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형 교육과정


  올해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는 미래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개정 교육과정은 앞으로 우리는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가져야 하며, 이를 길러주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제껏 학교는 학문적 지식만을 알려주는 곳이었다면, 이제는 앞으로의 예측 불가능한 환경에 스스로 적응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주는 곳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부터 본격적으로 미래를 위한 교육을 강조했지만, 필자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이 그 변화의 시작점이라고 본다. 2015 개정 교육과정부터 문과 이과가 통합되고 선택과목이 다양해졌는데, 이것이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강조한 교육을 실행시키기 위한 준비였을 것이다. 아래의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일부를 보며 선택과목의 증가와 미래형 교육과정은 어떤 연관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교육은 삶의 맥락에 교육적 내용을 적용하고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과 당면한 사회적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역량을 모든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준비를 시키는 것이다. [각주:1]


  이 문장에는 두 가지 교육의 목표가 담겨있다. 첫 번째는 교육적 내용을 삶과 연결해 사회적 변화에 스스로 대응하는 것, 두 번째는 소질과 적성에 맞는 맞춤형 교육이다. 이 두 가지의 목표와 개정 교육과정의 선택과목 증가는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우선 이상적으로는 선택과목이 증가하면, 두 번째 목표인 맞춤형 교육이 가능해질 수 있다. 학생들이 흥미와 적성에 맞는 과목을 스스로 선택하고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번째 목표인 교육적 내용을 삶과 연결하고 대응하는 것은 선택과목의 증가와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 오히려 선택과목은 학생들의 시야를 제한해 다양한 지식을 배울 기회를 막을 수도 있다. 선택과목은 모든 학생이 공통으로 배웠던 과목을 선택적으로 배우도록 만들어 여태껏 학생들이 배웠던 과목 일부만 배울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선택과목의 증가는 교육부에서 제시한 교육의 목표와는 부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선택과목의 다양성에 감춰져 주목받지 못하는 공통 과목에서 선택과목의 증가와 2022 개정 교육과정 첫 번째 목표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선택과목이 다양해지고 난 후 학생들이 공통으로 배워야 할 과목들이 생겼다. 공통 과목은 모든 학생이 동등하게 배우는 기초 과목이기도 하지만, 달리 말하면 모든 학생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지식을 담아놓은 과목이라 할 수 있다. 과학의 경우에는 모든 학생이 알아야 할 필수적인 지식을 과학적 소양이라 부른다. 과학적 소양을 기르면 학생들이 삶과 과학을 연결해 변화에 대응하는 능력이 길러질 수 있는 것이다.

과학적 소양


  과학적 소양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는 가변성을 가지고 있다. 사람마다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본 역량이 다르고, 시대적 배경에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각주:2] 교육부에서는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과학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과학적 소양이라고 정의했다.[각주:3]  


  그렇다면, 지금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과학적 소양은 무엇일까? 나는 모든 사람이 방대한 정보 속에서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코로나바이러스 유행 초기 유럽에 바이러스가 전파를 통해 퍼진다는 낭설이 있었다. 대부분은 터무니없는 소리임을 알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진짜라고 생각해 기지국을 폭발시키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이전에도 많은 정보를 스스로 판단하고 걸러내는 능력은 이미 필요하긴 했다. 예전과는 달리 과도하게 많은 정보를 인터넷 검색이나 유튜브, 커뮤니티로 손쉽게 얻을 수 있으며, 이 중 정확한 정보를 과학적인 방법으로 걸러내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이 과학 교육에서의 핵심이자 주된 목적이 되어야 하며, 통합과학에서는 이러한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방법: 과학의 본성


  과학적 소양을 기르는 방법은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것이다.[각주:4]  과학의 본성은 과학에 대한 인식론으로서 과학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 중 공통적인 견해를 말한다.[각주:5] 과학의 본성은 과학의 어떤 측면을 바라볼지에 따라 다양하게 정의할 수 있는데, 보편적으로 언급되는 과학의 본성을 김영선(2013)이 제시한 NOSAT를 참고하여 정리한 표를 가져왔다.[각주:6]

 


  우리나라 교육과정에서는 위의 표 중 이론, 관찰 추론, 사회문화를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각주:7] 이론은 과학적인 지식 그 자체이고, 관찰 추론은 자연을 탐구하고 원리를 생각하는 것이며 사회문화는 과학도 다른 학문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약속이 기반이어야 함을 이해하는 것이다. 지금 시기에 필요한 과학적 소양을 기르기 위해서는 표의 과학의 본성 중 과학적 방법과 검증 가능성을 주로 가르쳐야 할 것 같다. 과학적 방법은 새로운 원리나 기존의 지식을 실험이나 경험과 같은 증거를 가지고 탐구하는 방법이며, 검증 가능성은 과학적 방법을 사용할 때 나타나는 소양이다. 어떤 가설을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검증할 때 들어가는 전제 조건들은 과학적으로 이미 검증된 사실이어야 하고 누구나 같은 실험을 했을 때, 모든 가설의 단계에서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며, 이를 검증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다양한 정보를 올바르게 선별하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므로 어떤 정보를 검증 가능성을 기반으로 이해하고, 과학적 방법을 통해 스스로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과학의 본성 영역 중 몇 가지만 가르치는 것보다 골고루 가르치는 것이 좋다. 균형 있게 가르쳐야 올바른 과학적 인식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방법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방법을 크게 전달 매체와 교육 방식으로 나눌 수 있다. 전달 매체는 교사의 수업과 교과서 등이 해당하며, 교육 방식은 탈맥락적 접근과 맥락적 접근, 암시적 접근과 명시적 접근이 있다.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방식 중 맥락적 접근은 과학의 교과적인 내용을 가르칠 때 과학의 본성을 함께 가르치는 것이고, 탈맥락적 접근은 가르치는 내용과 관계없이 과학사나 과학철학 등 과학의 본성을 다루는 새로운 과목을 도입해 가르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자모형을 가르칠 때, 맥락적인 방법으로 과학의 본성 중 잠정성을 함께 가르친다면 다음과 같은 방식이 된다. 

 

그림1. 천재교육 중2 1단원 물질의 구성 중 일부 (19p)


  위 사진에서 보면 단순히 원자는 원자핵과 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엔 돌턴이 원자설을 제안했지만, 그 후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어 원자모형이 구체화 됨을 함께 이야기해주고 있다. 이는 교과서에 맥락적으로 과학의 잠정성을 넣어 가르치는 것이다.


  다음으로 접근 방식 중 암시적 접근과 명시적 접근에 관해 보면, 암시적 접근은 과학의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암시적으로 가르치는 것을 말하며, 명시적 접근은 과학의 본성이 명확하게 드러나게 가르치는 것을 말한다. 아래는 특정 교과서에서 과학의 본성 중 사회 합의를 명시적으로 드러낸 부분이다.

 

그림2. 천재교육 중3 2단원 기권과 날씨 중 일부 (86p)


  위 그림에서 잠정성이 드러난 부분은 마지막 문장이다. 단순히 수은 기둥 76cm의 압력에 해당하는 대기의 압력이 1기압이라는 식으로 서술하지 않고, 토리첼리가 압력을 1기압으로 정의했다고 기압의 정의를 내린 주체자를 서술함으로써 과학의 본성 중 사회 합의를 명시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명확하고 맥락이 있는 말을 더 이해 잘하듯이 명시적이고 맥락적인 방식이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데 더 효과적이다.[각주:8] 그래서 모든 학생이 배우는 통합과학에서는 과학의 본성을 명시적이고 맥락적으로 서술해야 한다.

 

통합과학에서 드러난 과학적 소양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새롭게 도입된 통합과학의 교과서 중 1단원을 살펴보며, 과학의 본성이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 있는지 찾아보았다. 1단원은 단원 자체가 빅뱅우주론이라는 이론과 빅뱅우주론이 성립되기까지의 논쟁을 주로 다루기 때문에 과학의 본성이 드러나는 서술이 꽤 있었다. 직접 다른 단원을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정명현의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과학의 본성 수준 및 반영 정도 분석’ 논문을 보고 통합과학 교과서에서 과학의 본성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연구 결과 통합과학에서 전체적으로 과학의 본성을 명시적인 방식보다는 암시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과학의 본성이 나타나지 않는 서술도 많았다고 한다.[각주:9]  조금 더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기 위해 다음의 1단원 우주 초기의 원소 중 우주론에 대한 논쟁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을 분석해보았다.

 

그림 3. 미래엔 통합과학 1단원 물질의 규칙성과 결합 중 일부 (14p)


  과학의 본성 중 잠정성과 이론을 교과서에 넣었으므로 맥락적이며, 역사적인 흐름과 함께 과학기술의 발달로 다른 은하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으로 보아 명시적이라고 할 수 있다.


같은 단원의 다른 부분에서는 암시적 접근 방식을 택했다. 아래 내용은 우주의 원소를 연구할 때 사용하는 스펙트럼에 대한 내용이다.

 

그림 4. 미래엔 통합과학 1단원 물질의 규칙성과 결합 중 일부 (20p)


  마지막 문장에서 스펙트럼으로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원소를 알아낼 수 있고 이것이 우주를 연구할 때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과학의 본성 중 검증 가능성을 전제로 한 서술이며, 과학의 본성을 암시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또한 교과서 별로 같은 내용을 서술하는 방식이 다르기도 했다. 임의로 교과서 2개를 지정해 주기율표를 도입하는 부분을 비교해보았다.

 

그림 5. 미래엔 통합과학 1단원 물질의 규칙성과 결합 중 일부 (28p)

 

그림 6. 천재교육 통합과학 1단원 물질의 규칙성과결합 중 일부 (33p)


  첫 번째 교과서에서는 “주기율표는 (...) 원소 분류표이다”라는 서술로 주기율표의 정의를 단순하게 서술했지만, 두 번째 교과서에서는 과학자들이 주기율표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설명한다. 아울러 두 번째 교과서 마지막 문장에, “그는 (...) 주기율표로 나타내었다”라고 함으로써 과학의 본성 중 관찰 추론과 사회적 합의를 명시적으로 드러냈다고 볼 수 있다. 교과서를 주로 분석했지만, 무엇보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교사의 수업 방식에 따라서도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방식과 내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과학 탐구 실험의 도입


  과학 탐구 실험은 과학 실험을 하는 과목으로, 과학의 본성 중 관찰 추론이나 과학적 방법을 맥락적으로 도입한 과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이론, 사회 합의, 관찰 추론에 치우쳐 있는 과학의 본성을 균형적으로 가르치는 데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원래의 취지와는 다르게 운영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2018년 발행된 한국 과학 교육 학회지에서 한 학교의 과학 교사를 인터뷰하며 과학 탐구 실험 과목의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 번째로는 동료 교사와 분업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여러 명이 과학 탐구 실험을 함께 담당하기가 어려워 혼자서 책임지는데, 이 때문에 협업을 통한 과목의 개발이 어렵다고 했다. 두 번째로 통합과학과 연계에 대한 문제점도 이야기되었다. 인터뷰에 따르면 한 과학 탐구 실험 연수에서 통합과학과 과학 탐구 실험 과목이 다루는 내용이 같으니 연계해서 가르쳐야 한다고 했는데, 또 다른 연수에서는 통합과학과 과학 탐구 실험 과목은 추구하는 방향이 달라 독립적으로 진행하라 말했다고 한다. 통합과학과 과학 탐구 실험을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제대로 합의가 되지 않은 것이다. 세 번째로 평가와 관련된 문제도 있었다. 과목 특성상 수행평가 형식으로 평가를 하게 되는데, 객관성이 부족해질 수 있다. 그래서 일정 비율 지필평가를 진행하는 학교가 많았는데, 이는 탐구 위주라는 과학 탐구 실험의 본질을 흐릴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학교별 실험실과 도구들이 천차만별이라는 문제점도 있었다. 과학 탐구 실험은 실험 위주의 과목인데, 이제까지 과학 시간에 실험을 진행하지 않는 학교가 많았기 때문에 실험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는 것이다. 과학 탐구 실험으로 과학의 본성을 교육하는 효과를 보기 위해선 위의 문제점들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각주:10]

 

앞으로는


  통합과학과 과학 탐구 실험은 문과 이과 통합 체제에서 중요하게 떠오른 과목이지만, 과학의 본성을 균형 있게 도입하지 못했고, 과학의 본성에 명시적으로 접근하는 데에도 부족한 부분을 보였다. 과학적 소양은 아이들이 스스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바이러스와 같은 위험 요소로부터 스스로 보호할 수 있게 하며, 잘못된 정보로 인한 피해를 줄일 수 있게 만든다. 그렇기에 적어도 교과서는 암시적인 방식보다는 명시적으로 과학의 본성을 드러내야 하며, 과학의 본성 중 몇 가지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적으로 과학의 본성을 가르쳐야 할 것이다. 또한, 과학적 소양은 성인이 되어서도 필요한 것이므로 수업에서도 과학적 본성에 대해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 과학을 본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연습이 충분히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일육

  1. 교육부 (2022), 교육과정정책과,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 주요사항. [본문으로]
  2. Kyunghee Choi; Hyunju Lee; Namsoo Shin; Sung-Won Kim & Joseph Krajcik (2011), Re-Conceptualization of Scientific Literacy in South Korea for the 21st Century, JOURNAL OF RESEARCH IN SCIENCE TEACHING, VOL. 48, NO. 6, 670–697. [본문으로]
  3. 교육부(2015), 과학과 교육과정, 교육부 고시 제2015-74호 [별책 9]. [본문으로]
  4. 이영희(2014). 한국과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타난 과학의 본성 비교 분석. 한국 과학교육학회지, 34(3), 207-212. [본문으로]
  5. Lederman, N.G. (1999). Teacher`s understanding of the nature of science and classroom practice: Factors that facilitate or impede the relationship. Journal of Research in Science Teaching 36(8) 916-929. [본문으로]
  6. 정명현(2020),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과학의 본성 수준 및 반영 정도 분석 2009 개정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 사례 분석, 교육학 석사 학위 논문, 11. [본문으로]
  7. 정명현(2020),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과학의 본성 수준 및 반영 정도 분석 2009 개정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 사례 분석, 교육학 석사 학위 논문, 15-16. [본문으로]
  8. 강석진, 김영희, 노태희 (2004). 과학사를 이용한 소집단 토론 수업이 학생들의 과학의 본성에 대한 이해에 미치는 영향. 한국과학교육학회지 24(5), 996-1007. [본문으로]
  9. 정명현(2020), 교육과정 개정에 따른 과학의 본성 수준 및 반영 정도 분석 2009 개정 교육과정과 2015 개정 교육과정 사례 분석, 교육학 석사 학위 논문, 33-34. [본문으로]
  10. 신소연; 박철규; 이창윤; 홍훈기 (2018), 2015 개정 교육과정의 ‘과학탐구실험’ 실행에 대한 사례연구 -문화역사적 활동이론(CHAT) 측면에서의 이해, Journal of the Korean Association for Science Education, 38(6), 885∼899.S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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