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멘토링이 뭐라고 생각해요?
예상치 못한 질문에 말문이 턱 막혔다. 그는 더듬거리는 내 대답을 잠깐 듣고는, 준비했다는 듯이 자기가 생각하는 멘토링의 의미를 유창하게 설명해나갔다. 나는 풀려버린 생각의 실들을 다시 모아보려 애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머리 속엔 여전히…
"멘토링이 뭐라고 생각해요?"
그런 순간이 있다. 별 생각 없이 해 오던 것들이 갑자기 너무 낯설고 난해하게 느껴지는 순간. 가장 혼란스러운 그 순간들은 역설적이게도 가장 강렬하게 남는다. 내게는 올해 초, 멘토링 기관들을 찾아다니며 인터뷰하다가 저 질문을 받았던 순간이 그랬다.
당시 나는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동아리에서 부장을 맡고 있었다. 사회혁신 프로젝트를 위해 작년에 처음 모였던 우리 동아리가 학교 밖 청소년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주제로 잡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였다. 초기 부원 중 한 명이 학교 밖 청소년 출신이었고, 그가 들려준 문제 상황이 꽤 구체적이고 사회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서 공부하며, 그들이 누구이고,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대학생 단체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멘토링이라는 형식은 그저 자연스럽게 떠올랐을 뿐이다.
그렇게 작년에 한 번의 시범 프로그램을 그럭저럭 잘 마쳤고, 올해부터는 부장을 맡게 됐다. 여름에 있을 또 한 번의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기저기 지혜를 구하러 다녔는데, 그러다 한 멘토링 기관의 대표로부터 저 질문을 듣게 된 것이다.
"그래서, 멘토링이 뭐라고 생각해요?"
난감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찾아보니 멘토링이라는 말은 교육이라는 말과 처지가 비슷했다. 여기저기 불려 다니면서 쓰이고 있었던 것이다. 기업에서, 학교에서, 복지기관에서, 각종 재단에서, …… 문득 내가 지금까지 구상하고 있던 프로그램들이 미심쩍어졌다. 아무래도 저 물음에 나름대로 답하지 않고는 어떤 멘토링도 제대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컨대 이런 문제다. 어떤 사람이 팔 근육을 키우겠다면서 스쿼트를 할 때 팔을 과하게 휘적거린다고 생각해 보자.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만, 아무래도 제대로 된 자세로 할 때보다 오히려 안 좋은 효과가 나고 말 것이다. 팔 근육을 키우겠다면 팔굽혀펴기 같은 다른 운동을 하고, 스쿼트를 할 때는 적절한 자세로 하체 근육에 집중하는 게 좋다. 멘토링도 마찬가지다. 멘토링이 만들 수 있는 최선의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멘토링이 무엇인지 충분히 이해할 때 발견할 수 있다.
이 글은 멘토링이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천적인 고민의 기록이다. 구체적으로는, 지난 반 년간 멘토링 기관들을 스터디하고, 그것을 토대로 직접 1달에 걸친 프로그램을 기획해 본 경험을 재구성한 결과다. 썩 만족스러운 여정은 아니었지만, 모든 일에서는 배울 게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는 글이다. “실천적인 고민의 기록”이라는 말은 한편으로 실천과 고민에 대한 기록들이 불완전하게 뒤섞인 이 글의 형식에 대한 변명이기도 하다. 말 그대로 이 글은 말미에 제시할 주장에 대한 탄탄한 논증도, 지난 경험에 대한 섬세한 재현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 어쩌면 이 글은 이렇게 쓰일 수밖에 없었는지도 - 그러니까 나의 봄과 여름을 관통했던 멘토링이라는 아리송한 경험과, 그 속에서 피어난 어렴풋한 인식은 이렇게 표현될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야기의 시작은 올해 3월로 거슬러올라간다.
1. 멘토링 기관 스터디
3~4월, 나는 팀원들과 역할을 나눠 다양한 멘토링 기관을 찾아보고 인터뷰하러 다녔다. 본격적으로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내가 공부하고 기획한 멘토링을 간단히 정의하고 넘어가야겠다. 앞서 말했듯 멘토링의 범위는 매우 넓기 때문이다. 우리가 초점을 맞춘 멘토링 기관은 (1) 청소년을 멘티로 삼고, 외부에서 멘토를 모집하여 (2) 특정한 결과의 달성보다는 일정 기간 동안 꾸준히 참여하는 것 자체를 목표로 하는 (3) 멘토링 프로그램을 전문적으로 기획, 운영하는 기관들이었다. 관심을 갖고 알아보니 생각보다 많은 기관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중에서 내가 들른 곳은 ‘러빙핸즈‘와 ‘점프’였다.
1-1. 러빙핸즈 멘토링
러빙핸즈는 한부모/조손/다문화 가정의 아동, 청소년 멘티와 일대일 결연을 맺고, 성년이 되기 전까지 장기간 멘토링을 진행하는 기관이다. 박현홍 대표에 따르면 주로 초등학생 나이 때 멘토링이 시작된다고 하니, 평균 7~8년 동안 멘토링이 진행되는 셈이다. 이처럼 워낙 긴 시간을 관통하는 만큼 멘토링에 별도의 주제나 목표, 정해진 활동 내용이 아예 없는 것이 특징이다. 유일한 목표라면 “친해지는 것”뿐이다. 러빙핸즈에서 제공하는 멘토양성과정을 수료한 성인이라면 자격 요건 없이 멘토가 될 수 있고, 한 달에 두 번 만남을 기본으로 한다.
러빙핸즈에서 진행하는 멘토링의 방향성은 기관의 성격과 직원들의 경력을 고려할 때 분명 교육보다 복지를 향해 있었다. 인터뷰를 진행했던 박현홍 대표는 “아동학대/성폭력 센터에서 근무했던 경험으로 소외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장기적인 정서적 지지라고 생각하게 됐다”라고 멘토링을 시작한 계기를 설명했다. 러빙핸즈 멘토링의 목표가 뭐냐는 물음에 “멘티에게 ‘어른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라고 답하면서, 그는 멘토라는 말의 어원을 들려주었다.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영웅, 오디세우스가 트로이로 떠나며 자신의 아들을 보살펴 달라고 맡겼던 친구 이름이 ‘멘토’에요. 멘토는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전쟁에서 돌아오기까지 10년 간 친구나 선생, 아버지처럼 그의 아들을 돌봐줬죠. 여기에서 멘토링이라는 말이 나온 거예요. 따라서 그 어원에서부터, 아이가 성장하는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믿을 수 있는 든든한 어른이 되어주는 것이 멘토링의 의미였던 것이죠."
그는 멘토양성과정에서 예비 멘토들에게 멘티를 앞장서 이끌며 무언가를 알려주려 하기보다, 인내심을 갖고 멘티가 걷는 길에 함께 해줄 것을 가장 강조한다고 했다.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지 말고, 꾸준히 관심을 기울이며 곁에 남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처럼 든든한 어른 친구가 되어 줄 것, 관심을 갖고 옆에 있어줄 것을 강조하는 러빙핸즈 멘토링의 특징은 아마 대상이 되는 멘티들이 소외된 아이들인 경우가 많은 사회복지 단체라는 점에서 오는 듯했다.
1-2. 점프 멘토링
점프는 “누구나 차별 없이 배움의 기회를 누리며 성장하는 사회”를 미션으로 청소년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다양한 멘토링을 진행하는 기관이다. 점프 멘토링의 특징은 ‘삼각멘토링 모델’에 있다. 청소년 멘티와 성인 멘토의 이자관계만 존재하는 대부분의 멘토링 모델과 달리, 점프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들이 모인 ‘사회인 멘토단’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학생 멘토 봉사자들을 대상으로 진로 멘토링을 진행하면서 대학생들의 점프 멘토 활동에 동기를 부여하고, 롤모델이 되어주기도 한다. 멘토링 기간은 기본적으로 1년이다.
점프의 이의현 대표는 “미국에서 취업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이민자, 소수자의 권리에 관심이 커져 대학원에서 관련 공부를 했고, 그때 고안했던 멘토링 모델을 한국에서 이주/다문화 가정 청소년들에게 적용했던 것이 점프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비행청소년이나 발달장애 청소년 같은 특수한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고 다양한 배경의 청소년들과 함께하고 있다. 한편 점프가 멘토링 내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수요자 중심주의다.
"우리나라는 많은 영역이 공급자 중심으로 되어 있어서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우리가 생각할 때 답인 것을 하려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점프에서는 협력하는 기관의 수요를 최대한 충족하려고 해요. 우리가 하는 건 대학생 멘토를 선발해서 보내주고, 매니저들을 통해서 관리하는 정도죠. 멘토링의 내용은 청소년들을 가장 잘 아는 기관에서 온전히 결정해요."
협력 기관이 원하는 프로그램은 주로 학습 지원이다. 그러나 이의현 대표는 학습 멘토링의 목표가 “공부를 실질적으로 잘하게 되는 것보다도, 누군가의 응원과 동기부여를 받으며 무언가를 성취해보는 경험을 갖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점프의 멘토링 기간이 길지 않아서 멘티들이 곧바로 탁월한 성취를 보이는 경우는 드물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공부를 못하면 학교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기 쉬운 한국의 교육 환경에서, 멘토의 관심과 지지는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 누군가의 응원을 받으며 무언가를 성취해보는 경험은 학업을 넘어 청소년의 삶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점프 멘토의 핵심 역할은 멘티가 배움의 기회를 제대로 가질 수 있도록 도우면서 동기부여와 성취 경험을 주는 데 있었다.
2. 멘토링 프로그램을 만들어보다
2-1. 멘토링에 대한 이해와 고민
이렇게 여러 기관들을 방문하고 관련 논문들을 읽으면서 나름대로 멘토링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견을 정리할 수 있었다. 멘토링의 핵심은 멘토라는 역할의 정체성에 있었다.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이끄는 일, 즉 넓은 의미의 교육에 관련된 다양한 역할들 중에서 ‘멘토’라는 개념은 ‘옆에서 함께하며 돌보고 살피는 행위’를 특히 부각한다. 이 점에서 멘토는 무언가를 가르치는 행위가 강조되는 교사나 강사, 전인적인 성숙함에 대한 존경이 담긴 선생, 특정한 방향이나 단계를 제시하는 롤모델 등의 이웃 개념들과 달라지고, 바로 여기에서 멘토링의 특징이 나온다. 이런 의미에서 멘토링의 목표가 “어른 친구”가 되어주는 데 있다는 러빙핸즈 박현홍 대표의 표현은 적절한 비유이다. 따라서 우리의 프로그램 역시 학교 밖 청소년 멘티가 성장하는 과정에 “어른 친구”, 또는 형(오빠)이나 언니(누나)처럼 함께하며 멘티를 돌보고 살피는 활동이어야 했다. 우리는 멘토로서 그 과정에서 동기를 북돋아주고, 어려움을 덜어주며 한 발짝 더 나아간 멘티와 함께 기뻐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우리는 이 점을 유념하며 5월부터 멘토링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자산은 인터뷰이들의 선택에 내재한 쟁점과 고민들을 시행착오 없이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러빙핸즈나 점프는 왜 이렇게 했을까, 그래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단념해야 했을까. 이런 물음들과 함께 우리가 마주해야 했던 여러 고민들 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프로그램 기간과 일정을 결정하는 것이었다. 활동 기간은 프로그램의 형식을 결정하고, 따라서 내용과 정체성을 조형하는 핵심 요소 중 하나다. 그에 따라 멘토-멘티 관계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또는 자주 멘토링을 진행하면 깊은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겠지만, 그만큼 참가자의 부담이 크고 현실적 제약도 만만치 않다. 당장 각자의 고민으로도 어깨가 무거운 대학생들이 언제까지나 청소년에게 멘토가 되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인 것이다. 반면 기간이 너무 짧거나 활동의 밀도가 낮으면 멘티를 세심히 살필 만큼 충분한 친밀감을 형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고, 동기부여의 관점에서도 긴 호흡으로 접근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우리는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와 협력해서 프로그램을 운영했기에 멘토와 멘티의 사정만큼이나 해당 기관의 운영 일정도 고려해야 했다. 이래저래 운신의 폭이 넓지 못해 준비 과정에서 갑갑함을 많이 느꼈다.
프로그램의 주제에 대해서도 마지막까지 물음표가 시원스레 해소되지 못했다. 동아리 내에서는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에 대해 나름의 합의가 있었지만, 협력 기관의 수요는 그와 미묘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기관 측에서는 “서울대 멘토”라는 이름이 주는 특별함을 살리길 원했고, 검정고시도 얼마 남지 않았던 만큼 학습을 위한 동기부여와 정서적 지지에 초점을 맞춰주기를 바랐다. 반면 우리는 학습보다는 일상생활에서의 습관 형성을 통해 성취 경험을 만들고, 자기 이해와 진로 탐색, 그리고 사교성을 위한 활동을 진행하고 싶었다. 그간 나름대로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한 스터디를 진행하며 발견한 주제들이었다. 따라서 기획자로서 우리의 비전을 관철하고 싶은 마음과, 서비스 제공자로서 기관의 수요를 충족해야 한다는 마음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졌다. 점프는 수요자의 요구를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했지만, 프로그램 운영을 기관에 일임하고 멘토 관리만 하는 점프와 달리 우리는 직접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만큼 우리가 지향하려는 가치를 쉽게 단념하기는 어려웠다.
2-2. 기획에서 실행까지
프로그램 시작을 앞둔 6월, 고민 끝에 활동 기간과 주제, 구체적인 일정을 결정했다. 활동 기간은 7월 한 달로 정해졌다. 8월 중순에 검정고시가 예정되어 있던 터라 7월을 넘어서까지 프로그램을 이어가긴 어려웠기 때문이다. 6월 말에 방학이 시작하고, 8월에는 각자의 사정으로 바쁜 대학생 멘토들의 일정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었다. 대신 4주라는 짧은 기간 안에 충분한 친밀감을 형성하기 위해 활동의 밀도를 높이기로 했다. 그에 따라 우리의 프로그램은 매주 멘토와의 일대일 만남으로 진행되는 ‘개별 멘토링’과, 2주에 한 번씩 총 두 번 모든 멘토링 팀들이 함께 모이는 ‘단체 활동’으로 구성됐다.
한편 주제에 있어서는 청소년들 각자의 수요에 최대한 맞추고자 멘토와 멘티에게 큰 자율성을 부여했다. 학습, 정서, 일상생활 습관 형성, 진로 탐색 등 다양한 주제 영역들을 소개하되 멘토와 멘티가 첫 만남 때 직접 ‘개인 과업’을 설정하도록 한 것이다. 4주 간 진행되는 개별 멘토링의 구체적인 내용은 그에 따라 멘토가 계획하기로 했다. 이외에 단체 활동은 멘티들의 친교를 위한 것으로, 또래 친구들과의 교류가 상대적으로 적은 학교 밖 청소년의 상황을 고려해 기획했다.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많은 또래들을 만나고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는 ‘학생/청소년’들과 달리, 학교 밖 청소년들은 특별히 적극적이지 않는 이상 또래 관계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사이도 학교를 나오고 일상 패턴이 달라지면서 소원해지곤 한다. 같은 지원센터를 다닌다 하더라도, 인사만 하는 사이일 뿐 개인적인 친교는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멘토-멘티의 이자관계에만 주력하는 대부분의 프로그램들과 달리, 참가자 모두가 친해질 수 있도록 단체 활동을 준비한 것이다.
협력 기관과는 기획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꾸준히 소통했다. 예산 지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7월에 예정된 기관의 주요 일정들은 무엇인지, 단체 활동으로는 무엇을 하면 좋을지 등 다방면에서 의견을 나눴다. 소통 과정이 그리 원활하지는 못했다. 많은 경우 내 미숙함 탓이었다. 특히 학교 밖 청소년과 멘토링 기관에 대한 스터디를 거치면서 달라진 기획 의도와 프로그램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준비, 실행 과정에서 크고 작은 오해들이 있었고, 그로부터 많은 변수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멘티들은 협력 기관에서 우리의 기획안을 바탕으로 모집했고, 멘토진은 우리 동아리 내에서 꾸렸다. 동아리 부원들은 운영진으로만 활동하고 멘토는 외부에서 모집하는 것이 당초 계획이었지만, 기획이 예정보다 늦어지며 멘토 모집 시기를 놓쳤다. 멘토를 새로 모집한다면 교육도 만만치 않은 일인데, 그 자료를 마련하고 교육 일정을 잡을 시간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동아리 부원들이 멘토를 맡으면서 프로그램 중 내부 소통은 원활했지만, 그만큼 멘토들의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가 생기기도 했다.
2-3. 아쉬움 속에서 멘토링을 새롭게 인식하다
나는 운영팀장으로서 협력 기관 담당자와 소통하는 한편 멘토로도 참여했다. 둘 중 애로사항이 더 많았던 역할은 운영팀장이었다. 꼼꼼하지 못한 성격에, 이런 역할을 맡는 것도 처음이라 멘토와 멘티, 그리고 기관 사이에서 의견을 전달하고 조율하는 일을 충실히 하지 못했다. 여기에 날씨 등의 변수도 겹쳐 애초에 야외 활동 위주로 기획했던 단체 활동도 예정대로 진행하기 어려웠다. 급하게 준비한 대체 활동이 빈자리를 적당히 채우기는 했으나, 처음에 기대했던 효과에 못 미쳐 아쉬움이 남았다. 많은 멘티들은 “단체 활동이 멘토 선생님과 둘이서, 또는 각자 알아서 하는 활동 위주였어서 다른 멘티들과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라는 피드백을 남겼다. 기획한 프로그램이 실제로 잘 작동하기까지는 많은 에너지와 역량, 기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체감했고, 그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우리,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자책감이 오래 맴돌았다.
멘토 역할은 그보다 뿌듯함이 더 짙게 남았다. 내가 맡았던 멘티는 학교를 그만둔 지 1년이 약간 넘은, 고등학교 2학년 나이의 후기 청소년이었다. 그는 규칙적인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고, 악기 연주와 수영 등 여러 취미도 즐기고 있었다. 8월에 검정고시를 보고, 내년에는 부모님의 조언에 따라 막연하게 입시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만 아직은 공부에 뜻이 없어 성실하게 공부하지는 않고 있었다. 한편 학교 밖 청소년이라는 상태를 스스로 불완전하게 느끼고, 자존감이 낮은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거리에서 또래 친구들을 만날 때면 약간 주눅이 들었고, 웬만하면 검정고시 이야기는 기관 안에서만 하고 싶어 했다. 이런 모습들을 살피고 또 대화를 나누면서, 우리는 자기 이해와 학습 상황 점검을 개인 과업으로 설정했다. 매주 한 번씩 만나 편하게 일상이나 각자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거나, 공부 계획을 세우고 간단한 과제를 정해서 점검하기도 했다. 늘 성실하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임했고, 내가 그에게 약간의 자극과 인상은 남겼겠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아쉬움도 있었다. 가장 큰 아쉬움은 짧은 멘토링 기간이었다. 우려했던 대로 4주라는 시간은 함께 성장과 성취를 경험하기에 충분치 못했다. 특히 멘티가 몇 번의 실패 앞에서 쉽게 그만두려 할 때면 그와 더 오래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끼기도 했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들에 생각보다 한계가 많다는 점도 때로 나를 속상하게 했다. 나의 꿈과 관심사, 그동안 걸어온 길은 멘티의 그것들과 많은 부분에서 달랐다. 그런 경험의 차이를 메울 만큼 공부나 상담 등 어느 분야의 전문성을 갖고 있지도 못했고, 그 간극만큼 나의 부족한 경험과 역량에 한계를 느끼곤 했다.
이렇게 개인적인 경험, 특히 실패와 아쉬움에 대한 성찰을 읊조리는 이유는 이를 통해 멘토링 프로그램의 현실적 문제들과 새로운 특징들을 인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현실적인 운영 상의 문제들은 차치하고,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멘토로 참여하면서 발견한 멘토링의 특징과 가치를 논해보려 한다.
3. ‘애매함’과 ‘아마추어리즘’ : 교육에서 멘토링의 위치는
멘토링 기관들을 스터디하며 이해한 멘토링의 핵심이 ‘살피고 보살피는 행위’였다면,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며 발견한 멘토링의 키워드는 ‘애매함’과 ‘아마추어리즘’이었다. 앞서 개인적 경험에서 느꼈던 ‘비전문가로서의 아쉬움’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오늘날의 교육 환경에서 멘토링이 갖는 특이한 위치를 드러낸다. 많은 경우 멘토링은 교육적 관점에서 ‘비전문가와의 관계 맺기’라 할 수 있다. 멘토는 교육 전문가도 아니고, 상담 전문가도 아니며, 그 외의 어떤 영역에서도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지 않는다. 그저 멘티보다 조금 더 경험이 많고 성숙하다고 여겨지는 한 사람, 그래서 멘티에게 관심과 열정을 쏟을 수 있으리라 기대되는 한 사람일 뿐이다. 따라서 멘토는 언제나 ‘아마추어 교육자’일 수밖에 없다.
또한 멘토는 ‘애매한 존재’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그는 부모나 친구처럼 완전히 사적 영역에 속해 있는 사람도 아니고, 앞서 말한 아마추어적 특성으로 인해 완전히 공적 영역에 속한 전문가도 아니다. 멘토는 친근한 동네 형/언니 같으면서도 선생님 같고, 어른 같으면서도 친구 같은 존재다. 함께하는 활동이 대개 분명한 목표보다 긍정적인 관계 형성에 치중해 있는 만큼 교육기관에서 만나는 교육자들보다는 친근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석에서까지 아주 친근한 사이라 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나는 멘토로 참여하며 이러한 특징들을 주로 약점으로 느끼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멘토링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해보면서, 이게 약점이 아니라 오히려 강점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이는 멘토링에 대한 앞선 이해와도 이어진다. 멘토링이 ‘돌보고 살피는 행위’를 강조하는 한, 그것은 언제나 교육과 복지/돌봄 사이에서 두 영역의 주변부를 맴돌 것이다. 하지만 교육과 복지/돌봄이 오늘날 서로 분화된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문화적, 역사적 결과이며, 실제로 누군가의 성장을 돕고 이끄는 활동은 두 영역의 무수한 교차와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옛 속담처럼, 또는 목욕법에서부터 교수법에까지 이르는 <에밀>의 시시콜콜한 조언들처럼. 따라서 멘토링의 애매한 정체성은 그것이 교육의 저변에서, 실패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균열의 지점들을 유연하게 채워주는 특급 도우미가 될 수 있게 할 것이다.
내가 멘토링에 대해 기대하는 바는 그것이 특유의 유연함으로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교육 환경을 더 매끈하고 촘촘하게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교육은 산업의 확장과 기술의 발달, 평생교육 패러다임의 등장 등으로 일견 촘촘해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교육’이라는 말의 의미가 점점 ’가르치고 배우다’로 축소되고 있기도 하다. 다변화되는 사교육 산업, 학습과학의 발전, 교수-학습 과정에 정밀하게 개입하는 각종 기술의 도입 모두 이러한 변화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전문화되고 분화되며 눈부시게 발전하는 듯 보이는 우리 시대의 교육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앙상해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을 위한 돌봄의 부담을 모두 떠안고 있지만 보호도, 지원도 부족한 교사들의 모습에서, 또는 좋은 ‘인강’만 있으면 이제 어떤 교육도 필요하지 않다는 누군가의 호언장담에서 나는 앙상해지는 교육의 징후를 본다. 학술적 개념으로서 ‘교육’은 정확하고 정밀해져야 하겠지만, 누군가의 긍정적인 변화를 돕고 이끈다는 넓은 실천적 의미에서 ‘교육‘은 모든 행위와 개입에 열려 있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멘토링은 누군가의 성장을 돌보고 살피는 행위로서 전문화되는 교육의 주변부에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학습 과정에서의 정서적 좌절이나, 교육 기관이나 프로그램에서 겪곤 하는 자질구레한 어려움들을 덜어줄 수 있다. 그런 도움을 통해 기존의 인간관계 연결망을 가로질러 새롭고 느슨한 연결의 선을 만드는 사회적 실천이 될 수도 있다. 심각한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대부분의 ’적당히 힘들고 지치는‘ 사람들이 서로의 성장을 지원하는 선순환의 사이클, 그것이 내가 그리는 멘토링의 미래다.
갈수록 전문화되는 세계에서 멘토는 어디까지나 교육계의 ‘아마추어리즘’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것이 내 바람이다. 충실히 전문화된 공적 영역도 아니고, 온전히 사적인 친밀성 영역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
이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