교육비는 9만9000원으로 5.1배 차이가 났다. 사교육 받는 학생들만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월 소득 800만원 이상의 사교육 참여율은 80.1%였지만, 200만원 미만은 39.9%로 2배 이상 차이가 났다.[각주:3] 지난해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코로나19 상황에서 드러난 교육 현장의 문제점을 파악하기 위해 4010명의 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원격 수업 진행으로 느낀 가장 큰 문제는 ‘학습 격차 심화(61.8%·복수 응답)’였는데 그 첫 번째 이유가 ‘가정 환경의 차이(72.3%)’였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지난해 7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부모의 소득에 따라 원격 수업 환경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수준이 낮은 가정의 학생 22.6%는 온라인 수업에 집중하기 어려운 장소에서 학습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반면 경제적 수준이 높은 가정의 학생은 6.2%만이 같은 취지로 응답해 둘 간의 차이는 3배 이상 났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이 지난해 10~12월 한국리서치를 통해 지원아동 58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온라인수업에 어떤 어려움이 있느냐는 질문에 아이들은 ‘나만의 학습공간이 없어서 집중하기 어렵다(32.9%·복수응답)’ ‘컴퓨터·노트북·태블릿PC 등이 부족하거나 사양이 낮다(33.1%)’고 대답했다.[각주:4]

 

실제로 이 선생님은 디지털 기기로 인해 교육 격차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며, “노트북이나 고급 태블릿을 쓰는 학생과 핸드폰 하나 있는 학생은 같은 수업을 들어도 흡수할 수 있는 학습 내용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교육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이 지원을 나서서 받지 않으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보편적인 디지털 기기 지원이 필요한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지금 공교육이 서 있는 곳

 

그렇다면 현재 정부는 이와 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을까? 22년 1월 13일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가 연 제3차 교육회복지원위원회 회의에 따르면, 교육부는 지역별로, 또 전국 단위로 교육 격차를 회복하려 하고 있다. 우선 지역별로 겨울 방학에도 중단 없는 교육결손 해소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정부는 온라인 또는 방역 수칙을 준수한 소규모 대면 방식 등으로 교과 보충, 심리‧정서 회복 프로그램 등을 집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그 예로, 제주도의 찾아가는 문해력 캠프를 들 수 있다. 나아가 전국적인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서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초‧중‧고 학생 131만 명(전체 초·중·고 학생의 25.7%)에게 교과 보충을 지원하고, 일반계고 1‧2학년 학생 37,800명에게 학습‧진로 등을 컨설팅하였다. 아울러 초‧중‧고 학생 263만 명(전체 초·중·고 학생의 51.3%)에게 교우 관계 형성 등을 위한 사회성 함양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정신 건강 위기 학생을 대상으로 2,763개교의 방문 의료서비스를 포함하여 37,643명에게 치료비, 정신건강검사 등을 지원하였다. 그밖에도 과밀 학급을 해소하는 과정에 있으며,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22년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한 주요한 계획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 학습결손 회복 총력 지원을 위해 현장 교원(강사 포함)을 통한 교과보충을 특별교부금 3200억 원을 통해 확대하고, 기초학력 3단계 안전망(협력수업 선도학교, 두드림학교, 학습종합클리닉센터)도 강화하려고 한다. 두 번째, 교‧사대생 등을 중심으로 1,050억 원을 들여 ‘대학생 튜터링’ 사업을 신설하여 희망하는 모든 초‧중‧고 학생에게 학습 보충과 상담을 지원하고자 한다. 셋째, 특별교부금 205억 원을 들여 교우 관계 형성, 사회성 함양, 신체 활동 등을 집중지원하는 학교 단위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212억 원을 들여 심리지원을 위한 상담, 치료비, 방문 의료서비스 등도 지원한다. 네 번째로, 이와 함께 유아‧직업계고‧취약 계층 맞춤형 지원, 교육여건 개선 등 교육 회복 종합방안 기본계획 과제들을 지속‧확대 지원하여 교육 회복 추진에 총력을 다한다. 마지막으로,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모든 학생의 교육 회복과 취약 계층 맞춤형 지원 등에 올해 9조 4,152억 원(국고 1,094억 원 포함)을 집중적으로 투입하려 한다.[각주:5]

 

이상과 현실

 

다만 이 모든 것이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이며, 나아가 ‘실적 부풀리기’라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시·도 교육청 예산 중 ‘코로나발 교육결손 회복’에 직접 활용되는 예산은 '교과 보충 등 학습 지원'과 '학생·교원 심리 정서 지원'에 지원하는 1조 1913억 원 정도에 그친다. 교실 내 거리 두기를 위한 과밀학급 해소 예산을 합해도 1조 7950억 원 수준이다. 여기에 교육부가 국고에서 지원하는 학습 결손 회복 지원 예산 1050억 원을 합하면 1조9000억 원이다. 이는 17개 시·도 교육청과 교육부가 교육 회복과 취약 계층 맞춤형 지원에 투입하겠다고 밝힌 9조 4152억 원의 20.2%에 불과하다. 교육청이 학습 지원에 투입하는 8855억 원에도 교육부가 특별교부금으로 시·도 교육청에 지원하는 '교과 보충 지도' 프로그램 예산 3200억 원이 포함돼 있어 실제 교육청 부담은 5600억 원가량이다.

 

나머지 예산은 사실상 코로나 19 상황이 아니어도 일상적으로 지원하는 예산이다. 맞춤형 지원 예산 중 가장 많은 '유아 교육 공공성 강화' 예산은 대부분 만 3~5세 누리과정 지원금이 차지한다. '취약 계층 맞춤형 복지 지원' 예산도 저소득층에게 지급하는 교육비와 교육 급여가 중심이다. '교육 과정 운영 및 특별 활동 지원' 예산은 각종 비교과 활동과 체험 활동, 진로 교육, 독서, 예술·체육 활동 등을 지원하는 예산이다. '유·초등 돌봄 지원' 예산은 유치원과 초등학교 돌봄 교실 운영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방역 인력과 물품 지원은 코로나 19 상황에서 학교 방역을 위해 꼭 필요한 예산이긴 하지만 이를 교육 회복 예산에 포함시킨 것은 '실적 부풀리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직업계고 지원'도 이미 현장 실습과 취업 지원, 기자재 구입 등에 활용하는 예산이다.[각주:6]

 

또 다른 문제는 늘어난 예산을 효율적으로 집행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2학기 교육회복 관련 예산이 각급 학교에 내려온 시점은 9~10월이다. 교사들은 방학까지 3개월 남은 시점에 예산을 집행할 항목 및 대상을 정해야 했다. 주간동아 김우정 기자의 인터뷰에서, 중등교사 B는 당시 교육회복 지원사업비 운용을 두고 “예산을 집행할 기간 자체가 짧아 일선 학교에 혼란이 적잖았다”며 “교사와 학생의 코로나19 확진이 잦아 원활한 대면 접촉이 어려운 상황에서 교사가 당장 교육회복이라는 목적에 맞는 용처를 찾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로 전국초등교사노동조합 조사에 따르면 기초 학력 사업 수요가 없음에도 예산을 배당받거나, 책을 구입해 비치할 공간이 없는 소규모 학교에 도서 구매비가 많이 교부돼 골치를 썩이는 등 교육 현장 수요와 괴리된 지원이 적잖았다고 한다.

 

또, ‘교육 회복 종합 방안’에서 핵심인 ‘학습 도움닫기 프로그램’ 운영도 난항을 겪고 있다. 일부 학부모가 자녀의 교내 추가 학습 참여에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등교사 B는 “학부모가 자녀 추가 학습을 반대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칫 부진아로 낙인찍혀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할까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라면서 “학업을 돕는 취지라고 설명해도 차라리 학원에 보내겠다며 손사래를 치는 경우가 적잖다”고 설명했다.[각주:7]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교육 격차를 줄일 수 있을까? 여러 가지 답을 내놓을 수 있겠지만, 본고에서는 세 가지 해결 방안을 내려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현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파악과 그에 맞는 예산 편성이 절실하다. 우선 지금 실시하고 있는 사업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다방면으로 검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교육부는 학교 현장과의 소통을 강화하여 교원들과 학생들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다. 또한, 더 이상의 ‘주먹구구식’ 예산 운영은 삼가야 한다. ‘보여주기식’ 예산 편성뿐만 아니라, 그저 당장의 실적을 내기 위한 단기적인 사업 운영도 지양해야 한다.

 

둘째, 맞춤형 학습 처방 지원 플랫폼 구축이 필요하다. 인터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비대면 수업은 대면 수업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따라서 단순히 이전의 수업 형태를 온라인으로 옮기는 데 집중하기보다는, 비대면 수업 환경에 맞는 교육 방식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노력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도 학생 개개인에 맞는 학습 처방을 내릴 수 있는 플랫폼의 구축을 제안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유기홍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개별 학생의 학습데이터를 분석해 맞춤형 학습 처방을 지원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면서 “특히 민간의 우수 교육 서비스가 학교 현장에서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도록 지역별로 지원 센터를 운영하고, 경비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각주:8] 현재 온라인 학습 플랫폼이 어느 정도 갖춰진 만큼, 앞으로는 이를 잘 활용하여 학생 개개인 맞춤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취약 계층을 대상으로 한 지원을 반드시 확대해야 한다. 코로나 19로 인해 학교라는 공간의 의미가 흐려진 지금, 주변 환경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학생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집에 혼자 남아있는 취약 계층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관리하는 행정적인 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주양 서울 백암고 교사는 인터뷰에서 “특히 어린이는 더더욱 세심하게 관리해야 한다”면서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아가 학습 환경 개선을 위한 전자기기 지원도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이 부분에 대해서 이 선생님은 “외국은 컴퓨터나 태블릿 PC를 일괄적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우리나라도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된 지원 체계가 있으면 좋겠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나가며

 

사실 우리가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당장 드러나는 수치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이 언젠가 모이고 쌓여 나타날, 좁혀질 수 없는 계층 간의 격차를 진정으로 경계해야 한다. 코로나 19로 가속화되는 교육 격차를 지금 막지 않으면, 우리는 영영 후회할 결말을 맞을지도 모른다.

 

 

 

당근주스

  1. 김양분 외, 학력격차의 변화 추이 및 해소 방안, 서울: 한국교육개발원, 2010. [본문으로]
  2. 정필재, <코로나 2년의 그늘원격수업 탓 더 벌어진 학력격차>, 세계일보, 2021. 12. 26. [본문으로]
  3. 신하영, <50.4만원 vs 9.9만원초중고 교육격차 사교육서도 5배 차이(종합)>, 이데일리, 2021. 3. 10. [본문으로]
  4. 김미란, <[코로나19와 교육 사각지대] 원격수업 17개월과 방치된 아이들>, 더스쿠프, 2021. 6. 30. [본문으로]
  5. 교육부, <3차 교육회복지원위원회 회의 개최>, 교육부, 2022. 1. 13., <https://blog.naver.com/moeblog/222620832584>, 2022. 3. 8. [본문으로]
  6. 권형진, <‘코로나발 교육결손 회복9조 투입부풀리기지적도>, news 1, 2022. 1. 13. [본문으로]
  7. 김우정, <준비 부족 드러낸 교육부의 코로나 학력 격차 해소 정책>, 주간동아, 2022. 1. 19. [본문으로]
  8. 정성민, <[소통광장-학습격차] 코로나교육불평등 해법 찾기 제언>, 뉴스포스트, 2021. 4. 7. [본문으로]

선거 연령 하향의 배경: 청소년도 ‘시민’이다

 

  2019년 12월 27일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졌다. 이러한 선거권 연령 하향 배경에는 청소년 참정권 운동이 있었으며, 사회적 약자인 청소년 관련 정책을 활발하게 마련하고, 이는 젊은 세대들의 정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선거 연령하향은 광복 이래 3번째이다. 1960년 4.19 혁명 이후에 만 21세에서 만 20세로, 2005년에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그리고 2019년이 되어서야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하향되었다.[각주:1]그러므로 만 18세에게 참정권이 주어지는 데까지 상당히 오랜 기간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만 18세가 한국 사회에서 가지는 ‘청소년’, ‘고등학생’, ‘미성년자’라는 이미지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 속에서 청소년도 ‘시민’이라는 외침이 등장했으며, 이는 청소년 참정권에 큰 영향을 미쳤다. 또한 청소년 참정권을 요구하는 청소년 운동뿐만 아니라 선거연령의 세계적인 흐름도 선거권 연령 하향에 영향을 미쳤다. 현재 선거권 연령이 만 18세인 국가는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캐나다, 일본 등 흔히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국가들이다. 이러한 세계적인 기준 또한 선거권 연령 하향에 한몫 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온전한 청소년 선거권 행사를 위하여

 

  선거연령 하향에 대한 공직선거법 개정 이전, 이를 두고 많은 의견이 제기되었다. 선거연령하향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많았기에 만 18세로 선거 연령이 하향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최근이 되어서야 선거연령하향이 청소년 정책 활성화와 그들을 진정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발판이라는 목소리가 커졌지만, 현재까지도 청소년이 선거권을 향유 하는데 많은 걱정이 있다. 아직 청소년들은 정치 가치관이 완전히 확립되지 않았고,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선동당하기 쉽다고 여겨지기에, ‘선거권을 제대로, 온전히 향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남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는 청소년 참정권을 반대하기보다는, 청소년이 자신의 권리를 잘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 선거권에 대한 염려와 걱정의 시발점은 ‘청소년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라는 인식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교육’이 가장 확실하고 안정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되어, 고3 때 국회의원 투표를 한 적이 있다. 당시 선거에 대해 너무 무지했던 터라 지역구의원과 비례대표의원의 개념에 대해서도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고, 투표용지를 두 장이나 줘서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 투표를 한 친구들도 마찬가지로 선거에 대해 잘 알지 못했으며, 투표권이 있어도 선거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유로 투표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또한 정치적 가치관이 제대로 정립되지 않았기에 자신의 정치관에 따라 투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여론 혹은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선거에 임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필자와 주변인들의 경험을 통해 청소년 정치교육이 시급함을 느꼈다. 최근에 만 16세로 선거연령하향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2021년부터 고등교육이 무상으로 시행되고 있는데, 이는 앞으로 고등교육의 의무교육을 기대할 수 대목이다. 그러므로 공교육 차원에서의 정치교육이 제대로 마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치교육의 기능

 

  정치교육의 중요성은 오래전부터 강조되었다. 서양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동양에서는 공자, 맹자, 묵자 등이 다양한 정치교육론을 발표하며 정치교육을 강조했다. 정치교육의 내용과 방식에는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정치교육은 기본적으로 ‘정치체제의 유지와 안정 및 위기 시의 생존과 변화라는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다. 정치교육에 관한 이론이나 연구에서 정치교육 중요성과 그 기능의 기본적인 전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각주:2]

 

   ① 정치체계의 안정과 발전 그리고 그 변혁은 국민들의 정치적 의식성향 내지 정치적 행위양식과 크게 관련을 갖는다.

 

   ② 국민들이 갖는 정치적 성향과 태도는 정치제계의 운영과정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③ 정치현상은 국민의 정치적 의식성향과 행위양식에 의하여 결정되며, 따라서 정치현상을 기구나 제도, 그리고 그 운영양식에 의해서 보다 국민의 정치의식 성향과 행위양식에 의해서 더 잘 설명될 수 있게 된다.

 

   ④ 국민은 나라에 따라 정치지도자, 정치체제 및 구조 등에 대해서 각기 다른 인식, 감정, 태도를 갖게 되며, 정치에의 참여 양상도 달라지게 된다.

 

   ⑤ 정치에 대한 신념, 태도 등의 정치적 성향과 의식 그리고 행위양식은 학습 과정을 통하여 형성되고 변화한다.

 

   ⑥ 아동기 내지 소년기의 정치적 학습은 오래 지속되며 성년기의 정치성향과 정치행위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오랜 시간 정치교육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선거 연령 하향으로 인해 공교육에서의 정치교육은 이전보다 더욱 중요해졌음을 깨달아야 하는 시기이다.

 

한국 정치 교육의 문제점

 

  한국 교육 현장에서는 정치교육이 원활하게 기능하고 있는가? 아마 정치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기 때문에, 선거연령하향에 많은 반대와 염려가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단락에서는 한국 정치교육의 문제점을 세 가지로 정리하여 살펴보았다.

 

  한국 정치 교육의 첫 번째 문제점은 정치교육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고등 교육과정의 경우, 고1 때 ‘통합사회’ 과목을 의무적으로 배우게 되는데, 이름에서 엿볼 수 있듯이 통합사회는 일반사회, 지리부터 윤리, 역사 등 여러 가지 사회영역이 통합되어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개 일반사회와 지리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정치’에 대한 내용은 아주 미미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고2, 3학년이 되면 학생들이 탐구과목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 ‘정치와 법’ 과목을 선택한다면 정치에 대해서 비교적 깊게 배울 수 있지만, 해당 과목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남은 고등교육과정 내에서는 사실상 정치에 대한 추가적인 지식을 쌓기 어렵다. 그리고 선택과목의 수강인원이 학교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치와 법’ 수업이 개설되지 않은 학교도 빈번하게 찾아볼 수 있다.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하향된 시점에서 학생들이 정치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개념 및 이론을 배울 수 있는 배경이 튼튼하게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문제점은 활발한 상호작용의 장이 미흡하다는 것이다. 선거권을 제대로 향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신만의 정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때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견해를 정리하고 타인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과거에 비해 ‘학생 참여형’ 수업이 많이 발달했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서로의 의견을 주고받는 상호작용의 기회보다 오로지 대학 진학을 위한 공부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이 미치는 영향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고등학교의 교육 목적이 ‘좋은 대학 진학’에만 있는 것은 아님이 분명하다. ‘성숙한 성인’, ‘성숙한 시민’으로 학생을 이끌어가는 것 또한 고등교육의 목적이다. 그러므로 정치 영역에서뿐만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개방적인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 한국은 인간개발지수 순위는 18위인데 반해, 교실 내 토론의 개방성 수준은 42위에 머무르고 있다.[각주:3] 한국 교육이 인재를 양성하는 데에는 탁월하지만 주체적인 시민의 발판이 되는 토론에 대해서는 비교적 열등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만의 견해를 정립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자신의 의견을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우선적이다. 이러한 자유로운 토론이 학교 내에서 가능해져야, 학교가 성숙한 시민 양성의 기능을 원활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문제점은 정치체제나 정치 엘리트들에 의해 정치교육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못하고, 수시로 변동한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의 정치교육 변동을 살펴보면, 김영삼 정부는 시장 중심의 시민을 위한 교육개혁을 실천하고, 국사를 사회 교과에 통합시켰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정치교육에서 신자유주의에 입각하여 사회과 교육을 공통교과로 지정했으며, 노무현 정부는 참여민주주의를 통해 시민민주주의를 꾀하는 공교육을 강화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는 신자유주의 원리에서 법치 민주주의를 표방하여, 정치교육 영역이 전체적으로 감소했고 지리와 경제영역의 교육이 확대되었다.[각주:4]  대한민국의 역대 정부가 정치교육을 수단화시켰다고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만, 각 정부는 각자가 지향하는 방향으로 정치교육을 이끌어갔고, 다음 정권으로 넘어가면 그 방향이 또 달라졌다는 것은 사실이다. 물론 시대에 따라 요구되는 민주주의의 형태가 다양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빈번한 교육개정은 학생들에게 혼란을 가중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의 정치교육과 한국의 정치교육

 

  제 2차 세계대전과 국가사회주의의 독재를 겪은 독일은 일찍이 정치교육을 통한 민주주의 강화를 강조하였다. 독일의 정치교육은 학교 안팎에서 이루어지며, 공식적인 기관과 비공식적인 기관이 그 주체가 되어 다양한 정치교육을 진행한다. 정치교육을 특정 시기에 배워야 할 일시적인 교육이라기보다 평생교육으로 여기며, 교육의 대상이 굉장히 폭넓다. 국가의 제도화와 지원으로 정치교육에 시민의 참여를 자연스럽게 이끌고, 인프라 또한 체계적으로 구축되어있다. 이러한 독일 정치교육은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기에, 독일 정치교육을 대략적으로 살펴본 후 한국 정치교육에 필요한 시사점을 얻고자 한다.

 

  독일의 정치교육은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세 가지 원칙을 기본 원칙으로 삼는다. 첫 번째는 ‘강압 금지’이며, 이 원칙은 주입식 교육 금지 원칙이라고도 해석된다. 두 번째는 ‘논쟁성 유지’ 원칙으로, 학문과 정치에서 활발한 논쟁은 수업에서도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민감한 논쟁의 사안이라고 해서 수업 중에 숨기고 회피하면, 오히려 특정 방향으로 의견이 굳어진다는 것이 독일 교육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세 번째 원칙은 ‘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 원칙이다. 학생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를 고려할 수 있어야 하며, 이에 따라 정치적 상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은 ‘보이텔스바흐 합의’라는 체계적인 합의 아래에서 정치교육을 시행해 왔다. 반면에 대한민국의 경우, 정치교육의 정형화된 원칙도 없을뿐더러 앞서 확인한 역대 정부의 정치교육과정을 보면 통일된 합의가 부족하고,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기보다는 정부의 입맛대로 부리는 느낌이 강하다. 정치교육의 특성상 정권의 영향을 많이 받으므로, 통일된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어 학생들의 혼란을 줄이고, 성숙한 민주주의 시민을 양성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교육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보이텔스바흐 합의 중 ‘논쟁성 유지’ 원칙이 한국 정치교육에 가장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강압금지’는 민주주의 사회에서라면 당연히 지켜져야 하는 원칙이고, ‘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 원칙은 선거 연령 하향, 청소년 운동 등으로 과거에 비해서 청소년들의 정치적 참여가 폭넓어졌으며,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상당히 커졌다. 하지만 ‘논쟁성 유지’의 경우, 학생들이 수업 중에 논쟁을 적극적으로 펼칠 기회도 많이 없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을 공교육의 장에서 꺼내는 것 자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교육자가 개인적인 의견이 가득 담긴 발언을 하는 것은 ‘강압 금지’의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적절하지 않다. 하지만 교육자가 중립적인 입장을 지키고 논쟁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는 역할에 그친다면, 오히려 학생들이 해당 논쟁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상호작용의 장이 마련된다면, 세 번째 원칙인 ‘정치적 행위 능력 강화’의 원칙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논쟁성 유지의 원칙은 청소년이 시민권을 적절하게 행사하기 위한 중요한 자양분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독일 정치 교육은 기본 원칙뿐만 아니라 그 체계 또한 주목해서 볼 가치가 있다. 독일 정치교육은 정치재단, 교회, 노조, 시민단체 등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독일은 일찍이 민주시민교육의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여 다양한 교육 대상자들을 위한 콘텐츠를 공급하고 학교 안과 밖 모두에서 교육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러므로 학생들뿐만 아니라 전 국민, 심지어는 독일 거주 외국인들까지 모두가 정치교육의 대상이 된다. 또한 국가는 다양한 정치교육 주체들을 지원하되, 교육내용에 일체 간섭하지 않는 것이 큰 특징이다. 이 단체들은 정부의 교육정책이 미처 마련되지 못한 시기에도 순발력 있게 강연회, 대화 써클 등을 통해 정치교육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러한 점은 독일의 시민사회단체들도 같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교육은 주로 학교 내에서만 이루어지고, 그조차도 체계적이지 못하다. 앞서 말했듯이,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고1 과정의 ‘통합사회’ 과목에서 도덕, 지리, 법, 경제 등의 다양한 사회 영역과 뭉쳐서 배우기 때문에 정치 교육의 깊이가 깊지 못하고, 고2, 3학년이 되면 정치영역이 선택과목으로 편성되어 정치교육을 접할 기회가 학생 모두에게 고르지 못하다. 또한 한국 사회단체들이 다양한 민주시민교육을 진행하고 있지만, 이들의 중추역할을 하는 기관이 없기 때문에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한다. 그리고 민주시민교육이 성숙한 시민 양성을 위한 정치교육에 머무르기보다는 각 단체들의 목적을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 정치교육의 본질이 흐려질 수 있으며, 그 혼란은 그대로 학생을 포함한 국민들의 몫이다.

 

한국형 정치 교육을 위하여

 

  앞서 살펴본 한국 정치교육의 문제점과 독일의 사례를 바탕으로, 앞으로 한국 정치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자 한다.

 

  가장 첫 번째는 정치적 논쟁의 장(場)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연령하향으로 인해 고등학생도 선거권을 가지게 되었으며, 정치적 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이들도 충분히 정치적 논쟁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만의 의견을 정립할 줄 알아야 한다. 하지만 학교-학원-독서실을 오가는 고등학생들의 현실에서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정치적인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깊게 고민할 여유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소년의 ‘정치적 미성숙’에 대한 염려를 해소하려면, 이론적인 정치공부뿐만 아니라, 한국 정치세계에서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이슈들을 접하고, 친구들과 의견을 공유하며 자신만의 정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교육자의 도움으로 정치적 이슈에 대한 정보를 얻고, 학생들이 각자 의견을 논리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학생들이 선거권을 적절히 행사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될 것이다.

 

  두 번째는 정치교육의 독립성 보장과 국가의 개입 배제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정치교육 총괄기관인 연방정치교육원을 둔다. 연방하원에서 각 정당 의석 비율에 따라 연방정치교육원에 감독관을 파견하지만, 국가는 교육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아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정치교육에 반영되도록 한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정부마다 추구하는 정치교육이 달랐으며, 교육개정을 통해 각 정부가 지향하는 바를 담아왔다. 이러한 흐름이 계속해서 이어진다면, 정치교육의 일관성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교육자와 학생 모두에게 혼란을 줄 위험이 있다. 오롯이 학생들이 성숙한 시민이 되도록 이끌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회의 목소리를 듣게 하고 그 속에서 자신만의 생각을 키우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각 공교육이나 단체들의 민주시민교육은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의 개입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기에, 정치교육을 다루는 독자적인 제 3의 기구를 설립하거나 비정부기구의 정치교육활동을 유도하여 학생들이 정치에 대한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은 차선책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로 정치교육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 진학이라는 단기적인 목표에 맞춤화된 특정 선택과목 편향은 공교육에서 정치영역 입지를 축소시켰다. 선택과목체제를 아예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정치와 법’ 과목을 선택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선거권을 행사하는데 충분한 지식을 마련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드시 정치 과목을 공통 교과목으로 편성하지 않아도, 학교차원에서의 특강, 토론대회, 활동 등을 통해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정치를 접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또한 정치교육이 오로지 학생에게만 필요하다는 인식을 걷어내고, 정치적 행위를 행하는 사람 혹은 앞으로 정치적 행위가 기대되는 사람 모두에게 필요함을 인지해야 한다. 성인들에게도 정치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민주시민교육을 주관하는 다양한 시민사회단체들에게 국가의 지원이 필요하고 다양한 콘텐츠, 인프라가 마련되어야 한다.

 

나가며

 

  ‘교육체계’를 변화시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생각보다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며, 이러한 복잡성은 결국 ‘학생을 위한’ 교육의 본질을 잃게 만든다. 정치교육도 마찬가지다. 학생들이 선거권을 바람직하게 행사할 수 있고 성숙한 정치관을 가지려면, 오로지 그것에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지 이를 누군가의 이득을 위해 사용되어서는 안 되며, 정치교육이 학생 자신만의 정치관을 정립할 수 있도록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해야 한다. 선거연령하향으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정치교육이 정말 중요한 시기이다. 청소년들이 ‘정치적으로 미성숙하다’라는 선입견을 없애고, 주체적인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치교육에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윤슬

 

  1. 공현, <18세 선거권,그리고 청소년 참정권 확대의 의미와 과제>, 월간 복지동향No. 258, 참여연대사회복지위원회, 2020, 30p. [본문으로]
  2. 김미경, <한국과 독일의 정치교육 비교 -시민사회단체의 활동을 중심으로>, 교육문화연구Vol. 15 No. 1, 인하대학교 교육연구소, 2009, 36p. [본문으로]
  3. 남미자, <청소년 정치참여의 의미와 학교교육의 방향>, 교육정치연구Vol. 27 No. 1, 2020, 53p. [본문으로]
  4. 김순이, <한국 정치체제 변화에 따른 정치교육의 변화 양상: 초ㆍ중ㆍ고 정치교육의 내용과 방법을 중심으로>,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2019, 6p.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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