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과 다문화교육
- 다문화주의가 대학 담장을 넘어서기 위하여
당근
들어가며
다문화주의 담론과 다문화교육의 아이디어의 중심지는 어디일까? 제주 예멘 난민 문제를 기점으로 온라인 상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여러 언론에서도 중점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기 전부터 다문화주의의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었던 공간은 다름 아닌 대학이다.
한국 다문화주의 담론은 미국에서 수입되었다. 미국에서는 흑인 민권운동과 68운동의 영향으로 대학에서 민족학(ethnic studies) 연구가 활성화되었고, 이 영향으로 교육계에서 다민족 교육(multiethnic education)이 일시적으로 등장했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 집단의 교육평등 문제에 초점을 두던 이러한 움직임이 계층, 성, 언어 등 보다 광범위한 교육적 문제를 다루면서 다문화교육(multicultural education)으로 발전하게 되었고, 여기서 비롯된 이론들이 한국 대학으로 흡수되어 현재의 대학 다문화주의 담론의 중심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 대학 내에서 다문화주의/교육은 주류적 담론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다문화교육 학부 전공은 없고, 대학원 전공은 한양대, 경기대를 비롯한 일부 대학에만 있는 수준이다. 관련 강좌의 경우에는 다문화교육 대학원 전공이 잇는 대학에서는 학부 강좌 수가 많지만, 서울대를 포함하여 관련 전공이 없는 경우에는 학부 강좌가 2~3개만 열리는 실정이다.
연구자의 규모는 다문화교육 관련 국내 최대 연구단체인 ‘한국다문화교육학회’(www.kame.or.kr)를 중심으로 고려해보면 1,400명 정도의 연구자가 있다고 볼 수 있다. 2018년 학술대회의 경우 16개국에서 80명의 논문 발표자가 참여하였고, 국내외에서 저명도가 상당히 높은 학회이다. (모경환 교수님 인터뷰 참고)
현황과 더불어, 대학에서의 다문화교육과 관련한 문제의식과 고민은 무엇인지 서울대학교 사회교육과 모경환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통해 알아보았다.
인터뷰 : 서울대 사회교육과 모경환 교수님
모경환 교수님 (사진출처 : 네이버 프로필)
① 교수님에 대한 소개
Q. 어떤 전공을 하셨고, 어떤 연구를 해오셨나요?
A. 원래 사회과교육 전공인데, 다문화교육이 교과 중에서 사회과와 특히 밀접한 연관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다문화교육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다양한 민족/민족별 학업 성취와 시민성 발달에 대해 연구를 했고, 한국에 와서는 주로 다문화 교사교육에 대해서 연구를 해왔습니다.
Q. 최근에 하시는 연구는 무엇인지 간략하게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A. 올해 다문화 교사교육에 대해 논문 2편을 출판하였는데, 교사들의 전문성 개발 활동 유형에 대한 연구와 국내에서 시행되고 있는 다문화 교사연수 내용 분석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였습니다. 과거에는 교사들이 전문성 계발을 위해서 국가가 제공하는 공식적 연수 참여나 개인적 노력을 주로 하였는데, 최근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학습공동체를 구성하여 서로 경험을 공유하고 전문성 신장에 도움을 주는 형태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바람직한 변화입니다. 또한 교사 연수의 경우에는 개론 수준의 이해를 넘어서 각 교과에서 다문화교육을 시행할 수 있는 역량 육성을 지향해야 한다고 봅니다.
Q. 다문화교육 연구자로서, 교수자로서 다문화교육에 대해 최근 가지고 계신 고민이 있으신가요?
A. 우리나라에 다문화교육에 대한 몇 가지 오개념이 팽배해 있습니다. 다문화정책 시행 초기에 국가 주도의 다문화교육이 시행되면서 다문화교육은 이른바 다문화가정이라 불리는 국제결혼가정, 외국인노동자 가정 구성원을 지원하는 복지정책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다문화라는 용어가 부정적이라거나 역차별을 만들어낸다는 등 오개념들이 유포되었습니다. 다문화교육은 모든 종류의 교육 불평등을 해소하고, 무엇보다도 모든 학생의 인식을 개선하여 다문화, 글로벌 시대의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교육이라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② 다문화 교육과 학교
Q. 다문화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하나 꼽자면 무엇일까요?
A. 모든 학생의 다문화 인식 개선을 들고 싶습니다. 이것은 다문화교육이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학업 보조라는 편협한 개념을 탈피하는데도 중요합니다. 다문화시대의 시민으로 살아가는데 필요한 시민적 자질 함양이 다문화교육의 목표이고, 그 중에서도 현 시점에서 우리사회에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다문화 인식 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사회 정의를 상위 목표로 하며 인권 교육의 핵심적 내용입니다.
Q. 대학에서도 다문화교육이 필요할까요? 혹은 가능할까요?
A. 대학에서의 다문화교육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나라 대학도 국제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 자체가 빠른 속도로 다문화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학생들이 졸업 후에 만나게 되는 사회는 다문화, 글로벌 사회로 진척이 상당히 이루어진 사회이기 때문에 대학에서 다문화적 시민성을 충분히 함양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③ 대학과 현장과의 관계
Q. 다문화정책학교 방문 혹은 현장 다문화교육 수업 참관의 경험, 교사연수나 자문의 경험이 있으신가요? 기억에 남는 경험을 간단히 말씀해주세요.
A. 교사들이 겪는 어려움 중에 대표적인 것 하나를 들자면 교사 자신의 인식 개선의 필요성입니다. 교사가 되기 전에 예비교사 양성 과정에서 다문화교육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학교 현장에 나왔기 때문에 다문화교육을 실시하기에는 준비가 부족한 상태이고요. 연수나 대학원 과정을 통하여 배워나가고 있지만 오랫동안 형성해온 자신의 인식을 개선하는 게 주요 과제라고 말씀들을 많이 하십니다.
Q. 현장 교사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은 무엇이고,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일반적인 어려움은 이주민 자녀들이 언어 습득, 학업 성취, 학부모 참여 등에서 어려움이 있고요. 무엇보다도 정주민 자녀들의 편견과 오해, 감수성 부족 등에서 발생하는 갈등의 해결이 숙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문화교육에서 대학과 학교 현장의 관계를 고민하기
모경환 교수는 다문화 교사교육과 관련한 연구를 중심으로 교사들의 인식 개선과 교원양성과정에서의 다문화교육 학습 등을 주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공감되는 지점은 사범대학 교육과정에 다문화교육을 다루는 강좌나 내용이 아주 적다는 것이다. 다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은 점차 늘어나고, 난민 문제 등이 한국의 당면 과제로 떠오른 가운데 당장 교사로서 학교에 나가면 겪게 될 다문화적 갈등은 많다. 그러나 기자 본인이 관심을 가지고 다문화교육 학부 강좌를 찾아 들으려고 했음에도 윤리교육과와 사회교육과에서 개설한 두 강좌 이외의 학부강좌는 찾기 어려웠다. 교원양성과정과 교원연수에서 다문화교육의 비중과 연구규모 등이 절대적으로 늘어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다만 양적 확대를 넘어서 기자가 들었던 다문화교육을 다루는 두 강좌를 들으며 느꼈던 바를 바탕으로 그 내용에 대한 고민 지점을 마련해보고 싶다. 본인이 들었던 강좌는 윤리교육과에서 개설된 전공강좌 ‘다문화와 국제윤리’와 사회교육과에서 개설된 교직강좌 ‘다문화교육의 이해’다. 두 강좌는 다문화주의에 대한 다소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었으나, 공통적으로 다문화교육은 학교와 그를 둘러싼 사회를 재구조화하는 변혁운동이라는 지점을 다루고 있었다.
학교와 사회를 재구조화하는 교육운동이라는 다문화교육의 정의는, 흥미롭게도 이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과 경쟁에 대한 논의, 지식사회학이나 인식론에서의 변혁과 같은 논의를 다양하게 포괄하고 있었다. 이 논의는 ‘주어진’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접하는 교사의 역할이나 교수-학습과정에서의 교사-학생의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포함하고 있었고, 근본적으로 교육이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던지고 있었다.
이러한 논의가 강좌를 수강하는 동안 본인에게는 훌륭한 지적 자극이 되어 주었으나, 한편으로 이 논의들이 현장의 문제를 어떻게 적절하게 설명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가령 다문화교육은 교육과정 내의 주류사회의 관점을 성찰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런 시도가 현장에서 다른 교사나 학부모, 학생들의 편견에 부딪혀 묵살되는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 이전에 교실을 토론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가? 또 토론 이전에 다문화학생에 대한 학교폭력과 차별적 또래문화에 대해서는 어떤 접근이 가능한가? 이런 질문들은 여전히 교사 개인의 몫으로, 혹은 응답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학교 현장에서는 당장의 갈등을 해결하느라 급급한데, 대학은 지식권력의 성찰과 학교구조의 변혁을 논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담론의 급진성과 변혁성은 퇴색된다. 현실의 전략과 이론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학에게는 자신의 역할이 있고 언제나 더 진보한 담론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지만, 현장과의 거리감을 좁혀가는 것이 지금 대학이 다문화교육에 있어서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로 보인다. 수입된 이론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을 넘어 현장의 의제를 중심으로 연구 문제를 설정해야 한다. 교사가 직접 교육과정과 모델을 연구할 수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학교 현장에서의 갈등과 폭력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문화주의를 다룰 수도 있다.
나가며
난민과 결혼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되고 자리매김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에 대한 ‘혐오’ 또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 가운데 대학의 다문화주의 담론은 지금까지처럼 그저 괜찮은, 세련된 하나의 담론으로 받아들여지기보다는 공격받을 가능성이 높다. 다문화주의 담론에서 지적하는 문제가 정말로 현실화 되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그 변화가 공격과 위협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20년 전 대선토론에서는 동성애를 존중할 필요가 있다 말할 수 있으면서도, 최근의 대선 토론에서는 후보자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과 같다.
그래서 대학은 더 긴장하고 면밀하게 상황을 관찰할 필요가 있다.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이론들을 도입하고 적용하는 것을 넘어, 한국의 상황에서 출발하여 그 이론과 담론들을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의 입장을 설명하고 대안을 내걸 수 있는 다문화주의, 다문화교육 담론을 대학이 제안할 수 있을 때 다문화주의 담론은 ‘평등한 세상을 위한 변혁운동’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확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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